차별이지만 기다려라…사고가 나야 설치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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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강기 설치 소송, 1심에 이어 항소심도 패소
  • 법원, 차별로 판단하고도 권리 구제는 외면

# 구산역은 경사가 심하고 수직 높이가 15미터가 넘는다. 리프트가 무서워 보통의 경우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거나 휠체어로 3~40분 걸려서 출근한다. 하지만 장애인콜택시는 언제 올지 몰라서 7시 30분부터 불러야 하는 불편이 있다. 전철로 가면 10~15분이 걸리지만 리프트가 자주 고장 나기도 하고 리프트를 기다리는 데 20분 걸리기도 한다. 이동권은 일상생활 권리보장에 가장 중요한데, 2심 판결에 화가 난다.
–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원정 활동가

장애인 당사자와 단체들이 리프트를 철거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패소했다.

10일 서울고등법원은 이원정 씨 등 지체장애인 5명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차별구제청구소송 항소심에서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장애인 당사자와 단체들은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10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구제청구소송 항소심 재판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사진=더인디고

2017년 신길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신길역사를 비롯한 지하철 1호선부터 8호선에 대한 관리감독자인 서울교통공사는 리프트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장애인 당사자와 단체들은 더 이상 신길역 사고처럼 위험한 리프트를 이용할 수 없기에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신길역, 영등포구청역, 충무로역,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그리고 구산역의 리프트 시설을 철거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권을 위해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는 소송이었다.

작년 6월 1심 재판부는 리프트 시설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차별행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현재 서울교통공사와 서울특별시장이 이미 승강기 설치에 관한 기본 및 실시 설계 용역을 도급하였기에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적극적 조치 이행은 명하지 않기로 한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는 “법원은 예산을 이유로 리프트를 방치해 온 국가 및 관련기관에 대하여 차별행위임을 선고할 것과 더 이상 리프트와 같은 위험시설 때문에 장애인이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판단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2년 가까이 소송을 같이 진행한 이상헌 변호사는 “서울교통공사를 대상으로 신길역 등 다섯 군데 역사에 승강기 설치 요구 소송을 진행했는데, 패소했지만 일부 성과가 있다고 본다.”면서 “문제는 법원이다. 법원에서 차별행위라고 판단하고도 권리 실현을 위해 구제를 안 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고 말했다. 이어 ”상고를 한다면 차별에 대한 해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소송이 시작되자 신길역 추락사망 사건에 일절 책임이 없다던 서울교통공사는 신길역 사고의 한 원인이었던 지하철역사 내 리프트의 호출벨 위치를 전 역사에 걸쳐 급히 안전한 장소로 옮겨 설치했다. 또 예산과 구조상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렵다던 신길역 역사에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를 추진했다.

장추련은 “사람이 죽어도 꿈쩍하지 않던 서울교통공사가 막상 소송이 시작되자 이렇게 예산을 투여하고 공사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공기관이 얼마나 장애인의 안전과 이동권을 가볍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답답해했다.

이 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활동가는 “충무로역은 리프트 이용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1시간 걸려도 한참을 돌아서 간다.”며 “돈이 적게 들었으면 해결되었을 것이다. 법원의 차별적 인권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도 리프트를 위험한 시설로 규정하고 정당한 편의제공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20년 넘게 과학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1년간 더인디고 기자로 활동하며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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