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정의 정정당당] 당사자·비당사자 역할 모두를 요구받는 당사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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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탄 두 사람을 포함해 네 명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휠체어를 탄 두 사람을 포함해 네 명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정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장애계의 구성원은 당사자와 비당사자로 나뉘듯, 장애인단체에도 당사자와 비당사자가 있다.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당사자의 대표적인 예로 동료지원가가 있다. 동료지원가는 중증장애인으로서 중증장애인의 자조모임, 취업상담을 통해 취업의욕을 고취하거나(고용노동부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 회복된 정신장애인으로서 어려움에 부닥친 동료 정신장애인에게 상담과 절차보조를 제공한다(동료상담 및 절차보조사업). 이들 일자리는 오로지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자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로 비당사자 활동가가 하는 직업으론 사회복지사가 있다. 이들 사회복지사는 장애인단체 운영 전반의 실무를 책임진다.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하고, 행사를 다른 기관 및 대중에 홍보하고, 행정과 회계를 담당한다. 때로는 사업 기획과 연대투쟁까지 책임진다. 이들 비당사자 활동가 역시 당사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역할 모두를 요구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당사자 ‘활동가’이다. ‘당사자 활동가’는 당사자단체의 기획과 운영 전반을 담당하면서, 동료지원과 동료상담 등의 업무에도 능해야 한다. 행정 및 회계 전담인력을 충분히 뽑지 못하면 행정, 회계, 디자인에도 능해야 한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사업을 홍보하는 것 역시 필수다. 관련 인사 접대 등 고도의 사회성을 요구하는 스킬도 해내야 한다. 인력 사정이 좋지 않은 당사자단체의 당사자 활동가는 가히 만능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당사자단체에서 당사자 활동가가 모든 것을 담당하고 책임지는 흐름은 현재 장애계에서 중요한 화두인 역량강화(empowerment)에서 시작되었다. 역량강화는 “힘(또는 권력, power)을 적게 가진 자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란 본래의 뜻 외에도, “어떤 이의 능력을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는 의미도 혼용되고 있다(이광원, “두 가지 뜻 ‘역량강화’에 관한 ‘불편한 진실’”, 에이블뉴스, 2013).

당사자 활동가 ‘일당백’의 흐름은 바로 능력주의적인 후자의 의미로써의 역량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역량강화가 마냥 잘못되지는 않았다. 능력주의적이기는 해도, 장애인이 서비스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려면 당사자단체 및 그 사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끌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사자 스스로’ 정신을 함양한다는 점에서 의의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은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첫째로, 당사자 활동가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불편하게 들리겠지만, 당사자 활동가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인간의 한계는 유한하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가 존재하지만, 그것보다 현재의 법적인 장애인의 정의는 능력(capacity)의 한계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적어도 등록된 장애인이라면 비장애인보다 능력의 손상을 더욱 많이 경험할 것이고, 미등록 장애인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적 장벽에 의해 사회참여 역량의 손상을 겪는다. 비장애인 활동가가 이 모든 걸 다 하기도 벅찬데, 당사자 활동가가 감내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두 번째로, 능력의 개발이 역량강화의 진정한 의미는 아니다. “힘(또는 권력, power)을 적게 가진 자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라는 본래의 의미로 되돌아갈 때, 중요한 것은 결정권이다. 단체 운영과 사업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권한’을 전문가에서 당사자로 이양하는 것이 진정한 역량강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실무를 당사자 활동가가 담당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당사자 활동가의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당사자 활동가의 업무량이 가중되면 보다 중요한 가치나 업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지 못하게 된다. 당사자 활동가는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장애운동의 이론과 가치를 익히고, 사업 기획 경험과 투쟁 경험을 쌓으면서 자립생활 및 당사자주의의 이념을 실현해나가야 한다. 사업의 본질과 거리가 먼 행정, 회계, 디자인에 시간과 노력을 쏟을수록 당사자단체 운영의 핵심역량을 개발할 여유가 사라진다.

네 번째로, 당사자 활동가의 지나친 실무 투입은 당사자 활동가 그 자신의 정체성 혼란을 일으킨다. 당사자 활동가가 활동과 투쟁, 동료지원보다 사업의 부수적인 업무에 더 많이 투입된다면 자신이 단순한 실무자인지, 당사자 활동가인지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에는 당사자주의에서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다섯 번째로, 비당사자 활동가와의 업무 분담의 혼란을 유발한다. 당사자만을 활동가 및 직원으로 뽑는 단체가 아닌 이상, 당사자단체 및 장애인단체에는 당사자와 비당사자가 공존하게 된다. 당사자가 실무에 많이 투입된다면, 비당사자와의 역할 분장이 모호해지고 직역 간의 다툼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들 스스로’의 당사자주의 정신을 살리면서, 앞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당사자단체 운영 및 활동 중 본질적인 것은 당사자 활동가만이 담당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비당사자 활동가가 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 배분을 통해 당사자는 핵심적인 업무에 집중하며 당사자주의에 관한 역량을 키울 수 있고, 비당사자는 자신도 당사자단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을 얻으면서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단체의 진정한 역할은 당사자의 권익옹호와 당사자주의 이념의 실현이다. 당사자단체와 장애인단체의 역할은 당사자 활동가에게 과도한 업무를 분배하여 개개인의 역량보다 지나치게 능력을 개발하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정신적 장애인의 당사자주의는 아직 미약하다. 정신적 장애인이 정말 당찬 당사자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미약한 당사자주의가 창대해질 수 있도록 자그마한 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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