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 운동의 새로운 에너지로 하영택 소장을 주목한다

1
142
장애 운동의 새로운 에너지로 하영택 소장을 주목한다
▲서인환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대표이사는 2024년 새로운 장애운동의 방향성을 지역사회 자립생활운동에서 되짚는다. 특히, 하영택이라는 인물의 영락과 지난했을 삶의 굴곡을 이야기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게될 장애운동의 에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 픽사베이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서인환 대표이사

하영택 소장은 2009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에 출마한 사람이다. 1년여 년 전부터는 다시 장애계로 돌아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직을 맡고 있다. 하영택 소장을 생각하면 그가 활발하게 장애인 운동을 한 시절이 생각난다.

모든 장애계가 가장 연대를 잘한 시절은 2000년대 중반부이다. 장애인 운동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장애인 이동권연대나 자립생활 운동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지속적인 활동이 있었다. 전대연 소속 장애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운동은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운동의 목적별로 단체가 구성되고 그 단체의 활동은 활발했지만 전체 장애계로 확산되지는 못하였다. 엘리트나 이념적으로 무장된 일부 장애인의 운동으로 저변확대는 하지 못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로부터 장애인단체 합동 사무실 마련을 위해 로또 복권기금에서 500억 원을 지원받아 장애인단체가 하나의 연대체로 모일 가능성이 생겼으나, 이룸센터 운영 방식의 의견 차이로 전 장애계 연대체는 실패하였다.

1990년대에는 사회의 호응이 없는 가운데 외침을 해야 했고, 이것으로 인해 분신투쟁 등 장애인 개인의 목숨을 버리는 투쟁 등 강력한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성과는 크게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한국DPI를 중심으로 한 휠체어연대가 건강보험공단을 점거하여 결국 휠체어가 보험적용을 받게 되고,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지원사업이 로또 기금과 공동모금회 지원으로 시범사업이 이루어지는 등 성과가 나타나자, 장애인들은 운동의 중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의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이나 한국DPI의 청년학교 운영은 운동의 구성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2000년대 중반이 연대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추련)가 매개체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적 사무국 역할을 장추련이 맡았으며, 한국장총과 장총련, 제3지대 장애인 단체들이 총망라되어 참여하고 있었다. 장애인단체가 고유목적사업으로 특정 장애유형의 복리증진에 한정하여 활동을 하거나, 복지 서비스에 치중하고 있었다면 장추련은 적극적 운동단체로서 그 성과도 대단하였다. 당시 서울지장협 회장이었던 하영택 회장은 용산구 남영동(구 지장협중앙사무실)에 장추련 캠프사무실을 마련하고 운동의 필요성과 이념, 시대변화의 배경과 차별과 권리에 대해 전국에 산재한 지방단체로부터 초대받아 다니면서 운동의 불을 지폈고, 전략과 장애운동가(노래) 등을 전파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회장 선거가 있었다. 하영택 회장이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에 당선되면, 가장 거대 조직인 장애인단체가 운동단체 중심 역할을 맡아 대전환이 기대되는 바였다. 하지만 회장 당선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차기 회장에 다시 도전할 기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영택 회장을 지지하던 극렬지지자들이 가진 과잉 에너지가 초래한 선거개표장 난입사태 이후, 모든 책임을 떠안은 하영택 후보에게 오히려 이러한 기회조차 잃게 만들었다.

당시 필자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회원은 아니지만 외부 인사로 선거 공정성을 위해 선거관리위원으로 참여했다. 하영택 회장 지지자들은 대회장 로비에서 개표 방송을 듣다가 불리한 결과의 조짐이 보이자, 우발적인 행동이지만 군중심리가 작용되어 단체행동으로 변했다. 현장에는 하영택 회장이 나와 있지 않아 지시하는 위치가 아니었으므로, 이것을 하영택 회장이 책임질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판결문에서도 이 부분이 무혐의로 기록되어 있다. 하영택 후보가 스스로 선거 캠프의 총책으로서 모든 책임을 감수하였던 것이다.

이런 결정이 하영택 회장 스스로에게 엄청난 희생과 고난을 겪게 했다. 2009년 회장 선거 당시 양 후보 진영은 극단적으로 서로 나뉘어져 있었고, 과도한 경쟁으로 인하여 가짜뉴스와 음해로 하영택 회장은 많은 상처를 받았고, 선거사태 후유증으로 인하여 법적 처벌까지 감수하면서 명예도 모두 잃어버렸다. 이런 하영택 후보를 지켜보는 필자 역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진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편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분투하는 하영택 후보에게 개인적으로 너무나 미안했다.

장애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해 투신한 결과가 단지 지지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대신 짊어진 이유로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은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하영택 후보는 1년 전부터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다시 장애인계로 돌아왔다. 다시는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고 신물이 난다면서 외면할 법도 한데, 장애인 당사자라는 이유는 그를 다시 장애인계로 돌아오게 했으며, 현재 식어버리거나 색바랜 장애인운동을 다시 살리려야겠다는 마음이 과거의 아픔보다 우선이었던 것이다.

최근 한자연 등 자립센터 소장들과 교류하면서 다시 장애인 운동의 불씨를 살리려 하고 있다. 장애인노동권 확보를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운동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차기 국회 회기에서 하영택 소장이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장애인 운동의 주제로 들고나올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전장연과 다른 색깔로, 때로는 서로 힘을 합하며 식어버린 장애인 운동사를 새로이 써나갈 것이다. 목소리가 큰 단체의 주장이 내세운 사업들이 무질서하게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의 복지 서비스가 권리를 중심으로 국가의 책임을 더욱 강하게 요구해 줄 새로운 장애인 운동 에너지로 필자는 하영택 소장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운동사의 주역들에게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오로지 사명감으로 장애인 권리라는 한 곳만 바라보고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라면 지지를 보내어 주어야 할 것이다.

15년이 지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앞으로 장애인계에 필요한 인재가 불명예를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적 책임을 물은 당사자로서 그 짐이 너무나 가혹했음에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이 용기를 내어 장애인 운동의 불씨를 살리고자 하는 의도에 기대를 걸어본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승인
알림
6639e7203a30a@example.com'

1 Comment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wooriomega@naver.com'
최용화
2 months ago

어려운 시절 하영택 회장과 가끔 시간을 가진 한 사람입니다.
하영택회장이 감내한 그 인고의 세월에서 벗어나
장애운동의 새로운 동력을 지피는 하영택 소장님을 적극 지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