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기술의 발전과 그만큼 중요한 위험성

0
37
GPS 기능이 장착된 신발이 일상에 활용된다면 유도블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남은

[더인디고 = 박관찬 기자] 현대사회는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기술이 삶의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폰만 해도 매년 출시되는 새로운 모델에는 기존에 없던 다양한 기능의 장착으로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러한 기술들을 활용하여 현재가 아닌 미래 사회의 모습을 다루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허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기술이 발전하고 있기에 그런 상상이 가능하듯 실제로 구현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영화 ‘업그레이드(2018)’는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자주인공의 경추에 ‘스템’이라는 인공지능 두뇌 시스템을 장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템’의 도움 덕분에 침대에 누워서 꼼짝하지도 못했던 남자 주인공은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더 나아가 상상도 못했던 힘을 가지게 된다. 어찌 보면 비장애인이었다가 장애인이 되었고, 다시 비장애인이 된다.

만약 ‘스템’이라는 인공지능 두뇌 시스템이 실제로 개발 및 출시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럼 더 이상 목발이나 휠체어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스템’이 걸어다닐 수 있게 해주고, 뛰어다닐 수 있게도 해줄 것이다. 그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또는 활용하지 못했던 몸의 어느 부분이든 ‘스템’이 그야말로 ‘업그레이드’ 해 주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는 흐름에서 만약 이런 기술까지 개발된다면, 비장애 주류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이상 장애를 전제로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사회에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소위 ‘똑똑한’ 사람만 주목받을지도 모른다. 그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건 더 이상 감동이나 인간승리와 같은 단어로 포장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현 시점에서는 신체적으로 손상된 부분을 백퍼센트 커버해 줄 수는 없다.

최근 일본에서 신발에 GPS(전 지구 위치 파악 시스템) 기능을 장착하여 시각장애인이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이 신발을 활용하면 앞이 보이지 않아도 GPS 기능을 활용하여 시각장애인이 혼자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 올바른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를 서로 다른 진동으로 전달하거나 가야 하는 방향을 진동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길의 방향과 올바른 또는 잘못된 길을 진동으로 알려주는 것 외에 횡단보도나 건물의 입구 등을 세심하게 알려준다면 분명히 시각장애인에게는 영화 ‘업그레이드’에서 ‘스템’ 못지않은 기능을 장착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더 이상 유도블록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신발의 진동이 가야 되는 방향을 다 알려주기 때문이다.

기술의 위험성

얼마 전 읽었던 책 [집으로 가는 가장 먼 길]은 읽는 내내 ‘내가 저자라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저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전 세계를 여행하는 에세이인데, 특히 내비게이션의 오류 대목이 크게 와닿았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내비게이션의 오류로 인해 잘못된 길로 들어갔고, 오토바이가 진창에 빠졌다. 저자가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데만 4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과연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어땠을까?

시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오토바이를 운전하기 어려울 거라는 걸 전제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내비게이션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스템’이나 GPS 기능을 장착한 신발을 장애인이 일상에서 활용하다가 오류가 생긴다면 진창에 빠지는, 어쩌면 그보다 더한 위험에 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기술적 영역이 장애인에게 보조공학기기 역할을 해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일상생활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처럼 오류로 인해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고, 더구나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 진창에 빠지는 상황이 보조공학기기에 의존하던 장애인에게는 정말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스템’의 기능이 멈추면 사지마비가 있는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발의 GPS 기능이 멈추면 그냥 신발일 뿐이기에 시각장애인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라 헤매게 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고장이나 오류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는 만큼 위험성을 절대 배제해선 안 될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 중이던 장애인이 전동휠체어 배터리가 방전되는 바람에 길에서 이도저도 못하게 된 상황을 접한 적이 있다. 기술이 고도화되는 흐름에서는 이러한 ‘배터리’ 사용보다 고장이나 오류 없이 언제나 사용 가능한 게 훨씬 더 필요한 기술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기능도 그 어떤 발음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장애인 인구 중 절반이 넘는 수치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또 100세 시대라고 불리는 흐름에서 아무리 건강하게 살아가더라도 결국은 신체적 기능의 노화로 장애를 가지게 될 수 있다. 초고령 사회에서, 또 후천적 장애인이 증가하는 흐름에서 기술적인 부분이 앞으로 더욱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계속 고도화 및 발전되는 기술인 만큼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하면 좋겠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승인
알림
662f6cbcccc65@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