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임진각에 도착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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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언덕 풍경 ⓒ전윤선
▲통일언덕 풍경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봄이 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다. 상춘객은 봄꽃 명소를 찾아 전국을 여행하며 봄 마중에 진심이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봄꽃은 일제히 기립해 봄의 여신을 맞을 채비를 단단히 하고 본 게임에 들어갔다. 북쪽으로 진군하는 봄꽃들의 발걸음은 열 맞춘 군인 같다. 봄의 한복판을 지나는 사월 한 달은 모든 것 제쳐두고 꽃놀이하며 안식월을 보내고 싶다. 원하는 계절에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활동으로 한 달을 보내는 시간은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포상 휴가의 시간이며 오늘에 젖으면 내일이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진격하는 봄은 한반도 허리 임진각에도 도착해 있었다. 가장 늦게 봄이 도착하는 임진각은 봄의 여신도 자비를 베풀어준다. 바람은 온화하고 햇살은 은혜롭다. 임진각과 가까운 북녘땅에도 살포시 온기를 뿌려준다. 임진각은 낯선 언어로 소통하는 외국인 천지다. 세계 유일의 분단 현실을 안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각 나라마다 특색에 맞는 관광자원 개발로 여행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임진강을 건너는 평화 곤돌라는 금단의 땅을 개방해 안보 여행지로 만들어졌다.

▲임진각 평화 곤돌라 ⓒ전윤선
▲임진각 평화 곤돌라 ⓒ전윤선

평화 곤돌라를 타기 위해서는 보안 서약서를 작성해야 매표가 가능하다. 평화 곤돌라는 전동휠체어를 탄 승객도 안전하게 탑승 가능하다. 단, 철재 캐빈만 탑승 가능하다. 승강장에 캐빈이 도착하면 거의 정지된 듯 해 탑승한다. 캐빈에 탑승하면 양쪽 의자를 접어 휠체어를 내리는 방향으로 회전하면 내릴 때 안전하다. 평화 곤돌라는 임진강 분단의 아픔을 건너 통일의 희망을 여는 곤돌라다. 캐빈 아래로 임진강의 황토색 강물이 서해로 흐른다.

▲평화전망대 가는 길 ⓒ전윤선
▲평화전망대 가는 길 ⓒ전윤선

상부 승강장에 도착해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로 가는 길 5백 미터 정도는 경사 구간이어서 수동휠체어 이용인은 반드시 동행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동휠체어는 휠체어 사양에 따라 간혹 도움이 필요하지만 내가 탄 전동휠체어는 도움 없이 씩씩하게 잘 올라간다. 길 양쪽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고 지뢰 경고 문구가 최전방임을 각인시킨다. 임진각 평화 전망대 도착하니 철조망에 소망 리본이 바람이 흩날린다. 소망 리본은 정전협정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서 자유와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전망대를 찾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리본이다.

바로 앞에는 녹슨 월경표지판이 눈에 띈다. 월경표지판은 비행금지구역임을 알리는 항공 경고판이다. 상공에 떠 있는 항공기 식별이 용이하도록 하늘을 향해 15도가량 경사져 있다. 월경표지판은 1953년 7월 군내면 백연리에 미군이 캠프 그리브스에 주둔하면서 만들어진 시설로 전망대를 조성하면서 발견됐다. 녹슨 철재 물은 세월의 무게가 얹혀 분단의 아픔이 느껴진다.

▲임진각평화등대 ⓒ전윤선
▲임진강평화등대 ⓒ전윤선

월경표지판 앞에는 임진강 평화등대가 북녘땅을 향해 있다. 평화등대는 4·27 남북공동성명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군사 분야 합의를 통한 DMZ 민통선 지역을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약속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조형물이다. 평화등대처럼 분단의 땅 한반도에도 서로 왕래하며 평화의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길 소망해 본다. 바로 앞 평화정도 마찬가지다. 평화정은 파란색 보도다리와 연결돼 있다. 실제 보도다리는 판문점 회의실과 중립국 감독위원회 캠프 사이에 있는 작은 다리이지만 평화와 새로운 미래를 염원하며 평화전망대에 모형으로 만들었다. 군사분계선에 있는 실제 보도다리는 2018년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을 대비해 남북의 두 정상이 나란히 걸을 수 있게 확장 공사해 군사분계선이 있는 곳까지 연결돼 있다고 한다. 보도다리에 서면 장단반도와 북한산, 경의중앙선, 자유의 다리, 독개다리, 임진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임진강 강물은 막힘없이 서해로 흐르는데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을 긋고 왕래도 없이 칠십여 년을 서로를 미워하며 등 돌리고 사는 걸까. “칠십년 세월 그까짓 게 무슨 대수요 함께 산 건 오천 년인데” 노랫말처럼 칠십여 년의 시간은 오천 년에 비해 짧은 시간이다.

발길을 옮겨 갤러리 그리브스로 향했다. 그리브스는 미군이 사용하던 캠프를 갤러리로 재생했다. 갤러리로 접근하는 길도 경사가 있어 수동휠체어 사용인은 반드시 동행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캠프 그리브스는 남북전쟁 정전협정체결 후 정부에서 미군에게 토지를 제공하고 군영을 설치하는 것으로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 체결된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캠프 그리브스를 2004년에 폐쇄하고 2007년에 한국으로 반환했다. 미군이 사용하던 그리브스 캠프를 구조 변경을 거쳐 갤러리로 문을 열었다. 그리브스는 7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여행이 전시 중이다. 한국전쟁 당시 꿈 많은 학생이 학도병으로 징집되면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비극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한국전쟁은 유엔군으로 참전한 미군의 희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캠프 그리브스는 정전 협정의 과정과 전쟁에 참여한 어린 군인이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중심으로 전시 중이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의 주인공은 영화 “포화속으로”로 만들어졌다.

▲갤러리 그리브스 ⓒ전윤선
▲갤러리 그리브스 ⓒ전윤선

그리브스를 나와 다시 평화곤돌라를 탔다. 하부 승강장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긴 침묵이 이어졌다. 전시관에서 본 영상 속 주인공인 이우근의 목소리가 자꾸 떠오른다. 이우근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학도병이다. 어린 학도병은 전투 중에 총성이 잠깐 머진 시간에 독백하듯 어머니께 편지를 쓰며 말한다.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은 여전히 아슬아슬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전쟁을 잠깐 쉬는 휴전이 아닌 전쟁을 아주 끝내는 종전의 그날은 언제쯤 올까.

임진각 독개다리에는 치유되지 못한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철마가 멈춰 서 있다. 이 철마는 경의선 장단역 중기 기관차로 한국전쟁 당시 피폭으로 탈선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남북분단의 상징물이다. 철마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녹슬어 형체가 떨어져 나갔지만 보존을 위해 석 달에 한 번씩 기름칠로 부식을 막는다고 한다. 아픈 역사의 증거물로 보존하기 위해서 문화재로 등록된 후 역사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기관사 한준기의 증언에 따르면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서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후진해 장단역에 도착했을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1020여 개의 총탄 자국과 휘어진 바퀴는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독개다리 지하 벙커에도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지하 벙커는 군사시설을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한국전쟁 당시부터 사용하고 있던 군 지하 벙커로서 내부는 군 상황실과 영상체험관으로 구성돼 있지만 계단뿐이어서 휠체어 탄 여행객은 접근할 수 없다. 바로 옆 자유의 다리도 보수 공사 중이어서 출입을 금하고 있다.

▲통일언덕 바람개비 ⓒ전윤선
▲통일언덕 바람개비 ⓒ전윤선

납북자기념관을 나와 수풀누리로 이어갔다. 수풀누리는 수천 개의 바람개비와 통일 부르기 조형물이 야트막한 언덕에 임진각의 상징처럼 서있다. 수풀누리는 내 맘대로 통일언덕이라고 이름 바꿔 부르기로 했다. 통일언덕은 눈에 띄는 조형물이 뜨문뜨문 포진해 있다. 빨간 핀이 콕 박힌 언덕에 올라 바람을 느끼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연초 무장애 여행 확장을 위해 몇 가지 다짐이 흐트러지지 않게 핀으로 콕 꽂아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무장애 여행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긍정 관계를 맺게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속도보다 깊이 보고 넓게 확장해 모두가 소외되지 않는 무장애 여행에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임진각에는 안보와 관련된 여행코스로 가득하다. 그중 한 곳이 통일부 산하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이다.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은 납북자 및 그 가족들의 명예회복과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평화 통일의 의지를 다지기 위한 공간이다. 전시관은 상설전시와 특별 전시로 나눠 관람객을 맞고 있다. 상설전시로는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가 전시 중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다. 가족의 범위는 시대에 따라 세대에 따라 다르지만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는 전쟁 통에 헤어짐의 고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영혼을 파괴하는 가장 나쁜 인간의 파렴치를 드러낸다. 전쟁의 위협을 막기 위해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파괴력이 더 막강한 핵무기를 만드는 아이러니한 현실.

▲독개다리에 멈춰선 철마(좌)와 장애인 화장실(우) ⓒ전윤선
▲독개다리에 멈춰선 철마(좌)와 장애인 화장실(우) ⓒ전윤선

무장애 여행 팁

  • 가는 길: 임진각역(경의중앙선) 2분 거리, 경기도교통약자광역이동지원센터 즉시콜 이용 전화 1666-0420
  • 접근가능한 식당: 한반도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 2층 식당가
  • 접근가능한 화장실: 평화곤돌라 상하부 건물, 한반도 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 납북자기념관 등 임진각 곳곳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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