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러닝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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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컨이 바다를 부럽게 바라보고 있다.ⓒ픽사베이
▲펠리컨이 바다를 부럽게 바라보고 있다.ⓒ픽사베이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러닝머신에 오르는 순간에 가장 부럽게 느껴지는 대상은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는 사람이다. 운동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럼 아예 올라가지 않으면 되지!’하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기구를 앞에 두고 오르지 않는 것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다.

숨이 멎을 것 같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뿌듯함과 상쾌함에 중독된 이들에겐 러닝머신에 오르는 순간이야말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다.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를 때 정상에서 내려오는 이들을 만난 기분이라면 좀 비슷할까? 화장실 대기 줄의 맨 뒤에 서서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나오는 이의 모습을 볼 때라면 설명이 될까? 운동중독자들의 심리를 다른 이들에게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겠지만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 중에 있는 이들이라면 그 끝에 다다른 이들의 모습은 존재 자체로 부러움일 수밖에 없다.

대학 합격증 받아 든 선배를 바라보던 고등학생 때도 그랬고 다른 이들의 결혼식 다니던 총각 때에도 그랬지만 지갑에 만 원짜리 잔뜩 들어있는 어른들 쳐다보던 꼬마 때에도 막연한 부러움이 느껴졌다. 다 기억할 수 없지만 훨씬 더 많은 장면에서 난 나보다 먼저 가는 이들을 부러워했고 내가 마주한 상황을 두려워했다.

다행히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많은 순간 나의 모습은 내가 부러워하던 이들의 모습을 닮아갔다. 20분을 멈추지 않고 달린 땀에 흠뻑 젖은 나의 모습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부러움이 되었고, 난 어른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이런저런 목표를 이룬 사람이 되었다. 그건 내가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렇다.

오늘 목표한 러닝머신 위에서의 운동량은 무사히 채웠지만 난 내일 또다시 기구에 오를 것이다. 오늘은 누군가의 부러움으로 결말을 맞이했지만, 내일은 또 다른 부러움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대학생이 되었었지만, 졸업해야 했고 졸업했지만, 취업해야 했다. 어른이 되었지만, 또 다른 책임이 생겼고 하나의 과제를 이루면 또 다른 숙제가 주어졌다.

매일 러닝머신에 오르는 것처럼 매일 부러워하고 또 매일 뿌듯하다. 많은 날 동안 러닝머신에서 난 목표한 시간을 채우고 내려오지만 때로는 중도에 포기하기도 하고 아예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활기차게 달리는 이들이 더 많이 부럽지만, 어차피 그들도 나처럼 달리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오늘 부러워했으면 내일 부러움이 되면 되고 오늘 달리지 못했으면 내일 다시 달리면 된다.

산을 오르는 이도 화장실 앞에 서 있는 이도 오늘의 정복과 성공이 끝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일 또 오르고 내일 또 줄 서고 그러면서 산다. 내가 오늘도 러닝머신 앞에 서는 것은 두렵지만 설레기 때문이다.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은 그리고 운동을 끝낸 사람이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이 부러운 사람은 산을 오르고 싶은 사람이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사람이 부러운 사람은 화장실에 가고 싶은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내가 오늘 부러워할 대상이 많다면 그만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고 그만큼 사는 것이 가치 있다는 뜻이다. 머신에 오르는 것조차 의미 없다 느낀다면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는 이가 부러울 이유는 없다. 아무도 부럽지 않다면 삶의 목표가 없는 것이다.

부럽다 느껴지는 대상이 있다면 참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내게 부러움을 선사한 이들처럼 되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의 부러움이 되기 위해 한 번 달려 보기로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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