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일회용 컵과 비닐

1
153
▲재사용할 수 있는 컵 ⓒ픽사베이
▲재사용할 수 있는 컵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글쓰기 모임을 끝내고 저녁을 먹고 나온 시간이 7시가 넘었다. 한 달 한 번 모임이라 헤어짐이 아쉬워 차 마시며 담소 나누기까지 그게 모임의 순서가 되었다. 식당 옆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주문에 앞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기 8시에 마감인데요. 죄송하지만 일회용 컵으로 드려도 될까요?”

“네? 아 네, 그러세요.”

일회용도 괜찮다고 했는데 우리 테이블에 놓인 차들은 모두 예쁜 다기에 담겨 있었다.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니

“이분이 일회용 안 된다고 하셔서…”

그녀가 공손하게 가리킨 ‘이분’은 S 선생님이었다.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분은 지난해 10월부터 만날 때마다 짙은 주황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중간에 내가 두 번 모임에 빠졌으니, 그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그분을 생각하면 항상 주황색 등산복이었다. 소매 끝에 작은 구멍이 난 걸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 놀랐다. ‘뭐지? 너무 좋아하는 옷이라 버리지 못하는 건가?’ 나는 그분의 소매 끝을 볼 때마다 옷에 대한 애착과 지지리 궁상을 떠올렸다. 옷 한 벌 살 처지가 못 된다고 생각하지 않은 건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고비용의 단체 다크투어를 통해 역사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대화 중에도 빈곤의 그늘은 없었다. 그분은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자신이 원하는 정당의 당선을 위해 47명의 후보에게 후원금을 보냈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대단하시다며 ‘엄지척’을 했었다. 무엇보다 그분은 열혈 환경보호주의자였다.

엄마 마음으로 마감 시간 임박한 카페 알바생이 설거지 귀찮아서 우리에게 일회용 컵을 권한 것 같아 우린 그냥 받아들였지만 그분만 용납하지 않았다. 매장에서 먹는데 왜 일회용이냐고 말한 걸 우린 몰랐다. 예쁜 다기 보면서 틀린 말이 아니라 아무도 반론하지 않았고 우린 금방 잊고 이런저런 수다로 요즘의 세태를 꼬집곤 일어났다.

유난히 빨리 찾아온 6월의 무더위에 종일 내리는 비가 반가웠던 날, 글쓰기 모임을 가졌다. 하얀 면으로 된 7부 소매의 계량한복 비슷한 상의를 입은 S 선생님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각자 준비한 글을 읽고 조언과 느낌을 이야기하며 글쓰기에 진심인 마음들이 오갔다. 글에 대한 첨삭보다 소재에 꽂혀 웃음꽃 피는 순간들은 참석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가깝게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가끔 주객이 전도되기도 하지만 딴 길로 세는 걸 잡아주는 분도 계시기에 모임의 원줄기는 방향을 잃지 않고 활기차다.

저녁 메뉴 정하는 것도 즐거운 과정인데 자주 가던 중식당이 폐업하는 바람에 다른 곳을 찾아 갔다. 비 그친 이른 저녁의 도심은 시원했고 삼삼오오 걷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손님이 없는 한식당에 들어갔다. 착석하려고 하는 우리들과 달리 S 선생님은 머뭇거렸다. 메뉴가 별로라 그러시나 바라보다가 이유가 딴 데 있음을 알았다. 식사 후 빈 그릇 수거를 편하게 하려고 얇은 비닐을 겹겹이 덮어 놓은 테이블이 그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었다. 한참을 걸었던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못했는데 결국 그분 혼자 식당을 나갔다.

“붐비는 관광지 식당도 아니고 동네에 이렇게 비닐 깔고 장사하는 곳에선 밥 못 먹겠어요. 환경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으시잖아요.”

그분의 말에 주인장의 힘없는 대꾸, “네, 편할 대로 하세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임 대표의 만류에도 그분은 나가 버렸고 주인장의 변명인 듯 해명 같은 독백, ‘혼자 하는 식당이라 일손 줄이려고 이러는 건데…’에 마음이 쓰였다. 환경보호에 대해 그분이 지나친 건지 우리가 무심한 건지 순간 헛갈렸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굳이 그걸 지적해서 동행인들이 불편하고 인건비 줄이려고 그럴 수밖에 없는 주인장에게 쓴소리해야만 했을까?

식사 후 넓고 근사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밥도 못 먹고 간 그분 얘기가 나왔다. 그분을 미리 배려하지 못했음을 대표는 아쉬워했다. 나는 지난번 카페에서의 일을 다소 원망 담은 투로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그분의 융통성 부재에 대해 말을 했다.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대놓고 그분이 지나쳤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머쓱했다. 환경보호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과 한 번쯤 일하는 분의 불편을 생각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줏대 없는 나를 흔들었다.

귀갓길에 또 비가 내렸다. 우산에 잠시 머물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게 말을 건넸다. 일회용 컵과 썩지 않는 비닐을 사용하는 이들의 상황을 옹호한답시고 바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의 정의를 잊지 말라고.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승인
알림
6689a27a9b49d@example.com'

1 Comment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cooksyk@gmail.com'
cooksyk
2 days ago

올곧은 환경실천 정신으로 박차고 나가신 분도 계시고
알바비 감당 안되어 궁여지책을 쓴 음식점 주인 배려하는 분들도 계셔서 혼탁한 세상이 그럭저럭 굴러가는게 아닐까요
또한번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