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시린 이 치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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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기구 ⓒ픽사베이
▲치과 기구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며칠 전부터 이가 시리고 아팠다. 치주염인가 생각하면서 병원을 갈까 치아 보험부터 가입할까 머리를 굴렸다. 최근 병원 다녀온 흔적 때문에 보험료가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다가 지금부터 납입하는 보험료를 그냥 치료비로 써도 그게 그거라는 계산을 혼자 해봤다.

“이빨은 쪼매 아플 때 병원 가는 게 돈 버는 기다, 빨리 병원부터 가그라.”

이가 부실해서 치과에 자주 다니는 남편의 한마디에 가까운 병원으로 쫓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검색하고 왔는데도 병원 이름이 바뀌어 매주 목요일은 휴업이었다. 좀 더 참아보고 다른 날 다시 올까 망설이다가 이왕 나선 길 근처 치과로 발길을 돌렸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지나치던 사거리 건물 2층에 위치한 병원, 처음이라 생각했는데 내부에 들어서니 낯이 익었다. 데자뷰인가 잠깐 서서 둘러보니 10년 전 이사 와서 왔던 곳임이 떠올랐다. 요즘 건망증을 넘어 치매 초기인가 의심할 정도로 내가 한 일을 전혀 기억 못 하는 일이 잦았는데 10년 전 장소가 생각나다니 사소한 기억 하나가 주는 작은 환희를 맛보았다.

예약을 하지 않고 왔어도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기기에 부착된 물체의 홈에 맞춰 물고 있으라는데 조금 헤맸다. 병원 출입 자체가 힘든 자폐인 아들 생각에 이런 건 절대 못하겠구나 생각하니 내 불안도가 조금 내려왔다. 내게 닥치는 일들은 어찌저찌 해결하면서 사는 게 가능하지만 그럴 수 없는 아들 삶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플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입속이라니 그런가보다 싶은 치아 사진을 보며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뒤에서 말을 하니 누군지 모를 여성이 스케일링부터 하고 나서 세 번 나누어 잇몸치료를 한다고 했다. 하여간 치과는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으니 다들 미루게 되나 보다. 우선 스케일링을 했다. 치과는 윙윙거리는 기계 소리가 불안감을 가중한다.

“어머니, 입술과 혀에 힘주지 마세요. 다칠 수 있고 제가 너무 힘들어요.”

“에? 어버버 어버버…”

잠시 일어나서 입안을 헹구고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서 힘이 들어갔나 보다고 했더니 간호사가 웃으며 이해한다고 했다. 혀가 근육질이라 내가 힘을 주면 치료하는 데 더 애먹는다니 정신 차리고 긴장 풀려고 나름 노력했다. 신체의 어딘가를 남에게 보여준다는 건 참 성가시다. 아픈 것도 문제지만 내 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을 때 참 난감하다. 산부인과 가면 괜한 수치심도 함께여서 너무 싫었다. 그나마 약이나 수술 등으로 치료될 수 있는 일시적 병은 시간이 지나면 말끔해진다. 생로병사를 피할 순 없지만 그래도 병은 빈도와 강도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일 수 있겠다. 선천적으로 가진 거라면 억울하고 가혹하지만 예방과 적절한 치료로 피할 수도 있으니 병명에 따라 삶과 죽음이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은 누구의 처방일까.

아들의 장애를 처음 알았을 때 나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내가 노력해서 아들의 장애를 완벽하게 ‘고쳐 놓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없는 팔다리 하나가 생기게 해 달라고 비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아들의 머릿속을 교육이나 훈련으로 감쪽같이 바꿔 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지한 엄마는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아들을 혹사했다. 지나고 보면 어린 시절 그냥 놀게 놔둬야 했던 것을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특수 교육을 디밀었다. 어린 아들이 그런 혹독한 과정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어릴 때 교육을 과하게 한 엄마들은 좀 놀게 해 줄 걸 후회하는 반면 경제력이 부족해서 교육을 멀리했던 엄마들은 빚을 내서라도 교육했으면 달라졌을까 아쉬워하곤 한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지만 해보고 후회하라고들 말한다. 조기교육은 다르다. 해도 안 해도 후회는 하지만 하지 않고 후회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어마무시한 특수교육비를 절약할 수 있다.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귀가 얇아서 좋다는 건 무조건 다 했다. 민감기를 모르니 뭐든 해서 아이가 흡입할 수 있는 것과 맞닥뜨리길 무작정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교육비는 투자가 되어야 하는데 나에게 아들 교육비는 불합리한 과소비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건 맹목적으로 무조건 행했던 교육 때문에 정작 배워야 할 것들을 놓치고 살았다. 때를 지나고 나서야 그것을 알아차리는 건 이미 늦다. 하지만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는 일, 조금 더 앞서 느꼈다면 그건 행운이다. 돈을 목적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우리 주위를 서성이는지 우리는 안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부모들을 악용하는 것들을 물리치기에 부모 마음은 살짝만 건드려도 터지는 물방울이다.

세 번으로 나누어 잇몸치료를 끝냈다. 양치 후 더 시리던 이가 말끔해졌다. 아파도 병원과 사람을 통해 치료 가능한 몸과 마음이면 다행이다. 치료될 수 없는 것들을 갖고 산다는 건 본인은 물론 연관된 사람들도 고달프다. 그 고달픔을 나누려는 마음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면 고달픔의 수위가 조금이나마 낮아지지 않을까.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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