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자유로움’을 추앙하라

0
123
▲자유로움을 추앙하라 /사진=더인디고 편집
▲자유로움을 추앙하라 /사진=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요즘 애써 찾아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결핍’에 대한 이야기다. 경기도 어느 한적한 마을에 사는 염 씨 삼남매가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겪는 변방인으로서의 핍진성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빗겨 난 이들의 일상은 비틀어지고 깨졌던 경험에서 비롯된 ‘관계’에 대한 불신과, 그 불신 위에 싹트는 새로운 욕망 사이를 오가며 ‘먹고 마시는 행위’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미 낡고 헤진 텅 빈 넝마 같은 마음 안에 채워질 리 없는 결핍은 마침내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충족을 꿈꾼다. 특히 삼남매 중 막내인 염미정과 정체불명의 구 씨라는 인물과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궁금증에서 회가 거듭될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선은 단순히 남녀 사이의 흔한 썸타기가 아닌 계급 욕망으로 나아간다.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진 나는, 장애를 인식했던 순간부터 결핍에 시달렸지만 단 한 번도 그 텅 빈 속을 채울 수 없었다. 변방의 삼남매에게 결핍을 견뎌내기 위한 상징적 행위가 먹고 마시는 원초적 채움이었다면, 나의 결핍을 채우는 행위는 고작해야 장애가 없는 몸의 나를 ‘상상(想像)’하는 것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욕망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군인이 되고 싶다거나, 혹은 야구선수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욕망이라기보다는 무더운 여름날 마루 끝에 앉아 설핏 든 낮잠 끄트머리를 스친 허망한 꿈일 뿐 손가락 마디만 한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은 여전히 결핍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게 결핍인 장애는 누군가에게는 정치가 되고 심오한 이론이기도 하며, 어떤 이들에게는 밥이 된다. 또 다른 이에게 장애를 겪는 일상은 사례가 되어 세상을 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구 씨에게 염미정이 추앙이라면, 나는 ‘장애 없는 몸’을 추앙한다.

추앙(推仰)이란 말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보다’는 뜻으로 좋아한다거나 존경에 더해 믿고 따른다는 종교적 의미로까지 확장된다. 어감조차 웅숭깊고 심오하기까지 한 추앙은 그래서 염미정과 나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이다. 염미정이 구 씨에게 단호하게 내린 ‘추앙하라’는 명령은 상처투성이인 서로에게 향하는 절박한 구원의 요청이라면 나의 ‘장애 없는 몸’에 대한 추앙은 나아갈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길인 셈이다. 그래야만 염미정의 추앙은 구 씨와의 관계가 허울 좋은 위로와 껍데기 행복 속에서 허망한 말들과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들을 버텨내며 꾹꾹 봉인된 닫힌 감정을 여는 열쇠가 되고, 마침내 해방의 기회로까지 이어지는 문을 열 수 있게 될 테니까. 마찬가지로 나 또한 ‘장애 없는 몸’을 추앙함으로써 ‘장애 없는 몸’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키워 어쩌면 마음속 한구석에 켜켜이 쌓인 불안과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털어내는 것. 그리고 퇴화된 몸을 별러 결핍을 가득 채우는 상상이나마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염미정과 구 씨의 추앙은 서로에게 갇힘으로써 오히려 ‘해방’되고자 하는 구원의 몸부림이라면, 나의 추앙은 상상을 통해 이룰 수밖에 없는 ‘장애 없는 몸’을 향한 유일한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다. 그래서 ‘장애 없는 몸’을 추앙한다는 나의 고백과 자신을 추앙하라는 염미정의 구 씨를 향한 명령은 이뤄질 수 없지만, ‘결핍’을 메우기 위해 먹고 마시는 행위처럼 ‘해방’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승인
알림
66304de821e55@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