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부모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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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위에 분홍 카네이션이 놓여있다. ⓒ픽사베이
▲엽서 위에 분홍 카네이션이 놓여있다.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아들이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우리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비참한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고 계셨을 것이 분명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 소중한 보물에 닥쳐온 상상 한번 해 본 적 없는 비극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적 나약함에 끝 모를 좌절과 슬픔으로 1분 1초를 근근이 견뎌내며 살아내셨을 것이 확실하다. 더욱 잔인한 것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감당할 수 없는 굴레를 겪으면서도 아들 앞에서만큼은 담담해야 하고 희망적이어야 했다는 것일 수 있겠다.

내가 실명이라는 사실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인정하고 받아들인 줄은 모르겠으나 부모님에게 그것은 30여 년 지난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감정선에 놓여있음을 잘 알고 있다. 길을 혼자 다니는 것도 숟가락에 반찬 하나를 얹는 것도 더듬더듬 점자책을 읽는 것도 여전히 내 부모님께 나란 존재는 딱하고 미안하고 가슴 저림으로 새겨져 있다.

내가 얼마나 크게 웃는지, 얼마나 괜찮아졌는지, 또 내가 얼마나 잘나가는지와 아무런 관련성 없이 부모님에게 가장 큰 꿈이 여전히 나의 시력 회복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쩌면 그것은 장애인 부모가 숙명적으로 지고 가야 하는 짐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내 어머니는 아들의 과외선생님 집 앞에서 꽁꽁 얼어가는 손을 부여잡고 수업이 끝나는 몇 시간을 기다리셨다.

새로운 물건이 출시되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우리 아들 한 번 만져보게 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이기적인 것도 어려운 것도 비참한 것도 때로는 나쁜 일마저도 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머뭇거리지 않으셨다.

내가 보이지 않는 눈 가지고서도 그런대로 사람 노릇 하면서 살 수 있을 정도로 되기까지의 시간은 앞길 닦아주고 뒤에서 밀어주신 부모님의 희생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학교에서도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직장에서도 마흔이 넘은 오늘까지도 내가 가는 길이 크게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나 대신 힘들어해 주신 부모님의 덕이다.

나의 부모님은 특별히 모난 곳 없는 참 좋은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관련된 일 앞에서는 아직도 독불장군 타협 불가 전사가 되신다.

세상 당당하신 두 분은 어느 틈엔가 나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 앞에서라도 자존심 하나 없는 비굴한 약자의 모습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대단할 것도 특별히 잘난 것도 없는 내가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자랑인 두 분께 아들 하나는 잘 키웠다는 소리 들려드리고 싶은 것이 부족한 아들의 소망이지만, 한 걸음 나아가면 또 두 걸음 걱정 끼치는 것이 내 삶이기도 했다.

이제 다른 어머니 아버지처럼 아들 이야기 자랑하며 사시려는 두 분께 난 또 큰 짐이 되어버렸다.

환대받지 못하는 결혼식 앞둔 아들 앞에서 나의 부모님은 드러내 놓고 크게 한 번 웃지도 못하신다.

40년을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아들 장가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는 나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어야 마땅하겠지만 장애 가진 아들 두었다는 이유 하나로 두분은 남들 다 하는 며느리 자랑 한번 시원하게 하지 못하신다.

죄지은 것 없이 미안해하고 잘못한 것 없이 소리 죽여야 하는 시간을 두 분은 또 그냥 그래 왔던 것처럼 묵묵히 견뎌주신다.

왜 억울하지 않고 왜 답답하지 않겠는가만은 사돈 어르신만큼이야 힘들겠냐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심정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도전 앞에서 난 문득문득 장애가 가진 불편함을 새삼 느끼곤 한다. 그때마다 내 부모님은 나보다 앞서서 그 몇 배만큼 아프고 힘드셨다.

가장 기쁜 순간에 또 한 번 죄지은 것 없는 죄인이 되어버린 두 분께 난 염치 없이 또 한 번 효도의 시간을 미루고 말았다.

“어머니 아버지 이해해 주세요. 제게 시집오는 친구와 그 부모님 심정 아시잖아요.”라고 말하는 나는 또 한 번 모든 짐의 무게를 부모님께 대신 지워버렸다.

오랜만에 아들 집을 찾으신 부모님께 내려드린 커피 한잔에 어머니는 감동스럽다며 세상에서 먹어본 커피 중 가장 맛있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그 맛이 그 정도일 리 없겠지만 보이지 않는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 준 커피 드시는 어머님의 감정만큼은 진심으로 감동인 것을 알기에 내 마음은 또 한 번 복잡해진다.

결혼을 앞둔 나는 요즘 너무나도 행복하다. 그렇지만 그 기쁜 감정은 오롯이 나의 것일 뿐 그 시간을 위해 지금까지 애쓰신 내 부모님의 것이 되지는 못한다.

별것 아닌 커피 한 잔에도 한 없이 기쁘다고 말씀하실 만큼 나의 효도는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자식이 부모 사랑에 보답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애 가진 나는 한 번 더 걱정덩어리가 되었고 다음번엔 꼭 효도하겠다는 확신 없는 다짐을 되풀이했다.

정말 큰 일을 앞둔 오늘 글로나마 부모님께 진심 담아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눈치 보지 않고 시원하게 아들 자랑 며느리 자랑할 날도 머지않아 꼭 만들어 드리고 싶다.

커피보다 더 한 것도 너무 많이 받아서 이젠 지겹다고 할 만큼 부모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행복과 감동을 그저 익숙한 평범함으로 무디게 만들어 드리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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