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불량식품이 더 맛있다?… 막장드라마 전성시대를 한하며

2
134
▲펜트하우스 3 /사진=유트브 캡처
▲펜트하우스 3 /사진=유트브 캡처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매주 여러 사람이 추풍낙엽 떨어지듯 죽어 나갔다가 또다시 거짓말처럼 살아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예수님도 한 번밖에 부활 못 했는데 그야말로 예수님도 울고 갈 판이다. 그뿐인가. 한 장면 건너 한 장면꼴로 때리고 부수는 폭력이 이어지고 “죽어!” “죽여버릴 거야!!” 쏟아붓는 악다구니는 볼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가 없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3’(김순옥 극본) 얘기다.

자극적이면서도 선정적인 이야기 전개로 전 시리즈에서 시청률 재미를 톡톡히 누렸던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전편보다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시즌 3로 돌아왔다. 이미 강력한 자극을 경험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계속 붙들어야 하니 더 극한 자극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독한 캡사이신 급 폭력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그중에도 주요 주인공 중 하나인 오윤희(유진 扮)가 주검으로 발견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엽기적이다 못해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인물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더 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거액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치명적인 비밀을 덮기 위해,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심지어 미워서, 질투가 나서 등등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별로 필요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쉽게 제거의 대상이 된다. 이럴 때 ‘사람’은 생명을 지닌 대체불가한 존재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너무도 손쉽게 전락해 버리고 만다.

‘쓸모’로 인간의 가치를 쉽게 환산해 버리는 인식이 위험한 이유는 장애나 약점을 가진 인간은 가장 쓸모없는 대상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전례를 우리는 이미 ‘우생학’이 팽배하던 시대를 통해 보았고 나치의 학살을 통해서 목격하였다. 나치시대에 유태인 학살과 더불어 장애인에 대한 대량 학살을 선동하는 논리가 바로 장애인은 ‘세금을 축내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이 시대에는 그런 우생학적 논리와 태도가 사라졌을까.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생각, 위험한 정신장애인은 다 격리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붐비는 출퇴근 시간엔 민폐를 끼치는 장애인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은 ‘장애인은 거추장스럽고 쓸모없다’고 여기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나치시대에 그랬듯 장애인은 ‘세금 먹는 하마’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고도의 과학기술 발달로 산전검사를 통해 장애가 있는 아이는 지워버리고 우월한 인자만으로 장애 없는 태아를 출산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은 그야말로 우생학적 사고에서 기인한다. ‘왜 태어났니?’… ‘장애’를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우월한 인간들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향해 너무도 당당하고도 당연하게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고작 드라마일 뿐인데 너무 비약적으로 우려하는 것 아니냐고 혹자는 꼬집을 수 있겠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미디어나 게임의 노출이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또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과 폭력 범죄가 막장드라마 이상으로 얼마나 잔인하고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요즘 뉴스를 통해 피부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비단 죽이고 때리고 부수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또 다른 막장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임성한 극본)에서는 편향된 논리와 잘못된 인식으로 폭력만큼의 불쾌함을 자아내는 대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여자는 말이야…’, ‘남자들은 말이야…’ 식의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대사들이 넘쳐나는 것은 물론, ‘B형 남자들은…’식의 혈액형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편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대사들로 가득하다.

이는 그저 한 작가의 시대착오적 인식으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거대한 미디어의 영향력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편향된 시각으로 어떤 대상을 쉽게 일반화하거나 잘못된 고정관념을 비판 없이 강화하는 폐쇄적인 태도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어떤 존재에 대한 몰이해나 편견은 그 대상을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어 버리기 쉽다. 그러므로 한 존재에 대한 단편적이고 납작한 규정이 난무하는 드라마는 그 자체로 이미 폭력적이다.

그렇게 나쁘면 막장드라마 안 보면 되잖아?…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시청률을 올려주는 많은 시청자에겐 그게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쁜 줄 알면서도 먹는 불량식품처럼 그 자극이 주는 재미가 꽤 중독적이기 때문이다. 불량식품을 먹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 유통하는 생산하는 공급자가 문제이듯 불량 미디어도 마찬가지. 불량 미디어의 자극을 충성스럽게 소비해 주는 중독된 시청자를 탓하는 것은 별로 의미도 없고 해결책도 안 된다. 불량 미디어를 양산하는 공급자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제재 방안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승인
알림
663c7ebdaa2fd@example.com'

2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lem72@naver.com'
이은미
2 years ago

“‘쓸모’로 인간의 가치를 쉽게 환산해 버리는 인식이 위험한 이유는 장애나 약점을 가진 인간은 가장 쓸모없는 대상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정말 공감되는 말씀이셔요. 방송에서 나오는 폭력은 중독적이고 그 영향력이 상당해서 문제가 심각해요ㅠ 시청률만을 의식한 방송들이 넘쳐나요. 막장인 영상이 방송되지 않도록 제재 방안이 좀더 꼼꼼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ghk6000@naver.com'
뿔 난 장애인
2 years ago

가장 장애인을 생각하고 위한다는 집단에서 오히려 장애인을 근본적으로 차별하는경우가 있죠.
주류속에 절대 포함시키지 않고 장애인끼리 모아놓고
ㅇㅇㅇ이름이 없고 ‘장애인들’ 이라부르죠.
막상 똑똑한 장애인이 있으면 그 아이디어만 이용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