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⓷] 경제위기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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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더인디고

코로나19 사태에는 두 가지 과제가 있다. 하나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을 막아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충격에 따른 민생의 위기를 해결하는 일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주춤하는 사이 이제 민생문제가 발 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이 과제는 감염병을 막아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장기적이다. 감염병과 비교하면 시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가기가 더 어렵다.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에서 2천 5백 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적 후폭풍이 상당할 것임을 예고하는 전망이다. 당장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부터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병 걸려 죽기 전에 굶어죽겠다”는 말도 나오는 지경이다. 대통령도 지금을 ‘경제비상시국’이라 선언하고 ‘비상경제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있다.

다시 ‘경제위기’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위기 하면 나오는 단어가 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다. IMF 외환위기는 정부의 실정과 기업들의 무분별한 빚잔치 차입경영이 낳은 국가적 부도사태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투기자본들이 실체 불명의 파생금융상품을 남발하는 방식으로 부동산투기를 부추겨 탐욕을 채우려 했던 ‘폭탄 돌리기’의 결과였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금 모으기 운동’ 캠페인에 들어갔다. 빚을 갚으려면 국제공용화폐인 달러가 필요한데, 달러가 없으니 금을 팔아서 달러 환금성을 확보하고자 함이었다. 국민들의 참여는 실로 놀라웠다. 국민들은 저마다 결혼반지와 아기 돌 반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빌린 돈과 국민들의 십시일반을 밑천으로 당시 정부는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에 가까운 공적자금을 기업에 투입했다. 재난생계소득 50조원 투입 여부를 놓고 논란 중인 지금 시점으로 환산하면 600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돈이다. 정부와 기업들이 뭘 잘못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기업을 살려서 경제를 회복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파산 정권을 넘겨받았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힘으로 국난을 극복했다.’며 국민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런 것을 두고 요즘 어느 지자체의 공익광고에서 “대한민국에는 위기극복의 DNA가 있다”고 한다면 굳이 시비할 생각은 없다. 다만,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는 위기극복 과정의 트라우마도 있다.”는 얘기는 해야겠다. 위기극복의 결과가 너무 참혹했기 때문이다.

당시 금 모으기 행렬에 섰던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업자가 되거나 삶을 비관하여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함께 나섰던 다른 상당수 국민들의 당시 어린 자식들은 지금 비정규직이 되어 생존의 바닥을 치고 있다. 뿐인가. 당시 서민들이 줄줄이 쓰러져가는 와중에도 어떤 자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IMF만 같아라”며 쾌재를 부르고 흥청거렸다는 얘기들이 시중에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그렇다면 이번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좀 달라질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정부 정책은 혼란스러워 보이고, 재벌들은 달라진 게 없다. 보도에 따르면 비상경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기업들이 너무 잘해주어서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적극적인 투자를 부탁드린다.”고 했다고 한다. 탈법적인 사내유보금을 천문학적으로 쌓아두고 돈 굴리기를 하는 재벌들이 투자 여력이 없는 것도 아닐뿐더러, 세계적인 불황기인 시점에서 이런 발언들은 좀 엉뚱하게 들린다. 나아가 인센티브 확대, 과감한 규제혁신, 투자금 100% 비용처리 등 그야말로 기업 살리기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어떻게든 경제의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초조함마저 엿보인다.

회의에 참석한 재벌들은 동문서답으로 한술 더 떴다. 재계를 대표하는 손경식 경총회장은 “법인세 인하, 과감한 규제 해제, 대출 완화, 정부예산과 공공기관 기금 조기 집행, 특별근로시간 확대와 특별연장근로제 보완 입법, 국민연금 및 4대 보험료 납부 유예, 휴업수당 지원 확대,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등 요구를 쏟아냈다. 판을 다 깔아주면 ‘땅 짚고 한번 헤엄을 쳐 보겠다.’는 식이다. 정부지원과 국민들의 피눈물 위에 서 있는 대기업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위기를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불평등과 양극화 구조를 바꿔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참여연대 등 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경제민주화, 양극화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는 지난 3월 17일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과 99% 상생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총선 99%상생연대 공동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 요구안에는 재벌개혁, 민생 살리기, 공정사회를 촉구하는 22가지 과제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들 과제에는 우리 사회의 익숙한 아젠다들이 담겨있다.

위기상황을 대하는 정부와 재계의 시각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독점과 불평등 해소 등 경제의 체질개선과 관련한 근본적인 접근은 보이지 않는다. 중소상공인, 노동자 등 이른바 취약계층에 대한 부분도 말만 무성할 뿐 실질적인 대책이 눈에 띠지 않는다. 게다가 주요 대기업들이 이번 기회를 활용하여 그동안 미뤄왔던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려 한다는 얘기마저 들리는 상황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초래될 큰 사회적 갈등이 우려된다.

각종 통계에서 드러나듯이 경제위기를 겪을 때마다 소득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국민들이 피눈물로 대가를 치른 위기극복의 결과가 이런 거라면,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무엇을, 누구를 위한 위기극복이냐”고.

또다시 찾아온 경제위기, 우리는 어떤 위기극복의 길을 걸을 것인가. [더인디고 The Indigo]

hlsanha@daum.net'
더 인디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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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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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cis50@naver.com'
바람꽃 하늘 소망
4 years ago

대기업이 위기를 해고 기회로 이용할 것 같아 걱정이네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kbg517@hanmail.net'
산절로
4 years ago

흉년이 들연 부자집 부자집 땅이 늘어난다더니, 그 꼴이네요. 통찰력이 돗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