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쳐 토크] 이제 천사는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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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살핌의 정석’의 한 장면. 벤이 간병인으로서 처음 맡은 사람이 트레버라고 한다. 사진=유튜브 캡처
▲영화, ‘보살핌의 정석’의 한 장면. 벤이 간병인으로서 처음 맡은 사람이 트레버라고 한다. 사진=유튜브 캡처
  • 영화 ‘보살핌의 정석 (The Fundamentals of Caring, 2016)’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좋은 일 하시네요”, “참 착하시네요”…

그저 직업인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뿐인데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일하는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이런 찬사는 늘 흔하다.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 특별히 착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닐 텐데도 말이다.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여기 ‘간병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벤이라는 사람이 있다. 간병인 벤은 아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지 결코 천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나쁜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그저 환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제공하는 간병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가령, 우리 사회에 기부천사, 봉사하는 천사, OO천사… 온갖 천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뿐인가. 당연히 필요한 일을 하는 기업에겐 선한 기업, 착한 기업이라는 천사표 가 붙는다. 온통 천사들 천지다. 이렇게 인간의 일을 천사의 일로 미뤄 놓고 인간들은 별로 책임지지 않는다. 천사의 일은 추앙할 뿐 감히 비판하지 않을 뿐더러 설령 천사가 악마가 되어간다 해도 막지 못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바로 ‘필요한 일’이 선의로만 포장되지 말아야 할 이유다.

ALOHA 알로하! 이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하와이언 인사말이 아니다.
ALOHA 즉, Ask 묻고 Listen 듣고 Observe 관찰하고 Help 돕고 Ask again 다시 묻는다는 간병인 수칙을 요약한 약어이다. 간병인 교육에서 벤은 강사에게 이 원칙을 수없이 강조해 들었다. 벤은 이 원칙에 따라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Ask 묻고 Listen 듣고 Observe 관찰하고 Help 돕고 Ask again 다시 묻는다는 이 ALOHA 원칙에서 나는 직무상의 요구 이외에 선하거나 착해야 한다는 어떤 윤리적 요구도 읽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간병인은 이런 직무원칙에 따라 일하는 전문적 직업인일 뿐 특별한 윤리적 덕목을 갖춘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벤이 간병인으로서 처음 맡은 사람은 ‘뒤센형 근위축증’ 장애를 가진 트레버다. 트레버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춘기 소년이다. 그는 새로 오는 간병인마다 무례하게 굴거나 당황하게 만들어서 간병인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게 만들곤 하는 짓궂은 이용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런 그에게 특별히 ‘착한’ 간병인 필요한가?

면접에서 트레버가 벤에게 질문한다. 자기가 만약 변을 봐서 뒷처리를 해야 한다면 몇 번을 닦을 거냐고.

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이보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착한’ 간병인은 이런 경우 뭔가 달라야 하나? 아니다, 트레버에게 그 순간 필요한 것은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만큼인 것이다.

제목부터가 ‘보살핌의 정석’이라 하니 과연 이 영화는 보살핌의 정석을 뭐라고 정의할까 궁금했다. 어쩌면 관객들 대부분 알로하 원칙 이외에 벤과 트레버가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 소통, 공감, 신뢰… 같은 플러스 알파들에 더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천사표 간병인을 기대했을지도. 그러나 내가 먼저 본 것은 기본에 충실한 전문가다운 태도였다.

어쩌면 많은 장애인들은 벤과 트레버에게서 활동지원인과 이용인의 관계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트레버만큼 주체적이고 당당한 이용인인가, 내 활동지원인은 적어도 저 알로하의 원칙에 충실한가…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원칙 이외에 그들이 만들어낸 그 플러스 알파가 너무 먼 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활동지원인과의 여러 가지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장애인들이 많은 걸 보면 말이다.

벤과 트레버처럼 환자와 간병인이라는 관계 이외에 플러스 알파의 어떤 시너지가 만들어지려면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해야만 한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어떻게 틀어져 버리는지 소설 이야기 한 토막에서 살펴보자.

“느집엔 이거 없지?”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에 등장하는 점순이는 좋아하는 마음을 꼭 이런 식으로 표현해서 쥐어박고 싶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속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갓 캐낸 봄감자를 맛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을 꼭 이렇게 표현해서 일을 그르치는 밉상이다.

“너 좋아할 거 같아서 가져왔어”라든가 “이거 보니 네 생각나더라”라든가 “맛있겠지! 같이 먹을래?” 같은… 감자를 받아먹으면서도 기분 좋을 만한 표현이 얼마나 많고 많을 텐데 고작 “느집엔 이거 없지?”라니… 같이 먹고 싶기는커녕 감자를 집어 던져버리고 싶어질 판 아닌가.

감자를 함께 나눠 먹고 싶게 만드느냐, 감자를 집어 던지고 싶게 만드냐가 바로 감자를 주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에 달렸다. 나누든 보살피든 도움을 주든 지지하든 지원하든 후원하든 그 어떤 경우라도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받는 이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것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알로하의 원칙은 적어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고려하는 그 기본에 충실하다.

점순이의 감자를 알로하 원칙에 따라 벤이 트레버에게 나눠 준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트레버는 벤이 준 감자를 집어 던지지 않고 만족스럽게 받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순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자를 집어 던지고 싶게 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점순이는 나쁘고 벤은 천사여서인가?

알로하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상대방이다. 상대방의 필요와 만족이 최고의 목적이고 목표다. 여기서 둘은 결코 베풀고 받는 시혜자와 수혜자 관계가 아니다. 단지 필요를 주고받을 뿐. 트레버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적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간병인이지 ‘착한’ 간병인이 아니다.

간병인이, 활동지원인이 업무적으로 유능한 데다 착하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혜자와 수혜자로 관계가 불균형해지고 천사의 돌봄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감히 ‘필요’를 요구하는 일은 황송해지는 것이다.

천사는 하늘에만 살면 된다. 인간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을 천사에게만 미뤄서야 되겠는가. 전문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해내면서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도 지혜롭게 만들어가는 바람직한 간병인 벤을 통해 천사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바라게 된다.

적어도 나는, 천사의 수발을 받고 싶지 않다! 유능한 활동지원인의 보조가 필요할 뿐.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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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mbaram@naver.com'
봄바람
2 years ago

너무나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