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돌아보고 계획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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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바다 너머 해가 저물고 있다. /사진=조미영
▲석양. 바다 너머 해가 저물고 있다. /사진=조미영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40대 중반에 앞니 레진 한 것이 까맣게 변한 지 제법 오래되었다. 말할 때나 웃을 때 이물질 낀 것처럼 보일까 봐 입술을 오므리는 버릇까지 생겼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내가 말할 때 자꾸만 내 앞니를 보는 것 같아 결국 그날 치과에 갔다. 검은 부분을 긁어내고 다시 치료하는 건 10여 분 걸렸다. 문제는 언제였는지 잊은 어금니 아말감이 흘러내려서 골드 인레이로 교체해야 한다는 거였다. 전혀 불편 없다고 했더니 통증 느끼고 치료하면 더 고생한다고 미리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임플란트하면서 몇 달을 힘들어했던 남편이 생각나 어금니 세 개를 치료했다. 아직은 차거나 뜨거운 걸 먹으면 시큰한 느낌에 이가 시리지만 조만간 나의 신체 일부로 적응하면 치과 갈 일은 없어질 것 같다.

환갑 가까이 되도록 병원을 멀리하며 살았다. 입원한 적은 아이 둘 출산할 때 외는 기억에 없다. 올해는 달랐다. 황반원공으로 눈 수술을 하면서 꽤 힘든 한 달을 보냈고 5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중심시력이 없는 상태라 불안하다. 안경으로 조절할 수 없는 눈이라는 말에 놀란 것도 잠시 어느새 나는 이 불편함에 적응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거부하고 싶었던 나쁜 일 속에 다행스럽게도 좋은 변화가 있었다. 집안일에 매여 살던 내게 새로운 일상이 찾아온 것이다.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로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흘간 집을 떠나 있었고 그 후로도 하루 이틀쯤의 외박으로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으니 이런 게 전화위복이자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생각한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돌아보니 병원 출입 잦았던 것 빼고는 제법 많은 행운이 있었다.

무엇보다 딸아이의 취업이 가장 기쁘다. 취업 준비 중인 딸을 보며 자폐장애인 아들보다 더 걱정되고 애가 타던 시간이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은 일을 하는 딸을 보면서 그래도 직장이 있어 그런 거로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흐뭇하다.

나를 위한 시간도 여느 해보다 제법 많았다.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여 24회차를 잘 마쳤다. 길게 늘어지던 문장이 짧아졌고 비문도 감소했다. 수미상관을 신경 쓰면서 전체적인 글의 짜임도 나아졌다. 여전히 어렵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남이 읽고 싶은 글을 쓰자는 생각을 늘 기억한다.

오래전부터 써온 글을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글쓰기 공부를 끝내며 그 소망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책으로 내기엔 너무 가볍고 내용이 부족한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좀 더 잘 다듬어서 자비 출판이라도 하고 싶을 때를 기다리기로 한다.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덥석 책을 내고 지인들에게 억지로 떠맡기며 민폐를 끼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초 계획 중 공모전에 10회 이상 응모하려는 게 있었다. 6회의 응모 중 단 한 번의 수상만으로 끝났다. 목표를 채우진 못했지만 인터넷 신문 ‘더인디고’와 발달장애 정보 플랫폼 ‘보다센터’에 매월 2편의 글을 쓰느라 애쓴 나를 칭찬한다.

너무 쉽게 글과 사진을 올리는 SNS가 가끔 내 일상을 덮치기도 한다. 어딘가 제출하는 글은 몇 번의 퇴고 과정을 거치지만 SNS 공간은 즉흥적이거나 지나친 감상에 젖어 손 가는 대로 쓰고 있다. 오타 확인차 한 번 정도 읽어보고는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좋은 분들과의 소소한 소통은 하루를 바쁘게 살게 하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내 글을 공감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오늘을 사는 셈이다.

살아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아들에 관해서는 내 욕심을 내려놓고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게 가장 현명한 삶의 자세였다.

딸에 대해서는 티 내지 않으면서 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지켜보는 것이 가능한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들을 바꿔 보려고 무진 애를 쓰며 살았다.

아들을 채근하지 않고 오늘을 잘 살아낸다면 그리 힘든 일상은 아닐 거란 생각에 다다르니 조금은 편안해진다.

가는 해 돌아보며 오는 해 계획을 천천히 세워본다. 올해 살았던 것처럼 내년을 살아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잘 살았다는 자체 평가가 머쓱하지만 글 쓰며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눈과 치아에 이어 또 어느 신체 부위가 나를 병원으로 이끈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갈수록 떨어지는 신체 기능으로 살아야겠지만, 잔존 기능 잘 활용하며 의연하게 살자고 다짐하는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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