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화장실 청소는 왜 꼭 그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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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졌지만, 당황하지 말라(don’t panic)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언스플래쉬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졌지만, 당황하지 말라(don’t panic)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언스플래쉬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연달아 수업이 있는 날 쉬는 시간 화장실로 달려가는 발걸음은 초스피드로 바빠진다. 전 시간에 가르친 교재를 사무실의 책꽂이에 가져다 놓아야 하고, 다음 시간의 책들도 준비해야 하기에 본능적 욕구를 해결해야 하는 10분의 시간은 절대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달리듯 도착한 화장실은 “현재 청소 중”이라는 사인을 보낸다. ‘다른 층의 화장실을 다녀올까?’도 생각해보지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책을 챙겨서 다시 내려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 또한 뾰족한 답이 아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던 것 같은데 오늘도 하필이면 내가 도착한 시간이 청소 시간이다. 답답한 마음에 투덜거리고 있는데 꽤 많은 동료 선생님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동의의 표시를 보낸다.

‘왜 미화원 선생님들은 꼭 선생님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은 시간만 기다렸다가 청소를 하시는 걸까?’, ‘교사 집단에 뭔가 불만이라도 있으셔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람이 오는 소리가 나면 물을 뿌리기 시작하시는 걸까?’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절대 그럴 리는 없다. 그분들이 그렇게 한가할 리도 없고 계획적으로 우리를 괴롭힐 만큼 그동안의 관계가 나쁘지도 않았다. 다만 몇 번의 우연으로 마침 그 시간에 우리가 마주쳤던 것이고 오늘도 그중 한 번일 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화장실은 내 스케줄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준비 없이 일을 마치고 나면 역시나 휴지가 떨어져 있고 절실하게 물이 필요한 날은 꼭 단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청소는 그 시간만 아니면 될 것 같고 기다란 휴지는 왜 꼭 내 순서에 끊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만 아니면 되고 그때만 아니면 되는데 그런 일은 나를 비껴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난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분들을 만났던 적보다 그렇지 않았던 적이 당연히 더 많다. 하루에도 네다섯 번 이상은 방문하는 화장실이지만 그분들의 청소는 겨우 하루에 한 번이다. 내가 매일 미화원 선생님들을 만났다고 해도 하루의 확률은 20%를 넘지 않는다. 내가 도착할 때만 단수가 되는 것 같지만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있었던 단수 사건은 굉장히 드문 일이고, 하필이면 휴지는 내가 오기 직전에만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의 발생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확률은 불가능에 가깝다. 휴지가 넉넉했던 평범한 날들이나 아무 생각 없이 수돗물에 손을 씻었던 날보다 그것들이 내 앞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의 기억들이 훨씬 강렬했기 때문에 나쁜 상황들이 좀 더 각인되었을 뿐이다.

그 경험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면 내게만 늘 일어났던 것처럼 강한 착각으로 남게 된다. 수천 번 수만 번이나 더 겪었을 평범한 상황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이기에 몇 번 되지도 않는 운 나쁜 최악의 상황들에 묻혀 기억되지 않는 것뿐이다.

내가 학교에서 아직 어른과는 어울리지 않는 배변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체로 나의 화장실 생활은 일반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미화원 선생님들의 음성을 듣고 어떤 분이신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은 나와 그분들의 만남이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드물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화장실 생활은 충분히 편안했고, 쾌적했고, 평범했다. 편안한 상황들은 기억되지도 못할 만큼 내게 익숙했을 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운이 조금 나빴다고 생각하지만 난 생각보다 많은 행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얀 도화지에 까만점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처럼 나의 행운의 시간이 내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기에 불편함의 작은 시간이 유난히 진한 색으로 느껴질 뿐이다.

오늘 겪은 조금의 불편함이 유난히 진하게 기억된다면 그럴수록 그동안의 편안함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기억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있고 그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쾌적한 학교생활을 위해 묵묵히 애써 주시는 미화원 선생님들께 새삼 감사를 드린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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