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앰뷸런스 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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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센터 ⓒ 더인디고
▲응급의료센터 ⓒ 더인디고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프던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구급차를 숱하게 타 봤겠지만 대체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였고 30여 년이나 지난 터라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자기 판단이 가능한 나이와 멀쩡한 의식상태로 한정하면 사실상 이번의 탑승은 첫 경험이라 말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번엔 무려 119였다.

2교시를 마칠 때까지도 여느 날과 다를 것은 없었다. 전조 증상도 없었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아도 그런 일이 벌어질 만한 원인행위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갑자기 어지러웠고 잠시 엎드렸을 뿐인데 그 이후로 상체를 일으킬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도 빙빙 돌 수 있다는 걸 깨달아 갈 때쯤 속까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이러다 말 것 같다고 판단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갔다. ‘쪽잠이라도 청하면 나아질까’하고 생각했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상태는 눈을 감기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부장님께 SOS 신호를 보냈고 여러 선생님이 달려오셨고 어느 틈에 사이렌이 울렸고 내 몸은 순식간에 응급실 침대에 눕혀졌다.

팔도 다리도 다 멀쩡하고 단지 머리만 어지러울 뿐인데 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얼마 남지 않은 중환자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동은 휠체어로 해야 했고, 한 명 이상의 동행인이 있어야만 그나마도 허락되었다. 링거 바늘이 꽂히고 당수치, 혈압,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구들이 내 몸 이곳저곳을 번갈아 가며 지나갔다.

나는 119 구급대에 의해 긴급하게 후송된 환자였고 증상으로 볼 때 의심되는 질병은 무려 뇌졸중이었으므로 의료진들의 관심과 조치들은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놀라서 달려오신 어머니, 아버지의 걱정과 최악을 가정한 의사 선생님들의 말씀이 겹치며 어느 순간엔 나 자신도 혹시 큰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지럼증이 이렇게나 오래 지속되는 건 처음인데 다시 회복되기는 하는 걸까?’

‘뭔가 정말 큰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다행히 이틀에 걸친 검사와 진료 결과는 ‘이상 없음’으로 종결되었고 내게 내려진 유일한 처방은 안정과 휴식이었지만 그것으로 가족들과 주변의 마음마저 안심시킬 수는 없었다. 분명 나아지고 있긴 했지만 난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었고 부모님에게도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그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근심이었다.

새벽 출근길을 마음 놓지 못한 부모님의 차량 봉사가 투입되었고, 실려 간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출근한 내 수업을 대신 해주겠다는 선생님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한 걸음을 움직이기 무섭게 부축의 손길들이 다가오고 각자 경험한 좋은 치료법과 실력 있는 의사 선생님의 소개도 줄을 이었다. 혼자 사는 나의 식사와 병의 차도를 걱정하는 메시지와 전화들은 전화기 배터리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열흘 정도가 흐른 지금 정말 다행스럽게도 난 원래의 상태를 완전히 회복하였고 그것은 확신하건대 많은 이들의 걱정과 위로 그리고 응원과 격려 덕분이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내 곁에는 신속하게 119를 불러준 이가 있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께 상황을 보고드리고 긴급 조퇴에 필요한 행정업무를 대신 처리해 준 이도 있었다.

남은 수업도 완수하지 못한 업무들도 내겐 걱정할 것이 없었다. 처음 얼굴을 마주한 119 대원들의 친절한 대응은 놀란 가운데 마음을 평안히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보이지 않는 나는 병원을 찾고 수속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팔 잡아 주시고 손 내밀어주신 동료 선생님들의 마음은 내 부끄러움을 돌아보게 할 정도로 감사한 감동이었다.

살면서 일어나는 불편한 일에서 불평의 대상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를 향한다. 판단하게 되고 비난하게 되고 미워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나누고 그것은 내 맘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하는 기준을 만든다. 난 좋은 사람에게도 도움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던 이들에게도 더 큰 마음의 빚을 졌다. 미워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충분히 사랑해주고 있었다.

내겐 감사해야 하고 마음 나눠야 하는 이들이 이미 너무 많았다. 내가 치료해야 했던 건 몸의 병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들이었다. 내가 무사히 근무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하는 동료들 덕분이고 씩씩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든든한 가족 덕분이다. 언제라도 달려와 주는 119 대원들도, 자기 일인 듯 살뜰히 챙겨주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의 존재도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하는 소중한 것이다.

귀한 것은 가장 가까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미워할 시간에 조금 더 사랑하고, 판단할 시간에 조금 더 이해해야 한다. 힘든 시간과 아픈 시간이 왔을 때 많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말이다. 아프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모두 자신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합니다.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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