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청년과 장애인, 두 집단의 당사자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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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당사자정치의 대표주자였던 이준석은 눈물을 흘리며 정치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장애인 당사자정치의 상징이 된 박경석은 지금도 길 위에 남았다. © 더인디고 편집
▲청년 당사자정치의 대표주자였던 이준석은 눈물을 흘리며 정치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장애인 당사자정치의 상징이 된 박경석은 지금도 길 위에 남았다. © 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지난 8월 26일 여당인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은 당일 비상대책위원회의 공식 출범으로 자동 해임됐다. 지난해 6월 전당대회에서 보수정당 최초의 30대 청년 대표라는 정치적 승리를 했지만 그 쓰임이 다한 이준석은 고작 취임 431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에 앞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대한 가처분 신청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흘린 이준석의 눈물은 스스로 창출해 냈다고 믿었던 권력에 의해 밀려난 분노와 거침없었던 그동안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아쉬움의 눈물은 아니었을까.

청년층의 지지기반이 빈약했던 국민의힘이 이준석을 대표로 선택한 것은 절묘한 수였다. 그에 보답하듯 이준석은 젠더 갈라치기를 통해 이대남(20대 남성)의 확고한 지지를 끌어냈다. 호남에 대한 이른바 서진(西進)정책을 통해 보수정당의 외연 확대에 분명히 기여한 공(功)도 있지만, 과(過) 또한 적지 않았다.

대선 국면에서는 당내 인사들과 갈등을 벌이며 지방 잠행과 선대위 사퇴 등으로 당을 격랑 속에 빠뜨리기도 했으며, 대선 이후에는 지하철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맞서 특유의 비아냥과 날 선 말투로 장애혐오를 부추기기도 했다. 특히, 전국장애인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를 소위 SNS정치를 통해 장애인들의 권리 투쟁이 ‘최대다수의 불편’을 야기한다고 비난하면서 선택적 공정 프레임 안에 가두려고까지 했다. 이러한 이준석의 정치행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공격이라는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대표적인 지지층인 이대남들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당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거칠 것 없었던 이준석의 정치적 행보는 전장연과의 소모적인 논쟁을 기점으로 꺾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준석은 이 논쟁을 통해 향후 윤석열 정부 체제에서 불거질 것으로 예측되는 각계각층의 집단적 요구 분위기의 예봉을 꺾고 ‘선택적 공정’이라는 이대남들의 포인트 선점으로 튼실한 지지층을 다질 기회로 삼고자 했지만, 이에 맞섰던 전장연의 박경석은 노회했다. 한 방송사에서의 정면 토론에서 박경석은 이준석이 노렸던 불법시위와 언더도그마 프레임을 장애인의 사회적 차별 문제로만 국한시켰다. 결국 정당대표라는 공적 직함을 가진 이준석은 장애인 정책에 대해 무지함과 사회적 약자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경박함을 드러냈다는 혹평만 남기게 되었다.

이 방송을 통해 전장연은 우리나라 장애운동을 대표하는 단체로 국민들의 인식에 각인되었고, 그 중심에 선 박경석은 현장에서의 실천적 활동에 힘을 더하면서 소위 ‘장판’의 기득권적 위치에 있던 이룸센터 중심으로 활동하는 장애인단체들과의 전략적인 연대 없이도 장애운동의 대표성을 확보해 나갔다. 이러한 장애운동의 자신감 넘치는 독자성은 당사자들의 신뢰에 기반한 참여와 지지를 통해 실현되었다고 봐야 할 텐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전동휠체어 보급으로 비로소 스스로 이동할 수 있게 된 휠체어 이용 중증장애인들과 충성도 높은 비장애 활동가들이다. 반면, 이준석의 정치 행보를 지지해왔던 ‘이대남’이라는 집단은 그 정체조차 불분명하며 현장에서의 활동력은 극히 미미하다. 더구나 이들은 그동안 선거에서 지지율의 통계치를 통해 ‘티켓 파워’를 과시하며 존재가치를 인정받았을 뿐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를 통해 권력을 쟁취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대남’이 가진 ‘티켓 파위’의 정치적 의미는 축소되고 이들을 대표하는 이준석은 그 쓰임이 다한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우리는 그동안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생경한 정치환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두 양대 정당이 모두 이삼십 대 청년들에게 당 대표 자리를 내준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과 더불어민주당 박지현은 대통령선거 당시 이렇다 할 정치적 구심점을 찾지 못하던 MZ세대의 지지를 끌어내는 역할을 맡은 셈인데 이른바 ‘청년’이라는 정치적 잠재집단의 당사자정치의 실천적 행보여서 그들의 존재가 자못 심상치 않았던 만큼 기대 또한 있었다. 선거기간 동안 두 젊은 정치인의 활약은 더없이 빛났고 정치적 수사 또한 봄날의 햇살처럼 화사했다. 하지만 마침내 선거는 끝났다. 이제 치열하게 부딪쳤던 두 양대 정당은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내부싸움에 돌입했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정치적 생명을 다했다. 한 사람은 586 퇴진론이 빌미가 되어 가차 없이 버려졌고, 박경석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준석은 마스크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어설픈 칼끝을 다시 권력의 정점에 겨누며 재기를 갈구하고 있다.

청년 집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당사자정치는 현실정치에서 패퇴했다. 이들이 당권투쟁 과정에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든 기득권 세력에 의해 토사구팽당했든 상관없이 결과는 청년 당사자정치의 실패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달리 박경석은 전장연이라는 견고한 지지기반을 통해 장애인 집단의 당사자정치의 틀거리를 마련했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보편적 권리 주장을 통해 국민들의 암묵적 지지기반도 어느 정도 확보해 둔 터다.

하지만 박경석의 새로운 고민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장애인 이동권’의 실현은 여전히 미래일 뿐이고, 장애인권리 예산과 탈시설지원법 제정,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주장의 스펙트럼을 넓히고는 있지만 사회적 공감을 통한 반향은 지나치게 미미하다. 폭풍처럼 사납게 일던 장애인 이슈는 다시 잠잠한 바다처럼 고요하다. 저 고요한 바다를 향해 언제, 어떻게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킬지는 온전히 장애인 당사자정치의 숙제로 남았다.

그래서 박경석은 오늘도 길 위에서 존재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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