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CRPD 이행 자화자찬…현실에선 죽고, 거부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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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CRPD 이행 자화자찬...현실은 죽고, 거부당하고...
▲스위스제네바에서 유엔장애인장애인권리위원회 정부 이행 심의가 있던 지난 8월 24일과 25일, 서울에서는 한 시각장애인이 화재에 희생되었고, 지방도시에서는 저상버스를 타려던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승차거부를 당했다. ⓒ 더인디고 편집
  • 저상버스 있으면 뭐하나…노골적인 승차거부에도 분통만 터뜨릴 뿐
  • 작은 화재에도 장애인 당사자는 희생되는 현실… 막막할 뿐
  • 현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보고 뒤에 감춰진 차별과 배제
  • 무수한 정책들과 명분들… 그 틈바구니에서 고통받는 당사자 현실 돌아봐야

[더인디고=이용석편집장]

▲승차거부한 전기버스 후문에는 경사로(빨간색 동그라미)가 분명히 설치되어 있었다. ⓒ 제보자 제공

지난 8월 25일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전동휠체어 사용자 A씨는 퇴근길에 황당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병점역에서 사는 동네까지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A씨는 버스 정류장에 대기한 후 도착한 11-2 저상 마을버스에 승차하기 위해 운전원에게 경사로를 요청했다.

하지만, 버스 운전원은 “이 차는 기계(전동식 경사로)가 없는 차”라면서 A씨의 승차요구를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이어 A씨가 버스에 장착된 수동식 경사를 가리키며 “경사로를 펼치면 된다”고 했지만 운전원은 버스 출입문을 닫아버리고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승객이 문을 열어보라고 했지만 듣는 척도 없이 마을버스를 출발시켰고 이에 화가 난 A씨는 전동휠체어로 다음 정류장에 미리 가서 승차거부한 11-2 저상 마을버스를 기다렸지만 역시 운전원은 다른 승객들만 태우고는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이후 8번 전기버스가 도착했지만 역시 승차거부를 당했다는 A씨는 “하루에 두 번씩이나 노골적인 승차거부를 당했다”면서 “대중교통 승차거부라는 노골적인 차별과 배제를 구제받을 방법조차 마땅치 않다”고 허탈해 했다.

바로 전날(8월 24일)에는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한 다세대 주택에 사는 40대 시각장애인 B씨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이웃 주민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앞을 볼 수 없었던 B씨는 현관문 앞에 쓰러진 채 소방관들에게 발견되었다. 중증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B씨는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으며 혼자 살고 있었다. 하루 5시간 남짓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었지만 불이 난 시각은 활동지원 시간이 끝난 후여서 조력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설사 함께 있었다고 하더라도 활동지원사는 재난대피 조력 인력이 아니다.

▲1인 독거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시각장애인 B씨가 참변을 당한 다세대 주택 4층이 화재로 검게 그을려있다. ⓒ SBS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특히, B씨가 살고 있던 4층짜리 다세대 주택에는 화재탐지설비나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화재대응 설비가 갖춰 있지 않았으며 의무설치 대상도 아니다. 현재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는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의무조항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B씨는 장애인·노인 등이 위급한 상황에서 조력을 요청할 수 있는 ‘119 안심콜 서비스’에 등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B씨는 이사 온 지 불과 보름만에 사고를 당한 터다.

■ 차별구제? 인권위원회에 진정 후 차별 인정 받아도 권고 결정이 전부… 재난대피 정부 계획 있다지만, 일 벌어지면 결국 각자도생 방법 뿐

장애를 가진 시민들이 대중교통체계에서 거부당하고, 재난에 희생되던 이틀 동안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정부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당사국 보고가 한창이었다. 한 위원의 “대중교통 사업자들에 대한 인식개선 프로그램 여부와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해서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라는 질문에 정부는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되었다는 엉뚱한 대답으로 눙쳤다. 또한 장애인 재난안전체계를 묻는 질문에는 한국에서 장애인은 안전취약계층으로 특별히 규정하고 있다면서, 작동되지 않는 ‘2017년 장애인안전종합대책’만을 들먹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난 대책은 2020년에 발표된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2020~2024)으로 장애인, 노인, 아등 등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재단대응은 ‘법제도 정비, 화재·가스 감지센서와 응급호출장비 설치 확대, 맞춤형 안전교육 강화 등’만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두 사건 모두 정부의 장애인 정책과 장애인 당사자가 일상에서 무수히 겪게 되는 차별과 배제, 재난에서의 위험 상황 등과는 현격한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의 대중교통 접근성 개선을 위해 저상버스를 100% 도입했다고 해도 현장에서의 승차거부나 노골적인 불친절 등으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실제 장애인 복지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일상에서의 장애인 차별은 수시로 일어난다. 다른 점은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ADA법의 엄격한 작동으로 차별구제가 시스템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CNN에 따르면 안내견과 함께 우버 차량을 이용하려다 여러 차례 승차거부를 당한 시각장애인 사건에 대해 미국중재협회(법원을 대신해 소송 없이 분쟁을 해결하는 미국 의회가 설립한 비영리 단체)는 ADA법에 근거해 우버 측이 변호사 비용 등을 포함해 110만 달러(약 12억 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함으로써 장애인 차별구제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장애인 차별구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는 것뿐이며, 차별진정이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시정권고’가 전부다.

또한, 재난상황에서 정부가 규정한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의 대피 환경은 시스템에 의한 대응이라기보다는 당사자 책임으로 전가되는 방식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도 없고 내용조차 모호한 교육을 스스로 찾아서 받아야 하거나 직접 관련 기관에 응급호출장비 설치를 요청해 ‘설치 대상 여부를 판정’받아야 하는 등의 복잡한 절차로 인해 재난대피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

장애인 관련 사건, 사고가 있을 때마다 대응책으로 정부가 급히 발표하는 무수한 장애인 정책들이 정작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대다수 장애인 당사자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정책과 현실의 간격을 좁히려는 정책 설계의 관점 전환이 필요한 때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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