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대피할까요?”… ‘재난대응 체계’에서 배제된 장애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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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대피할까요?...국가의 ‘재난대응체계’에서 배제된 장애시민들
▲지난 5월 31일 북한 발사체로 서울시 전역에 '어린이와 노약자' 대피를 안내하는 재난문자가 발송되었다. 장애를 가진 시민들은 대체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몰라 두렵고 난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더인디고 편집
  • 혼란과 두려움 겪었던 이동장애가 있는 장애시민들
  • 재난대피, 대피소?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알았더라도 접근 불가능
  • 서울시 민방위 대피소, 약 3222개소…안전취약계층 접근 안내 없어
  • 유일한 재난서비스 ‘응급안전알림이서비스’ 대상 제한으로 한계
  • 장애시민들, 자신을 제외한 가족이라도 대피할 수 있었으면…

[더인디고 = 이용석 편집장]

“혼란스러웠죠. 재난문자 내용을 확인도 했고 사이렌 소리에 놀랐지만 대피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지난 5월 31일 6시 41분에 발송된 재난문자로 서울에 살고 있는 장애를 가진 시민들은 놀랐고 이후 사이렌이 울리자 한동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마포구에 살고 있는 시각장애를 가진 홍 아무개 씨는 혼란스럽고 놀랐지만, 대피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더인디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심경을 전했다. 출근을 위해 전날 예약한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던 중에 재난문자를 받았다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조 아무개 씨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에 놀라 대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고 있던 자녀들을 깨웠지만, 막상 어디로 대피할지 몰라 당황했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대피소, 안전디딤돌로 찾아라?…전맹 시각장애에겐 무용지물

소동을 겪은 후 재난대응 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주류 언론들의 비판 기사가 쏟아졌지만, 장애를 가진 시민들이 겪었을 혼란과 재난 공포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특히, 주류 언론들은 대피소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재난안전정보 포털 앱인 안전디딤돌’을 사용할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장애시민들에게 ‘안전디딤돌’은 무용지물이라는 점은 지적하지 못했다.

더인디고는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이동 장애가 있는 시각장애나 신체장애를 가진 5명의 시민들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31일 재난 상황 경험을 들어봤다.

5명 모두 당시 재난문자와 사이렌 소리에 위기감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재난문자의 안내대로 대피를 해야겠다고 맘먹은 이는 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 이유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라며, “실제 상황이 아니기만을 바랐다”는 것이다.

전맹의 시각장애를 가진 홍 씨는 안전디딤돌을 이용해 보았느냐는 질문에 “민방위 대피소의 주소까지는 음성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네이버 지도로 연결되는 ‘길찾기’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면서, 이럴 바에는 전화로라도 민방위대피소 정보를 바로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대피소, 위치 알아도 물리적 접근 쉽지 않아가족만이라도 대피했으면

또한 거주 지역에 있는 민방위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지 묻자, 네 사람은 모른다고 답했고, 휠체어를 사용한다는 한 사람만이 거주하는 지역 주민센터 지하주차장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하지만 자신처럼 휠체어의 접근은 조력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휠체어 사용 시민이 보내준 지역 대피소 입구 사진. 주민센터 지하주차장인 대피소 출입구는 가파른 경사로 이뤄져 있어 조력 없이는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했다. 또한 입구에는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점자블럭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 인터뷰 참여자 제공

목발을 사용한다는 은평구의 정 아무개 씨는 15층 아파트에 사는 입장이라, “재난 시 엘리베이터 작동이 멈추면 대피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서 이번 상황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재난 상황이 닥치면 대피가 불가능한 자신보다 가족들이라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운영 중인 ‘응급안전알림이서비스’를 아느냐는 질문에는 세 사람은 서비스의 존재를 몰랐고, 두 사람은 서비스 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답변했다. 실제로 ‘응급안전알림이서비스’는 “장애인 중 활동지원등급 13구간 이상이면서 독거 또는 취약가구, 기초지자체장이 생활여건 등을 고려해 상시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만 신청할 수 있다.

이에 관련해 더인디고는 서울시청 비상기획관 민방위담당관에게 전화통화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 답변을 듣지 못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에는 약 3222개소의 대피시설이 확보되어 있으며 지하철역사, 빌딩, 터널, 아파트주차장 등 지하공간을 활용해 편의성과 안전성을 고려해 급수, 급식, 응급의료가 가능하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마련된 장소를 우선적으로 지정·운영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을 뿐 장애를 가진 시민들의 물리적 접근성 여부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현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장애인을 어린이, 노인 등과 함께 안전취약계층을 규정하고 있으며,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에게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안전용품의 제공 및 시설 개선 등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제31조의2)’ 등의 안전관리 대책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대피소는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른 1종 근린시설로 편의시설 의무 대상이다. 하지만 이번 소동으로 장애를 가진 시민들은 여전히 국가의 재난대응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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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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