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불온한 애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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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수집된 희생자들의 유류품인 신발들이 당시 처참하고 다급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참사가 있었던 지역의 한 상인은 초라한 제사상을 골목에 차리고 그 엎드려 목 놓아 울었다. 한 그릇의 식은 밥 한 끼나마 진심을 담은 애도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 S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수집된 희생자들의 유류품인 신발들이 당시 처참하고 다급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참사가 있었던 지역의 한 상인은 초라한 제사상을 골목에 차리고 그 엎드려 목 놓아 울었다. 한 그릇의 식은 밥 한 끼나마 진심을 담은 애도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 S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봄 햇살 눈부셨던 4월의 그날, 아이는 제주도 수학여행 길에 나섰다. 엄마와 단둘이 살았던 아이에게 제주도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 여행길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의 갭직한 여행가방 앞섶에 담긴 메모 노트 갈피에는 엄마가 쥐여준 용돈 3만 원이 꽂혀있었다. 설렘으로 나선 그 여행에서 아이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울부짖으며 몇 년 동안 거리를 헤매던 엄마는 몇 년 후 아이의 습작을 모아 책으로 묶어 가슴 깊이 묻었다.

일주일 전, 중학생 딸아이는 엄마와 이모의 손을 잡고 늦은 가을 저녁 밤나들이에 나섰다. 연신 웃음을 까트리며 아이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잰걸음으로 아이를 쫓던 엄마와 이모가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의 모습이 인파에 묻혀 가뭇없이 사라졌다. 놀란 엄마와 이모가 아이를 찾기 위해 군중 속으로 헤치고 들어섰고 세 사람은 오늘도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참담하다.

또다시 수많은 젊은이가 서울 한복판에서 생명을 잃었다. 8년 전 바다 한복판에서 점차 침몰해가는 광경을 전 국민이 TV를 통해 목도하면서도 깊은 바닷속으로 스러져가는 생명들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려야 했던 그 익숙한 무력감이 엄습한다. 수습에 나선 국가는 재빨리 일주일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전국 곳곳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대통령을 시작으로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검은 정장 차림으로 줄줄이 방문해 향을 피우고 꽃으로 단장된 단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모든 축제와 행사는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검은 리본이 전국에 배포되었다.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니라 ‘추모’의 시간이라는 한 여당 정치인의 말은 사뭇 그럴듯했지만, 이번 참사가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우기던 한 고위 관료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고개를 숙인 날, 그 지역에서 수십 년 장사를 해왔다는 한 상인은 골목 어귀에 향을 피운 소반 앞에 엎드려 밥이라도 먹여야 한다며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우리는 참사의 원인과 예방을 두고 벌어지는 난삽한 말싸움, 희생자들의 대한 조롱과 혐오를 목도한다. 외국 명절을 즐기겠다고 위험을 자처했다는 비아냥부터 그 비좁은 골목에서의 무질서와 놀러 갔다가 사망한 사람들한테 세금으로 보상해줘야 할 이유가 뭐냐는 주장까지 8년 전 겪고 들었던 날 것의 아갈질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각종 SNS에는 참사 당시 동영상들이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게시되고 무한정 공유되었다. 이 관음의 욕망은 ‘진실’을 명분으로 타인의 고통을 전시하면서 게시자들의 ‘정의로운 주장’에만 이용된다.

사람마다 이번 참사를 주목하는 부분은 제각각일 것이다. 각자의 삶에 대한 태도나 경험치,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자기만의 사고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정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태도, ‘죽음’이라는 준비되지 않았던 생애 끝에 맞닥뜨렸을 그들의 황망함과 사라진 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여전히 부여잡고 있을 가족들의 서늘한 공포와 슬픔에 나는, 공감하려 애쓴다. 비록 나의 공감이 한낱 구경꾼의 자기위안을 위한 불온한 애도일지라도 소름끼치도록 두려웠을 그 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삶이 뭐 그리 대수로울 것이 있겠냐만, 오늘도 우리는 아프지 않고 외출 후 안전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고 때때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한 일상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무탈하게 살아낸 각자의 하루는 꿈과 희망, 슬픔이나 괴로움들이 층층이 엮이고 설킨 개개인의 역사로 기억되어야 한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직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던 것이다.”

이태원 참사 사상자 329인(희생자 156인, 부상자 173인).

각자의 삶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왔을 사람들. 그들의 희생이 단 하나의 사회적 참사가 아닌, 한 사람이 희생된 156건의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였음을 우리 사회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낱낱의 이름 없는 죽음이 안전한 일상을 살고 싶은 우리 모두를 스스로나마 지켜낼 수 있는 다짐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정당한 요구를 결집하는 원동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애도의 시간은 온전히 산 자들만을 위한 불온하기 짝이 없는 유예된 순간이겠지만, 이 정지된 시간은 우리 시대의 빈번한 사회적 참사를 다시는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공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두 손 모아 심심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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