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눈동자에 힘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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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렌즈 ⓒunsplash
▲카메라 렌즈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이번 생의 결혼은 처음이라 준비하는 과정이 모두 새롭다. 생소하고 어렵긴 하지만 설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하다. 촉박하게 정해 놓은 일정으로 인해 대부분 간소화하여 진행하면서도 남들 하는 것은 간단하게라도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알뜰하게 일정을 채워가는 중이다.

오늘은 웨딩 촬영! 역시나 세미 촬영으로 택한 터라 다른 커플들 절반 정도의 일정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감정 상태가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대되는 떨림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다른 이들도 그러하긴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눈 가진 내겐 혹여나 시력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걱정이 추가된다.

혼자만의 일이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더라도 괜찮겠지만 나로 인해 내 짝꿍까지 같은 곤란함을 겪게 된다는 것은 완벽히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런 연유로 어릴 적 내가 갖고 있던 쓸데없는 걱정 중 하나는 예식 당일의 신랑‧신부 입장이기도 했다.

혼자라면 지팡이를 짚어도 되고 더듬거리며 천천히 가도 되지만 함께 하는 이에게 그것은 그다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므로 나의 머리는 예식장의 구조를 어떻게 다 외울 것인가로 이어지곤 했다.

머리를 다듬고 화장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예상과는 다르게 “거울 한 번 보세요”, “왼쪽 스타일로 할까요? 오른쪽이 나을까요?” 하는 시각적 대응을 해야 하는 질문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소통을 전환하기가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플래너 선생님의 사전 설명 덕분에 담당 디자이너 선생님은 내 상황을 대체로 알고 있었고 이동 시에 팔을 빌려주기도 했다. 예복을 입는 것도 촬영장소를 옮기는 것도 선뜻 팔 내밀어 주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합한 배려를 보내주신 스태프분들 덕분에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포즈를 잡을 때도 작가님의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나름 최선의 동작으로 지시를 따를 수 있었다. 허리를 펴는 것도 다리를 뻗거나 접는 것도 손을 내밀거나 주머니에 살짝 넣을 때도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구도를 잡는 데 그리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 따라 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내 눈과 관련한 것이다. 시선을 맞추고 적당한 크기로 눈을 뜨고 눈동자의 방향을 돌리는 것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왼쪽으로 보라 하기에 그렇게 한 듯했는데 너무 많이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고 자연스럽게 눈을 뜨라 하기에 그리했는데 그렇게 힘줘서 크게 뜰 필요는 없다고 하신다.

그래도 초반부에는 어찌어찌 따라가긴 했는데 중반을 넘어갈수록 안 쓰던 눈 주변 근육이 다 풀렸는지 더 맘대로 눈동자와 눈꺼풀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수고하시는 스태프분들에게도 미안하고 무엇보다 내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마음이 쓰였다.

눈에 신경을 쓰다 보니 표정도 망가지는 것 같고 자세도 틀어지는 것 같았다. 시각장애인은 시선이 맞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웨딩사진이라는 것이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찍어내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또한 완벽히 맞는 말은 아니다.

머리도 피부도 옷도 몸매마저도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스스로를 초월한 최대치의 멋짐과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노력 속에서 모양이나마 멀쩡한 눈 가진 내가 눈동자 위치 맞추는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이 들었다.

긴장도 풀어 보고 눈에 힘도 주어 보면서 어찌어찌 두 시간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샘플 인화의 시간! 예상대로 내 눈동자는 뒤로 갈수록 많이 흔들린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영상 기사님의 멘트는 마치 큰 수술에 실패하고 나오는 의사 선생님의 자책처럼 내 귀에 꽂혔다.

“괜찮아요. 멋진걸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어진 여자친구의 예상 밖의 말은 내 모든 걱정을 한 번에 덜어내는 작용을 했다.

난 장애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모든 미적 기준안에서 아무 노력 없이 나만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당함과 게으름의 산물은 구분되어야 한다. 난 내 눈동자로 무엇을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약간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완벽하게 다른 이들과 같을 수는 없지만 함께 하는 이를 위해 최대한 눈을 맞추고 할 수 없는 선은 이해받으면 된다.

최선으로 노력하고 부족함은 이해받는 것 그것이 서로 다른 둘이 사진을 찍고 결혼을 준비하고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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