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재판관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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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길을 걷고 있다. ⓒ픽사베이
▲아이들이 길을 걷고 있다.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교사 생활을 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상담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찾아오는 이유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원하는 것은 언제나 같다.

“철수랑 어제 다퉜는데요…”

“수학 성적이 떨어졌는데요…”

“집안일이긴 한데요…”

각각 다른 이유로 다른 해법을 구하려 온 것 같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들어주고 편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철수가 잘못했네.”

“이번 시험이 너무 어렵긴 했지.”

“어머니, 아버지가 네 마음을 잘 몰라주시는구나!”만이 그 녀석들이 교사에게 바라고 있는 이미 정해진 유일한 정답이다.

녀석들보다 스무 살 이상 나이 더 먹은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다툼도 성적 하락도 가족의 문제마저도 잘못한 부분, 실수한 부분, 원인 제공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냉정한 평가를 들으려고 상담 신청하는 학생은 교사 생활을 통틀어서 만나본 적이 없다.

열일곱, 열여덟쯤 먹은 녀석들도 이미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했는지 정도는 내게 오기 전부터 훤히 알고 있다. 윤리책, 사회책에서 옳은 것이 무엇이고 갈등 해결은 어떻게 하는지 배웠을 것이고 법전까지 읽지 않더라도 종교나 가정에서 주워들은 풍월만으로도 자기가 가진 오늘 고민의 원인쯤은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상 “네 맘 다 알아.” “네 잘못 아니란다” “힘들었겠네.” 소리 해 주는 한 명의 편이 더 필요할 뿐이다.

법률에 근거한 명확한 판결이 필요했다면 법원에 갔을 것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냉정하게 나누고 싶었다면 경찰서를 찾았을 것이다. 학교 내에서라도 교칙에 근거한 결론이 필요했다면 나보다는 학생부 선생님을 찾아갔겠지만 친분에 의지하여 상담하러 온 아이들의 상담가가 나였다는 것은 그 목적이 너무도 분명하다.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조금 더 교육적이고 냉정한 말들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모든 상황에서 교과서에 나온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너는 3만큼 잘못했고 너는 7만큼은 잘했어.”라는 말은 보험 처리할 때나 필요하다.

“마음고생이 많았겠구나. 선생님이 도와줄게.”라고 말한다 한들 자신이 한 잘못마저 정당화시키는 아이는 거의 없다.

아이들에겐 순간 불안한 마음에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필요한 것이고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역할도 바로 그것이다.

다른 이의 잘못을 냉정하게 지적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잘못한 이도 자기 잘못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들어주고 기다리고 편이 되어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가 당신에게 어렵사리 상담을 청하는 것이다.

당신은 재판관이 아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상담을 청한다면 잠시 편이 되어달라는 소리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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