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의 풍경들… ‘기념’과 ‘투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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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의 풍경들... ‘기념’과 ‘투쟁’ 사이
▲장애인의 날인 오늘, 장애인단체들은 기념식 참석과 거리투쟁으로 나눠져 각자의 방식대로 이날을 해석했다. ⓒ 더인디고 편집
  • 기념식장과 거리로 나눠진 ‘장애인의 날’의 장애계 행보
  • 행복한 사회로 가는 디딤돌의 날 vs 차별철폐의 날
  • 윤대통령, 공정한 기회와 연대 강조…구체적 방향은 제시 안해
  • 장애계의 다양한 대응 스펙트럼, 향후 장애인 정책 방향성 엿보여

[더인디고 = 이용석 편집장]

마흔 세 번째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계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날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른 행보도 천차만별로 달라 이채로웠다.

이룸센터에 터를 잡고 활동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 주요 장애인단체들은 대거 정부에서 준비한 기념식에 참석한 반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예고했던 지하철 시위를 재개했다. 또한 새로운 상임대표가 취임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한자연)는 이룸센터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자립생활 실현 쟁취를 위한 총력 투쟁을 선포하기도 했으며,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삼각지역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집중결의대회를 갖고 장애영유아 지원과 통합교육 보장, 전 생애주기 지원체계 구축 등을 요구했다.

▲63빌딩에서 진행되었던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을 받은 각계의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더인디고

이외에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와 메시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의 날을 전후한 며칠, 365일 중 겨우 열흘 남짓 한 기간 동안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불탄다. 그리고 이내 많은 이의 기억 속에서 장애 이슈는 흐려진다”면서, 활동지원제도나 개인예산제 등 장애인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정책의 실효성을 주문했다. 한국농아인협회도 성명을 내고 현재 농학교에는 수어와 농학생이 없다면서 그 이면에는 소리를 듣는 것이 우월하다는 사회적 인식(청능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사자가 아닌 부모의 결정으로 시행되는 와우수술은 ‘청각장애의 극복’으로 미화되지만 현실은 청인도 농인도 아닌 또 다른 사회적 낙인을 덧씌우고 있다고 주장하며, 농인은 교육, 복지, 보건·의료, 노동, 문화·예술, 사법·행정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접근성의 제약으로 사회적 장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도 기초생활수급장애인이 노동시장에 보다 적극적이고 존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령의 시급한 개선과 정책의 개정을 요구했다.

특히, 이날 전장연은 63빌딩 컨벤션센터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규정하고 1981년 제정된 시혜와 동정의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며, 2002년부터 장애인의 권리가 지역사회에서 실현되는 날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날로 선언했다. 박경석 대표는 “우리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현재까지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삼는 국가 권력과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바꾸자”면서, “우리의 저항이 뭔지 대한민국 사회가 기억하도록 투쟁할 것”임을 선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3빌딩 컨벤션센터 앞에서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선포하고 용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 전장연 제공

한자연도 이룸센터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제6차 장애인종합계획은 의료계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법적지위 보장과 장애인당사자 노동권 보장,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탈시설·탈재가·탈원화를 촉진하는 지역사회 자립지원 전달체계 구축 등의 자립생활 정책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는 장애인의 날, 이룸센터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IL센터의 법적 지위 보장 등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에 나서고 있다. ⓒ 한자연 제공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또한 “1년 전, 절박한 심정으로 발달장애 당사자와 가족들 557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삭발을 했지만 세상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주체가 되어 전국 17개 시도 광역 지자체를 대상으로 투쟁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동기의 조기개입, 통합교육, 성인기 주거와 지원서비스 제도화 등 발달장애인 전 생애를 관통하는 생애주기별 권리 기반 정책들을 요구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삼각지역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권리 기반 정책을 위해 투쟁할 것임을 선포했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제공
▲오늘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애인의 날은 맞는 심경을 밝혔다. ⓒ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장애인의 날 드러난 장애계의 다양한 행보들은 향후 정부가 이행하게 될 장애인 정책에 대한 정치적 스탠스를 엿볼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정부 주도의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친정부적 행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고, 거리에 나선 단체들의 행보가 반정부적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지나치다는 것이다. 장애계의 한 관계자는 “장애인의 날 보이는 장애인단체들의 다양한 행보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며, 일년에 단 하루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주목하는 날을 어떻게 활용할 지는 각 단체의 이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단체의 존재 이유는 결국 장애당사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 아니겠냐“며 되물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는 소회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모든 사람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자유의 철학”이며,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담았던 내용을 되풀이 강조했을 뿐 이렇다 할 장애인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이나 향후 장애인 정책의 방향성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공정한 기회’와 ‘연대’를 통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름없는 공정한 기회를 갖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선언적 다짐만 드러냈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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