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양가의 부모님을 모시고 결혼식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에겐 너무도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라 굳이 따로 얘기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지만 나의 글을 읽고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던 분들은 눈을 의심하며 탄성을 지르고 눈물을 글썽거릴 만큼 대단한 사건으로 여겨질 것 또한 분명하다.
아내가 될 친구의 어머니께서 오시기로 맘 정하시고 또 아버지께서 결심을 하시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으나, 두 분께서 온전히 내게 맘을 여신 것 또한 아니나 예식이 열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던 나에겐 두 분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움직인 그 순간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환희의 연속이었다.
바라고 바라던 일이지만 이루어지리라 희망조차 가질 수 없던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가능성이 얼마 이상 희박해야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마주한 상황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장애 가진 청년이 맘에 드는 배필을 만나고 그녀와 평생을 약속하고 양가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는 것 그것은 내가 사는 이 땅에서는 가히 기적이라 말하기 부족하지 않다.
사람들은 눈 보이지 않는 내 삶의 성취들에 ‘기적’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붙여주곤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내가 건강히 병원을 나설 때도 그랬지만 점자를 배우고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학생으로서 의례 것 받는 이런저런 상들을 수상할 때도 눈물 글썽거리며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도 처음 교사가 되던 날에도 그랬지만 어떤 어른과 처음 소주잔 부딪힐 때도 그랬고 스스로 밥을 짓거나 약속 장소에 지팡이 짚고 나타날 때도 그랬다.
다른 이들에겐 너무나 평범한 일상들이 나의 성취가 되는 순간 그것은 기적이라 불리고 감동의 장면이 되었다.
성취에 비해 과도하게 주어지는 관심과 칭찬이 부담스러운 때도 있었지만 살다 보니 장애인에게 일상을 얻어낸다는 것은 그 가능성의 크기로 볼 때 매 순간 기적이기도 했다.
내가 노력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주변의 지지가 필요했고 많은 이들의 설득과 때마침 주어지는 운마저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훌륭한 부모님을 만나고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은혜를 받아 난 평범한 학창 시절이라는 기적을 마주했다. 좋은 친구들이 없었다면 또 멋진 동료들이 없었다면 내 대학 시절과 직장생활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기적 없이는 성취도 없는 장애인의 삶이란 것이 힘들고 외롭다 느낄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나 아닌 누구라도 기적 없이 살아가는 이는 없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지금의 가족을 만난 것도 오늘의 아침을 마주한 것도 그렇지 못할 가능성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그건 기적이다. 평범함이라 느껴지는 오늘의 일상도 그것이 연속되는 것은 확률적으로 기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단지 상대적으로 장애인이 마주하는 도전과 성취들이 조금 다르게 도드라져 보이므로 특별한 기적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늘 많은 것을 바라고 누리고 살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과 그 누리는 것들이 내일도 계속되는 것이 모두 기적이다. 그 기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지지와 또 많은 우연과 커다란 운도 함께해야 한다.
난 오늘 너무나도 큰 기적을 마주했다. 양가 부모님이 함께하시는 결혼식은 나에게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기적임이 분명하다.
오늘의 기적에 감사하며 난 새로운 부모님에게 또 다른 기적이 되어드리기로 결심한다.
기적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존경하며 내 기적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또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 기적에 공감한다면! 모두 기적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