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설득과 고집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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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교실 ⓒ픽사베이
▲빈 교실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러셨겠지만 나의 어머니도 내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나중에 고생하지 않으려면…”하며 여러 근거를 대며 설득하셨던 것은 모두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신념에 근거한 설득이었다.

그때마다 내게도 공부를 피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들이 존재했지만, 그것들 어디에도 깊은 신념이나 근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임 몇 판만 더 하고 집중해서 얼른 할게요.”

“지금은 너무 졸려서 조금 자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친구랑 너무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금방 다녀올게요.”라고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핑계나 고집일 뿐이었다. 조금 더 머리가 커진 십 대 어느 때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 제목을 언급하며 조금 더 그럴듯하게 설득의 근거를 업그레이드시켰지만, 그때마저도 심각한 철학적 고찰이 있었다기보다는 당장 편하기 위한 면피의 기술에 가까웠다.

시간이 흘러 그때 엄마 말씀 잘 들은 녀석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더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확인할 방법 없으나 만약 공부만 열심히 한 아이들보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엄마 말씀 듣지 않던 녀석들이 더 성공했다 하더라도 내가 부모님 앞에 당당하게 “거 보세요!”라고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은 그때의 내겐 진심 담은 깊은 고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살다 보면 끊임없이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가족 안에서도 직장에서도 동네 주민들끼리도 국가의 대소사를 논할 때도 그렇다. 한 마리 치킨 속 날개와 다리는 누가 먹을지에서부터 핵무장과 평화 협상 사이를 논할 때도 그렇다.

모두가 그럴듯한 논리를 진지한 듯 들이대지만, 그 속내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치킨 다리 하나를 배분할 때도 진심인 사람이 있고 남북통일 이야기할 때마저도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고집쟁이도 있다. 늘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설득할 땐 어린아이 같은 고집과 핑계는 부끄럽다.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다수를 설득하는 일은 숙명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진정 내 신념 속 모두를 위한 것인지 나의 이기적 욕구 표출인지 그 경계에서 신념을 지켜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갈등을 마주한다.

내게 주어지는 할인 혜택들이 내가 장애인이기에 누려야 하는 적절한 보상인지 내 편의만을 위한 과도한 역차별인지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하철에서 나는 자리를 양보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놀이동산에서 시각장애인은 우선 탑승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 없이 받기만 한다면 우리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자신의 편리를 위해 고집부리는 응석받이 쪽에 가까워진다.

모두가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각자의 편의를 위해 서로를 이기적으로 설득하는 끝없는 싸움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치킨 한 마리를 앞에 둔 가족도 토론 석상에 마주한 정치인들도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서로 각자의 주장만 외치는 목소리 큰 엉터리 설득쟁이가 될 것이다.

요즘 교권과 관련한 이슈를 바라보며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대립이 어느 틈에 상생을 위한 설득이기보다 무작정 대립과 갈등에 근거한 다툼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수십 년 전 일부 교사들의 학생들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 태도는 분명 개선되어야 할 악습이 분명하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상식 밖의 학부모와 학생들의 사건 또한 하루속히 근절되어야 할 좋지 못한 모습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우리는 교사로서, 학생으로서, 학부모로서, 함께 사는 인간으로서 양극단의 폐습을 몰아내고 학교를 정상화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서로서로불신이 가득한 이러한 상황에서는 더욱더 깊은 고민에 근거한 설득이 필요하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아닌 서로가 상생하는 방법에 대한 고뇌가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교사라는 권위도, 학생을 지키는 조례도, 아이를 사랑하는 학부모의 마음도, 특수한 상황에 놓인 장애마저도 무조건적인 설득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고집과 대립은 싸움을 더 크게 만들 뿐이다. 어릴 적부터 서로서로 설득해 온 우리가 이제 비로소 그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할 시간이다. 이럴 때일수록 교사의 권익을 지키는 교사이기보다 학생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교사이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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