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끊임없이 객체화된 자폐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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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화면 캡처
  • 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네 번째 이야기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2019년 7월 1일,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폐지되지 않았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간소화되었다. ‘폐지되지 않았다’라고 서술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장애인 연금 기준을 포함해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세세한 ‘서비스’에서 ‘구 장애3급’ 기준이 현재도 존속되고 있다. 2019년 7월 1일 이후에도 자폐당사자들 중에서 판정 시에 IQ 검사 결과로 70을 넘는 기록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없고 장애가 심각하더라도 높은 인식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 연금을 받을 수 없다. 또 차량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참고로, 편견과 달리 운전이 가능한 자폐당사자들이 의외로 꽤 있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할 수가 없다.

둘째로, 자폐당사자들이 공식적으로 자폐 진단을 받더라도 여전히 등록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자폐장애와 관련된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이나 자신의 남편, 아들이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검사 결과 장애인 등록이 불가능해 애태우는 사람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말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된 상태에서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따라 장애인 등록이 이뤄지고 있었다면 이들은 2019년부터 등록을 받았을 것이다.

장애가 있어도 장애인 등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근원에는 정부의 장애인 등록기준이 있다. 장애인 등급제 간소화에 따라 변경된 장애등급판정기준의 자폐성 장애 항목에는 IQ 70(즉 전 세계인들 중에서 상위 2.7% 이하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의 기준은 삭제됐다. 하지만 여전히 자폐 진단과 동시에 해당 당사자의 전반적 기능평가 척도(GAS, Global Assessment Scale for Developmentally Disabled)라는 수치가 50 이하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1980년대 후반 전반적 기능 척도(GAF, Global Assessment of Functioning)로 대체된 이 수치는,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증상의 척도를 0부터 100까지의 점수로 나열한다. 정부가 이 수치를 장애 등록의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간단하다. 51부터의 단위 설명에 ‘손상’(impairment)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GAF 척도에서 51-70점으로 측정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갖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51-60 단위로 사정되는 당사자들은 ‘중간 정도의 사회, 직업, 학교 내 기능 어려움’을 가지고 있고, 61-70 단위로 사정되는 당사자들도 이러한 어려움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설명에 ‘손상’을 쓰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손상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선을 그어버렸다. 50 이하에 속하는 사람은 손상을 가지고 있으니 장애인이고, 50 이상에 속하는 사람은 손상이 없으니 장애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자폐당사자들의 삶은 세 가지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지적장애를 겸하고 있어서 일상생활에 있어서 정말로 큰 도움이 필요한 1-2급의 자폐당사자들. 두 번째로 그에 비해서 많은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구 3급의 자폐당사자들, 그리고 자신이 자폐장애가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자신이 ‘자폐’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부모에 의해 등록을 거부당하거나, 자신의 자폐정체성을 인지하게 되었지만 의학적 진단 기준에 맞지 않아서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일반인과 동일한 상황을 겪게 되면서 차별과 괴롭힘을 견뎌야 하는 소위 미등록 자폐당사자.

이러한 상황이 국가의 체계적인 설계에 의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있다. 바로 2000년에 처음으로 자폐성 장애 진단기준을 만들면서 삽입되었던 소위 능력장애측정기준이다. 이 측정 기준의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독립적으로 적절한 식사 불가능,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또래와 놀지 못한다.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방어를 하지 못한다.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다. 자해적인 행동을 한다. 한 가지 장난감에 집착한다. 가구의 위치를 옮기면 불안해한다. 같은 길로만 가려고 한다. TV에서 선전만 보려고 한다. 밖으로 나가면 그냥 마음대로 가 버린다. 머리의 크기가 작다. 눈을 맞추지 않는다. 손을 비틀거나 씻는 것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모든 물건을 입에 집어넣는다. 생후 1~2년 정도까지는 정상적인 발달을 보인다. 혼자서 말을 하는데 대화를 하지 못한다.’ 3급이 되려면 이 측정기준의 4개 항목 이상, 2급이 되려면 8개 항목 이상, 1급이 되려면 12항목 이상이 되어야 했다.

이 측정 기준대로 내가 지금 사정을 받는다면 지금의 나에게 맞는 기준은 몇 개나 될까? 아마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겨져서 장애인 등록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진단기준은 GAS로 대체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측정기준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지금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자폐아’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폐당사자를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로 보는 관점이 만연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행히 이 진단기준은 2008년의 기준 개편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이 기준에서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정부가 자폐성 장애인을 규정하는 기본적인 마인드를 파악할 수 있다. 자폐성 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서비스를 받거나, 시설로 보내거나 해서 사회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폐에 대한 관점이 일반화되면서, 자폐당사자의 부모들이나 자폐계, 복지, 교육 관계자들은 모든 자폐성당사자들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이름 아래 지적장애인과 동일하게 취급을 당하는 것, 즉 GAS 수치가 51 이상인 자폐인들을 등록장애인의 대상에서 밀어내는 것을,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승낙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만성화되다 보니 발달장애인 중에서 어느 정도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재판정 요구다. 장애인등록법은 정신적 장애인들에게 1차 등록 이후 2년 후에 재등록을 요구하고, 재등록을 마치더라도 지자체의 장은 장애인들에게 재판정을 요구할 수 있다. 성인이 되더라도 만 40세가 되지 않는다면 장애인 등록이 취소되면 곧바로 군역의 대상이 된다. 더 많은 지적능력과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는 등록 발달장애인들은, 그래서 정부와 사회복지 업무 담당자들 앞에서는 더 장애인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장애인권리협약을 대한민국의 법률로 인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폐당사자들은 끊임없이 객체화되어왔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폐당사자는 (나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자폐성 장애인’에서 제외되었으니 장애인 정체성을 가질 수 없었다. 이후에 구축된 발달장애인법 체계 속에서 자폐계의 욕구는 전혀 다른 욕구와 이슈를 가지고 있는 지적장애계에 휩쓸려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았다. 그렇게 자폐당사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겨 왔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러한 상태를 지속적으로 원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무시할 참이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두 가지 있다. 우선 2018년 보건복지부 사회보건정책실장이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지원계획> 발표 이후 웰페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부모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 봐야 한다. 특수학교에서 받는 교육의 질, 직업훈련에 대한 적절성, 직업훈련이 소득활동으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 주간활동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등이다.” 자폐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발달장애인’을 서비스의 객체, 장애를 가지게 된 인생의 루저 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두 번째로 2019년 3월 발표된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활성화 지원 실행계획〉이다. 이 계획은 발달장애인법 공포 전후로 구축되고 있던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운동을 ‘맹아기’로 표현한 이후, 발달장애인법 11조 2항에 따라 당사자를 위해 결성하게 되어 있는 자조모임 활동 대신에 부모 자조모임의 활성화와 구성만을 촉진하고, 이들 자조모임을 사회적 경제기업으로 전환시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자조활동은 줄여나가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계획을 위한 조사과정 중에서 만난 발달장애인들이 실제 자조모임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기업 내 직원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계획이 꾀하고 있는 ‘자조모임’의 재구축은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내지 못하게 하려는 ‘발달장애인’ 차별 시스템 구축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폐성 장애인이 (이 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는 기존의 편견에 기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그리고 자폐성 장애인이 당당하게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보다, 서비스나 받는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지게 만든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그동안 구축해 온,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장애차별적 정책이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한 자폐당사자 차별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애주기적 관점, 특히 청소년기부터 성인 초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더인디고 The Indigo]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의 첫 자폐 연구자이자 지식생산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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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ss0412@naver.com'
발달세상
3 years ago

언제나 응원합니다

bdss0412@naver.com'
이진섭 발달세상
3 years ago

이해받고 존중받는 그날까지 투쟁

wisungjm@naver.com'
위승석
3 years ago

동감합니다.
시각장애인 특히 한쪽눈이 완전 실명한 시각장애인에대한 등급및 장애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어 있읍니다.
한쪽눈이 실명되고 같은쪽 팔을 다치고 해서 시각 6급 지체 4급인데 취직도 힘들고 살기가 넘힘든데 아무것도 지원받을수없고 오히려 운전도 자격증 중장비등 도 힘들어요.
규제는 많고 해택은 없고 어찌하라는것인지?
기사좀 다뤄 주셨으면 합니다.

Admin
조성민
3 years ago
Reply to  위승석

사각지대에 대해 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