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죽음이 비껴가기만 기다리는 이들에게 연대의 서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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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9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휠체어를 탄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폐허 옆을 지나가고 있다. ⓒIbraheem Abu Mustafa/Reuters
▲2023년 10월 9일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휠체어를 탄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폐허 옆을 지나가고 있다. ⓒIbraheem Abu Mustafa/Reuters

‘폭탄, 전기 부족, 공격으로 손상된 도로로 인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장애인들의 생활은 불가능하다’

▲이정훈 에큐메니안 편집장
▲이정훈 에큐메니안 편집장

[더인디고] 지난 5월 31일 오전 6시 32분,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시민들이나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던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경계경보 사건이 발생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달라”

전쟁이 발생한다면 장애인은 어떻게 될까?

잠이 들었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꼼짝도 안 하는 필자도 알람 소리가 너무 컸던지라 반쯤 감은 눈을 뜨고 재난 문자를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속으로 투덜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선해 가감 없이 그때의 투덜거림을 그대로 전한다.

‘전쟁 나면 나 같은 장애인이 어디로 피난하것냐, 난 그냥 더 잘란다.’
우스갯소리에 가깝지만,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장애인은 피난도 어렵거니와 우선 구조의 대상도 아니니 속된 말로 앉아서 죽음이 피해 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필자에게 후배 하나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진짜 전쟁 나면 차 막혀서 피난 못가요. 우리 다 같이 그냥 집에서 편안히 죽는 걸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장애인들의 비참한 상황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시가전으로 돌입하면서 민간 피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달 7일 시작된 전쟁이 한 달째 접어든 11월 7일까지 가자지구에서만 1만 2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어린이는 4104명이며 여성은 2509명이라고 보건부는 덧붙였다.

물론 저 사망자들 가운데 장애인도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내외신을 살펴봐도 팔레스타인 장애인들의 피해 상황을 집계한 통계는 없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해야 하기에 장애인에게 구조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 총알과 포탄이 오가는 그 자리에 장애인이 있다면야 당연히 구조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구조해 줄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 장애인의 현실이다.

팔레스타인 인권센터에 따르면 2022년 점령지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장애인의 수는 약 9만 3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2.1%를 차지한다. 이 중 약 52%인 4만 8360명이 가자지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서안지구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전기공급이 완전히 끊기고 연료 공급마저 중단된 가자지구에서 대부분의 이동 수단으로 쓰이는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
단편적이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인터뷰를 나눈 외신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수하 마카트(Suha Maqat)라는 여성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내가 죽게 된다면, 나는 내 집에서 죽고 싶어요. 제가 어디로 가겠어요? 가자지구 남부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전쟁 중에는 모두가 자기 앞가림에 급급해 주변 사람들의 운명은 거의 고려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가자 북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향하라는 이스라엘 군의 거듭된 명령을 묵살했다고 한다. 또한 라밥 노팔(Rabab Nofal) 씨는 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고 비장애인도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이렇게 말한다.

“전쟁 전에는 저와 같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도로가 충분하지 않거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대부분의 장소에 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세 살배기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러 갈 수는 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요즘 한국의 장애인 인권단체들의 관심사는 ‘이동권’과 ‘탈시설’이다. 참 오래된 미래이다. 언젠가 한국의 어느 장애인이라도 자유롭게 가고자 하는 곳으로 아무 불편 없이 움직일 수 있고, 어느 장애인이라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유를 누리며 사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때는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속된 말로 내가 죽기 전에 볼 수나 있으려나 싶다. 그렇지만 꿈꾸는 사람에게 미래는 열려 있기에 꿈을 꾸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장애인들은 어떨까? 단편적인 이야기와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지만, 이들은 한국의 장애인들 보다 더욱 죽음과 가까워 보인다. 무슨 오지랖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목숨을 건 싸움이 중요하지만, 잠시 연대 서신 하나 띄워보는 건 어떨까. 이동권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집에서만 머물러 있고, 시설에서 여전히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와 전쟁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그들은 다 같은 이들 아닐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루터교회 목사로 독일 내에서의 반-나치 투쟁을 이끌었던 마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 목사는 이런 시를 남겼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장애인들은 우리들의 목소리가 반가울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장애인으로 그들의 평화를 기원해주는 장애인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자신들을 걱정해 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아무리 우사인 볼트처럼 재빠르게 달릴 수 있는 사람도, 아놀드 슈바르제너거 같은 근육을 가진 사람도 총탄이 오가고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장애인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는 이스라엘의 공세 속에서 장애인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모순된 말이기도 하고 이기적인 말로도 들릴 수 있지만, 이 세상에서 평화를 위해 가장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누구나 그렇지만 전쟁은 누구에게 보다도 장애인에게 먼저 찾아오니 말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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