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난 아직 조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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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을 조립하다.
▲장난감 조립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릴 적 난 조립식 장난감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준비물을 알려주시던 알림장 칠판에 조립식 장난감이란 글자가 쓰이던 학기 말엔 교실이 떠나가라 환호를 질렀고 잔뜩 쌓여있는 완구점의 장난감 박스를 보고 온 날엔 우리 집 모든 벽이 조립식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는 행복한 꿈을 꾸기도 했다.

하나씩 있을 땐 어떤 의미인지도 모를 작은 조각들이 설명서를 따라가다 보면 로봇이 되고 자동차가 되고 비행기가 되는 그런 과정들이 내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로봇 얼굴이나 비행기 날개처럼 조립 이전부터 그 위치나 역할이 뚜렷하게 보이는 부품들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조각은 관절의 베어링이나 엔진의 실린더처럼 완성되고 나서도 겉으로 보이지 않는 예측 못할 것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런 장난감들은 나이가 많아지고 조립의 경험이 누적되더라도 설명서가 없으면 완벽하게 조립에 성공하기가 힘들었다. 대략 눈대중으로 맞아 보이는 구멍에 끼우려고 하면 잘 맞지 않거나 억지로 맞춰 넣으면 다음 과정에서 사용해야 하는 부품이 부족했다. 아무리 작은 부속이라도 또 아무리 그 역할이 명확히 예측되는 큰 부품이라 하더라도 설명서에 적힌 대로 정확히 확인하고 조립해야 했다.

조립 과정이 어려워 보이는 내부의 아주 작은 것들은 때때로 생략해 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완성 후에 어떤 기능이라도 분명 하나 이상 동작하지 않았다. 완성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부품을 설명서 대로 제 위치에 끼우고 조립하는 한 가지 뿐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되면 나와 함께 한 주변의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고 솔직히 말하건대 정말 원망스러운 사람들도 있었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미움이란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만든 사람도 있었다. 만남이 소중한 이도 있었지만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만났기에 나의 올 한해도 이만큼이나 괜찮을 수 있었다. 존경스러운 선배가 있어 세상 사는 지혜를 배웠지만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 이도 있었다. 힘을 주고 용기를 준 친구도 있지만 상처를 준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기에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급하게 서두르는 상사가 있어 조금 더 부지런해질 수 있었고 매일 약속에 늦는 친구가 있어서 기다림의 여유를 키웠다. 도움 주는 이가 있어 세상의 따뜻함에 감동했고 멸시하는 눈빛이 있어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언뜻 생각하면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나와 딱 맞는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훨씬 더 맞는 것 같지만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조립식 장난감 부품처럼 내 삶을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완성품에 가깝도록 채워주는 의미가 되었다.

묘목이 단단한 고목이 되기까지는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빗물도 필요하지만 차가운 바람과 시린 눈도 필요한 것처럼 나의 한 살이 온전히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런 날도 저런 날도 필요했다. 그 시간 속에 나를 스쳐 간 모든 이들이 내가 어른으로 조립되어 가는 소중한 조각들이었다.

내가 완성품보다 조립식 장난감을 좋아했던 것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것들이 모여서 멋진 완성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난 아직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부족한 인간으로 살고 있다. 어제는 말도 안 되는 일로 동료와 다투었고 오늘은 맘속에 없는 말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뿌듯해하지만 어떤 이에게 쓸데없이 거만하게 우쭐대기도 한다.

다만 다행인 것은 내 주변에 아직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과 더불어 내게 채찍질해 주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좀 멋진 완성된 어른이 되는 날을 위해서는 아직도 설명서의 많은 조각들이 필요하다. 작은 것도 큰 것도 부드러운 것도 날카로운 것도 필요하다.

나의 한 해가 그 전보다 나아지는 동안 나를 만들어 준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내일도 내년에도 나의 완성을 위해 내 곁을 지켜줄 모든 이들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남기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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