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대화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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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모습 ©픽사베이
▲대화하는 모습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연말연시이다. 왁자지껄 모여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좋은 이야기도 반가운 새 소식도 듣게 되지만 불편한 소리나 다툼도 피하기 쉽지 않다. 오랫동안 만난 친구도 같은 일 하는 직장동료도 가족이라 하더라도 모든 면에서 의견이 같을 수 없다.

때때로 이런 다름은 충돌의 원인이 되고 사람들은 각자의 기술로 상대를 설득하려 애쓴다. 그럴싸한 근거를 말하고 자신의 실제 경험임을 어필한다. 그렇지만 잠깐의 모임, 짧은 대화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이를 내 뜻대로 설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다. 목소리의 볼륨과 톤은 올라가고 했던 말은 반복되고 직급이나 나이를 들먹이며 우월적 지위를 설득의 무기로 삼으려 할 때는 소모적 다툼의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의미한다.

매우 적은 확률로 나의 기술이 드라마틱한 효과를 나타내 정반대를 향하던 상대의 의견이 내 생각을 따르는 쪽으로 전환될 때가 없지 않으나 그것은 나의 언변이 다른 이에 비해 월등히 화려하고 논리적이었다기보다는 상대의 이해심이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컸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또 다른 다툼들 속에서 내 의견이 같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될 때면 그제야 스스로가 설득한 것이 아닌 이해 받은 것임을 알게 되겠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가 나에게 설득의 기술을 구사할 때 상대의 조건이 제한적으로 나보다 현격히 우월한 지위에 있지 않다면 짧은 대화로 “내가 잘못 생각했네요.”라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수학박사와 ‘리만 적분과 라이프니츠 적분의 차이’를 논한다거나 고고학자와 ‘마추픽추 발생의 기원’에 대해서 나누는 논쟁 자리가 아니라면 짧은 모임에서 정반대를 향하던 나의 의견을 급격하게 입장 선회하여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라고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그럴 것이었다면 애초에 다툼이나 충돌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톤이 올라간다고 해서 내가 설득될 가능성이 높아질 일은 더더욱이 없다. 그건 아주 어릴 적 부모님께 혼날 때도 그랬다. 꾸중 듣는 상황이 무서워서 “잘못했습니다.”라고 했을 뿐 위압적인 상황 조성은 어느 순간에도 훌륭한 대화의 기술이 되지 못한다.

상대가 나보다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더 나은 설득 상황을 만들지 못한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쯤 많은 어른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우리 회사 사장님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와서 말한다고 하더라도 말 몇 마디로 내 생각을 순간적으로 바꿔놓지는 못한다. 다만 어른이기에 사장님이기에 대통령이기에 설득되고 감명받은 척할 뿐이다.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말할 것 없이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 난 잘 듣지 못해서 상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견 충돌이 있다면 한 번쯤 설득해 보려고 시도할 수는 있지만 목소리를 높이거나 반복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데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다. 타협할 수 없는 타협점을 찾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겠지만 뜻대로 설득되는 이는 없이 나 스스로를 이해받아야 하는 애처로운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같은 모임에 참석한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이지만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난 짧은 모임에서 올해 꼴찌를 기록한 상대가 응원하는 야구팀보다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의 전력이 낫다고 설득할 자신이 없다. 우승팀의 팬이 내게 같은 시도를 한다 해도 내가 설득될 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가 더 센지 너희 아빠가 더 센지 끝없이 논쟁하던 꼬꼬마 때처럼 우리 생각의 차이는 짧은 시간 잘 좁혀지지 않는다. 모임에서 우리는 가르치거나 설득하려 하기보다 상대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 낫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쟁이로 다른 이의 이해를 받는 것보다는 설득된 척 보이더라도 마음 넓은 이가 되는 편이 낫다.

핏대 세우고 끝까지 목숨 걸 만큼 고집부릴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즐거운 대화를 하려면 적당히 설득 당한척하고 공감되는 이야기를 하자!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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