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이상형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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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용 자전거 ⓒ픽사베이
▲2인용 자전거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난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웃는 것을 좋아한다. 실없이 싱겁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딱딱하고 지나치게 진지하고 위트 없다 소리 듣는 것보다는 그편이 낫다. 내 아내는 리액션이 크고 잘 웃는 사람이다. 웃기고 싶은 사람과 웃어주는 사람이 만났으니 우린 제법 잘 만났다. 아무런 영양가 없는 소리에도 큰 웃음보를 터트려주는 아내에게 주변 친구들은 “그게 진짜 웃겨요?” “그러다 버릇 나빠져요.”라는 말들을 내뱉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이 제일 싫어하는 과자가 뭔지 알아?”
“그게 뭔데요?”
“눈을 감자!”
“호호호호호”

“시각장애인이 제일 싫어하는 노래는?”
“그건 또 뭐예요?”
“죽어도 못 보내”
“깔깔깔깔깔 너무 웃겨요.”

쉬지도 않고 이어지는 농담과 숨넘어갈 웃음소리에 누군가는 진정 부러워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진심으로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몇 달만 지나 봐라! 그게 계속 이어지나?”하는 어느 친구의 말처럼 내 아내의 웃음소리가 전보다 많이 작아지긴 했지만 우리는 아직 괜찮은 편이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사로 힘들어하는 한 지인이 요즘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 영상 봤어? 그런 상냥한 아내를 만난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정말 복 받은 것 같아!”, “혹시 그 프로그램 봤어? 그런 착한 아이들을 자녀로 둔 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전생에 나라를 구했으려나?” 공유해 주는 영상 속의 가족들은 그 아닌 누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화목하고 행복해 보였다. 가정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진 그가 보기엔 당연히 억울할 정도로 부러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과는 아무 관련 없이 항상 밝은 사람이 있을까? 무뚝뚝해도 받은 것이 없어도 화가 나 있어도 웃어주고 상냥한 사람은 있지도 않겠지만 있다 하더라도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초인간적 천사가 이 세상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재미있는 개그 프로그램을 본다 하더라도 내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작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게 정상이다.

태생이 건강하고 의젓하게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가정에서 그런 성향을 유지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화면에 나오는 상냥하고 친절한 아내가 있다는 것은 분명 그녀를 그런 행복한 상태로 유지해 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짧은 영상 속 남자는 다소 무뚝뚝해 보일 수도 있고 그런 아내가 과분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모든 모습이 늘 우리가 보듯 부족하고 못나기만 했다면 아내의 상냥함도 유지될 수 없다.

착한 아이도 행복한 가정도 우리에겐 보여주지 않은 가족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내고 지켜가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작아지고 빈도가 줄어드는 것은 내 노력이 전과 같지 않아졌음의 증거이다.

“요즘 변했네. 이젠 내가 말해도 웃지도 않네.”, “영상 속에 나오는 저 여자분은 남편이 저렇게 답답해 보이는데도 다 웃어주고 친절한데!”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한 번 더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원인이 바뀌었는데 그대로 유지되는 결과도 없다. 웃는 사람을 바란다면 상대를 계속 웃게 하는 내가 되면 된다. 내게 상냥한 사람을 바란다면 내가 먼저 그에게 친절하면 된다. 원하는 이상형을 만들고 싶다면 그런 사람에 어울리는 나로 바뀌어야 한다. 다른 이의 행복이 부러워 보인다면 막연히 부러워할 시간에 그의 노력이 나와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난 잘 웃는 사람이 좋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웃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많이 웃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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