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국민학교 시절에도 통합교육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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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에도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이 있었고, 장애학생도 있었다. 당시 통합교육, 통합학급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진.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특수 학급’이라는 걸 3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해 교내 보이스카우트에 입단했는데, 보이스카우트 담당선생님이 특수교사를 겸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속한 교실 옆이 도서관, 그 옆이 특수학급이 위치해 있기도 했다.

그때부터 6학년까지 함께 학교생활을 했던 장애학생은 총 세 명이었다. 남학생 두 명은 발달장애, 여학생 한 명은 뇌병변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발달장애도, 뇌병변장애도 뭔지 모르고 그 학생들이 ‘장애’학생인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나도 장애가 있는데 나는 왜 특수학급에 속해있지 않은 건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매주 월요일 아침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조회를 할 때 그 세 명의 장애학생은 한쪽에 따로 서 있었다. 한 발달장애학생은 중간중간 자신이 서 있던 줄을 이탈하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흘끔흘끔 그 학생들이 서 있는 라인을 바라보곤 했다.

#1.

줄을 이탈하곤 했던 발달장애학생은 내 기억으로 전교생 중 키가 가장 컸다. 몸놀림이 날렵해서 굉장히 빨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학생을 운동회에서 달리기 선수로 내보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왠지 그 학생이 주자로 달리게 된다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장면, 즉 뒤쳐져 있거나 포기해야 할 경기를 순식간에 역전시킬 희망이 생길 것만 같다. 물론 달리기를 위한 규칙과 방법을 설명해야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학생의 지적 능력이 많이 낮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투자했다면 그 학생이 속한 반은 운동회에서 단숨에 우승후보로 급부상했을 거라 단정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 학생을 경기에 출전시키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그 학생이 달리기에 출전해서 훌륭한 결과를 얻어 냈더라면 단번에 우리들의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친구도 생기고,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졌을 텐데.

#2.

또 한 명의 발달장애학생은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으로 인해 학교생활을 하며 많은 곤욕(?)을 치렀다.

그 학생과 같은 반일 때 그 학생의 아버지를 자주 봤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아버지를 자주 봤다기보다 그 사람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몇 장의 지폐를 장애학생에게 건네주던 모습을 정말 많이 봤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가고 나면 학생들이 장애학생에게 자꾸 뭔가를 사달라고 했다. 결국 아버지의 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지갑 속 지폐는 꺼내진 후 얼마되지 않아 금방 새로운 주인에게 넘어가곤 한다. 특히 소풍이나 운동회 등 학교행사가 있는 날이면 다른 때보다 더 큰 금액을 주시는 것 같았다.

슬프게도 장애학생은 받은 돈으로 학생들에게 뭔가 사주는 것을 즐거워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다른 학생들에게 사주면서 정작 자기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걸 봤는데, 그래도 그 학생은 환하게 웃고만 있던 모습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 학생에게 몇 번 얻어먹은 적이 있다. ‘바른생활’에서 배운 대로 얻어먹은 뒤 예의상 “고마워!”라는 말은 잊지 않았지만, ‘장애’가 있는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왜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걸까? 덩달아 나도 장애가 있는 학생인데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3.

내가 뇌병변장애를 가진 학생을 기억하는 이유는 일명 ‘산토끼’ 벌칙 때문이다. 5학년 때 그 학생과 같은 반이었는데, 당시 담임 선생님은 두 손으로 귀를 잡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하면서 동요 ‘산토끼’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게 하셨다.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두 손으로 귀를 잡고 앉았다 일어서기 동작을 반복하는 벌칙이었는데, 뇌병변장애가 있는 학생도 ‘산토끼’를 했다.

당시 우리들은 각자 ‘산토끼’를 할 때마다 동작이 약간씩 달랐다. 그런데 그 장애학생이 하는 ‘산토끼’ 동작이 내가 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게 보인다고 같은 반 학생들이 자주 그랬다. 그 학생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놀리곤 했다. 뇌병변장애가 있어서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으니까 동작이 느려진다. 천천히 동작을 취하는 과정이 보는 학생들에게는 우습고 놀림감이 될 텐데, 그걸 내가 하는 동작과 닮았다고 막무가내로 묘사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 학생과 연결되는 게 불쾌하고 싫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다른 생각이 든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학생도 앉았다 일어서는 벌을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하게 했다는 건, 담임 선생님이 통합교육을 했다는 걸까?

#4.

나는 어디쯤에 있었을까? 나도 장애가 있는데 특수학급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일반학급에 있으면서도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다. 학년마다 만났던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통합교육을 했던 선생님조차도 나는 어떻게 지도해야 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나 보다.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으니까.

지금은 안 들리지만 예전에 교실 안을 우렁차레 울리던 보이스카우트 담당 선생님의 호랑이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무서운 선생님이었는데, 그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세 명의 장애학생이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에서 얼마나 교육을 받고 발전했을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연일 통합교육이 이슈가 되는 요즘에서야 문득 궁금해진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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