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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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이의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서 보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 ©박관찬 기자
  • 장애학생 학대사건 이야기-2
  • 아이는 어리니까 사실관계확인을 위해 필요
  • 범죄 사실 입증을 위한 유일한 증거라면 필요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에 직접 관여되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몰래’ 행하게 된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인권 감수성이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동의 없는 녹음이나 사진 촬영과 같은 행위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예외가 인정될 수도 있다. 특수교사가 주호민 작가의 장애자녀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몰래 녹음한 파일이 증거능력으로 인정된 경우도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에 대해 ‘선고유예’의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범죄를 인정하면서도 ‘한 번만 봐준다’라는 뉘앙스가 있다.

원고와 피고 측의 주장 중 어디가 옳고 그른지보다, 대한민국 특수교육, 더 나아가 교육계에서 왜 부모는 자녀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서 학교로 보내야 하는 걸까? 이를 위해 장애자녀 뿐만 아니라 비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봤다.

#1. 아이는 어리다

장애자녀와 비장애자녀를 모두 둔 학부모 A 씨는 “비장애아이가 초등학생 때 한동안 학교생활을 많이 힘들어한 적이 있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비장애아이들도 학교 가는 걸 꺼려할 정도로 많이 힘들어 하고 심리치료도 받았는데, 그게 교사의 폭언 등 아이들에 대한 정서적 학대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어 “비장애인이지만 초등학생이니까 교사가 심한 말을 했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상황을 잘 정리해서 부모에게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또 부모에게 이야기했다가 오히려 교사에게 혼나거나 더 학대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며, “비장애아이도 이런데, 장애가 있고 특히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기 쉽지 않은 발달장애라면 오죽하겠느냐”라고 부모가 몰래 녹음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비장애자녀를 둔 부모 B 씨는 “물론 착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라며,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하는 아이들마다 내용이 달라지면 누가 한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서 학급의 분위기, 오가는 대화를 녹음된 파일로 들을 수 있는 것만큼 객관적 자료는 없는 것 같다”고 역시 녹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 범죄의 입증을 위해 필요

아이가 어려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녹음을 통한 객관적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는 주장 외에 ‘범죄 입증’을 전제로 녹음의 필요성을 주장한 학부모도 있었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 C 씨는 “사실 요즘 사람들은 통화할 때 녹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통화하면서 ‘이거 녹음한다’고 이야기하며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는 않지만, 나중에 통화내역이 필요할 때 녹음했던 걸 다시 들어보게 된다”고 했다. 상대방의 발언이 증거로 필요할 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몰래 녹음한 통화기록도 증거로 인정될 때가 있는 것처럼 교사가 학생에게 한 행위가 학대라는 범죄가 성립한다면, 몰래 녹음한 파일도 증거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얼마 전 성범죄 사건을 다룬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하는 중 녹음한 게 범인 검거에 결정적 단서와 성폭행의 유일한 증거가 됐다”고 하며 “이런 범죄들까지 연결시키는 게 솔직히 많이 조심스럽지만,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녹음된 파일뿐이라면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았더라도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부모 D 씨는 “그저 아이가 즐겁게 학교를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이 크지만, 오죽하면 아이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보내게 될까 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며, “아이가 학교를 다녀온 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로서 걱정되고 무슨 일인지 자세하게 전후사정을 알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교사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알아주시고 교사들도 열심히 교직에서 활동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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