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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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인식을 하고 문이 열리는 구조의 유리문 사진
피트니스 클럽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얼굴 인식을 해야 유리문이 열린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꼭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땀을 흘린다. 자립생활을 영위해 가기 위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게 건강이라는 걸 잘 알기에, 운동은 그 어떤 것보다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기자가 이용하는 피트니스 클럽은 이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고, 불편함이라면 불편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7층에 있는 피트니스 클럽으로 가기 위해 눌러야 하는 엘리베이터 버튼의 숫자과 지금 몇 층인지 알려주는 숫자가 뜨는 화면이 너무 보기 힘들다. 두 번째는 피트니스 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얼굴 인식을 해야 하는데, 기계에 정확하게 얼굴 인식이 되었는지 여부를 기자의 저시력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기자가 가장 선호하는 엘리베이터의 유형은 목적지의 층이 적힌 버튼을 눌렀을 때, 그 버튼의 불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럼 엘리베이터 천장에 적힌 숫자가 지금 몇 층을 가리키는지 희미하게 보여서 구분하기 힘들어도, 목적지의 층에 다다르면 버튼의 불이 사라지기 때문에 확실하게 목적지에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트니스 클럽이 있는 건물 엘리베이터는 오래되어 그런지 엘리베이터 상단에 뜨는 숫자도 희미할 뿐만 아니라, 버튼 역시 눌러도 눌렀는지 여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7층쯤이라는 ‘감’으로 내렸다가 6층인 걸 확인하고 계단으로 한 층 더 올라가는가 하면, 8층에서 내렸다가 한 층 더 내려오기 일쑤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단번에 해결책을 알려 주었다. 피트니스 클럽에 운동하러 가는 거니까 굳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고 계단으로 다니라고. 그 뒤로 피트니스 클럽에 갈 때마다 7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고, 운동을 다 하고 나올 때도 7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온다. 7층까지 계단으로 한번에 올라가면 몇 분간 숨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만 빼면, 더 이상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어 한결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계단으로 7층까지 올라온 뒤 또다른 스트레스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 인식을 한 뒤 ‘그냥’ 피트니스 클럽으로 입장했는데, 얼굴인식을 하는 기계와 피트니스 클럽 사이에 유리문이 생긴 것이다. 그 문은 얼굴 인식을 하는 기계와 연결되어 있어서 회원들이 얼굴 인식을 해야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구조였다.

그 유리문이 생긴 첫 날,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얼굴 인식을 ‘통과했다’고 생각했는데 피트니스 클럽 입구에 유리문이 있었다. 유리문 여기저기를 더듬어 보아도 문을 여는 버튼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오늘 피트니스 클럽 쉬는 날인가?’ 생각했지만, 분명 클럽 안의 조명은 환했고,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문을 향해 ‘열려라 참깨!’를 수없이 외쳐 보았지만, 유리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난감해하고 당황스러워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문득 내 왼쪽에 사람 한 명이 나타났다. 마스크를 한 걸 보니 피트니스 클럽 직원이다. 그는 기자에게 얼굴 인식하는 기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얼굴 인식 기계에 다시 얼굴을 들이댔다. 정확하게 얼굴을 들이대야 하는 위치를 모르니까 얼굴을 동서남북으로 조금씩 움직였는데, 어느 순간 유리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얼굴이 인식되어야 유리문이 열리는 구조라는 걸 짐작하고 피트니스 클럽으로 입장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음을 느꼈다. 운동할려면 앞으로도 이렇게 해야만 입장할 수 있을 텐데….

가장 좋은 방법이 피트니스 클럽에 입장할 때마다 직원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작년에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피트니스 클럽 등록을 다섯 군데에서나 거절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눈이 잘 안 보이면 운동하다가 다칠 것 같다고, 운동하고 싶으면 반드시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고, 면책조항(운동하다가 사고가 나도 피트니스 클럽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을 수기로 계약서에 적어야 한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면 지금 이용하고 있는 피트니스 클럽에서도 운동하다가 다칠까봐, 다치면 클럽측에서 손해배상을 해야 할까봐 우려하여 환불을 하겠다거나 회원등록을 취소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괜히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 장애인 차별이다 아니다를 가지고 옥신각신하거나 속시끄러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결국 피트니스 클럽을 갈 때마다 유리문이 열릴 때까지 마음 속으로 ‘열려라 참깨!’ 주문을 외우면서 얼굴을 동서남북으로 여기저기 이동시켜야만 한다. 그럼 어느 순간 얼굴이 인식되었는지 유리문이 열리면서 피트니스 클럽에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이제 들어와서 운동하셔도 됩니다.”라고.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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