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발달장애인 일자리’에서 배제된 자폐당사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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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아홉 번째 이야기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자폐당사자가 어떻게 사회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굉장히 길게 끌어온 것 같다. 이제 성인기와 일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용 문제에 대해서 다루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얼마 전에 아는 분으로부터 장애인을 고용하는 언론사에 취업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로 거절을 했다. 첫째로 그 당시 한국연구재단 사업에 지원했었고(물론 올해도 또 떨어졌다), 선정되면 취업이 되더라도 곧바로 퇴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식의 리스크를 안는 것은 당연히 해당 회사에도 폐를 끼칠 것이 분명하므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전 직장인 철도신문에서 잘린 이후 학계로 돌아오자고 마음먹었고, 그래서 학계가 아닌 언론계로 다시 ‘돌아가자’는 제안 자체가 부담이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아직 충분한 논문 실적이 없었다. 어차피 학계에서 신진 연구자로 자리 잡기로 한 이상 정말로 많은 논문을 쓸 차례였다. 이런 상태에서 그 회사에 취업하게 된다면 논문 작성에 시간을 들이기 힘들 것으로 예측됐다.

셋째로, 현재 필자가 기고하고 있는 더인디고와의 관계를 굳이 끊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언론사에 대해 내가 생각하던 문제는 회사가 고용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쉬운 읽기에 기반한 글쓰기와 발달장애인의 고용 방식에 있었다.

우선 언어의 나타나는 방식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자폐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렵게 글을 쓴다. 실제로 글을 읽고 데스킹(현장 취재기자들의 원고를 선임 기자들이 검토해 다듬는 행위) 절차에 들어가면 ‘글을 쉽게 써 줄 수 없느냐’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물론 쉬운 말이나 우리말을 더 자주 쓰자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쉽게 글을 쓰는 것이 우리말이 적절히 나타나는 방식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글 자체가 해당 기업이 원하는 ‘기자’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해당 기업이 ‘발달장애인 기자’들에게 요구하는 글은 시사를 쉽게 읽기(easy-read) 형태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글이다. 그렇다면 내가 취업했을 때 그런 글을 짜내기보다는 기존 미디어 업체에서 했듯이 해당 기업에서 매일 3~5개 정도의(물론 타 회사에 비해서는 적은 것이기도 하고, 보도자료 기사가 대부분이겠지만) 기사를 찾아서 올리고 확인해달라고 하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당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해당 회사에는 귀찮은 일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기사를 써 오면서 정치나 민감한 이슈에 대한 입장을 담아 왔는데, 이 또한 해당 기업에는 마이너스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예를 들어 전에 철도와 관련된 글을 쓸 때 나는 한국철도-NR(국가철도공단)-SR 일괄통합, 무임승차제 폐지 및 교통지원금 전환 등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취재해 기사로 내보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사회적 기업’에서라면 이러한 글은 무조건 데스크로 올라가는 즉시 잘릴 것이다. 실제로 해당 언론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올린 글에서는 당사자의 생각이 담긴 심층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현재의 ‘발달장애인’ 대상 일자리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정신적 당사자의 법적 능력(legal capacity)을 전적으로 제한한다는 전제, 다시 말해 국제법으로 폐기 요구를 받는 장애의 의학적 모델을 고수한다는 전통 아래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발달장애’라는 이름은 IQ가 70 이하이거나 그만큼의 사회적 손상을 입어서 ‘정상적인 발달 상태’와 거리가 있는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다시 말해 현재의 발달장애 일자리는, 고인지 자폐당사자와 같이 높은 인지능력과 발달능력이 있지만 발달장애에 속하는 손상이 명확하게 측정되지 않는 사람들을 ‘장애인’에서 애초에 제외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여러 번 소개했듯이, 해외에서 자폐 특성을 가진 사람 중의 일부는 기업가, 학술지 편집자, 연구자, 기자, 정교사, 프로그래머가 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 중에서 자신의 의견과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들은 성인기에 어떻게 일자리를 얻고 있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장애인과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동일한 평가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는 어떠한 도움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다시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 같다. “저희 아들이나 딸은 그렇지 않은데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그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자폐당사자들이 그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들 중의 다수가 최저임금 제외 판정을 받아서 더더욱 어려운 가운데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그러한 당사자 곁에 또 다른 당사자들도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말아 주기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의 자폐당사자 중에서는 일반 대학교에 진학한 사람들이 있고.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도 있다. 또 비장애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공기업 취업을 위해 반복되는 불합격 통지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전전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영업직에서 뛰는 직원이 있고,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당연히 주간보호서비스나 일반 복지체계에서도 제외된다. 그럼 그들은 어떠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그냥 그저 자신의 장애를 등록하면 끝인가? 무엇인가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등록이 되지 않았는가?

이 시점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중증’ 자폐 및 중복당사자의 지원을 위해 다른 등록된 자폐성 장애인들은 지원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자폐성 장애인들은 등록되는 순간부터 일반 일자리 취업은 생각해서는 안 되는가? 그러면 다음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자폐성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할 때는 ‘경증 자폐인’ 뿐만이 아니라 ‘중증 자폐인’의 입장도 듣고 배려해야죠.”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할 말이 없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로 중증 자폐로 태어나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능력이 있다면 같은 정도의 ‘자폐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건 ‘차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5년에 제주도에서 한국발달장애인협회의 초청을 받아 하루는 토론회를 하고, 또 다른 하루는 워크숍을 했다. 둘째 날에 요청에 따라 발표를 한 다음에 질문을 받았는데, 첫 번째 질문이 “님 자폐인 맞아요?”라는 존재 증명 요구였다. 다행히 그때 같이 오신 분 중에서 내 ‘계통’을 알고 계신 분이 증언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자폐당사자 부모나 관계자들로부터 ‘다른 자폐인들의 사정을 알고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고 있다. 나도 ‘그들’이었는데 말이다.

둘째로, 그래서 그분들의 이야기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자폐당사자 중에서 나처럼 사회성이 개선되어 소통과 지적 활동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나도 그랬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배려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 논의에 포함되어야 할 사람 중에 또 다른 자폐당사자들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경계선 발달장애, 비언어성 학습장애, 사회소통장애 등으로 불리는 미등록 자폐당사자들의 이야기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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