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Young의 쏘Diverse] 모두 ‘집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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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숲속 마을의 작은 집에 불이 켜져 있다.
ⓒunsplash
  • UN CRPD와 사회 이슈 ⑦ CRPD 제19조와 ‘장애인탈시설지원법’
  • 나의 크리스마스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크리스마스와 다가오는 연말연시는 집에서 안전하고 따뜻하게 보내라는, 대국민 메시지가 연일 전달되고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시끌벅적하던 한해의 끝과 시작이 여느 해와는 다른 풍경이다.

항상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나는 집에서라도 그 분위기를 한껏 느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성탄절이 밝으면 느지막이 일어나 트리를 밝히고, 창문을 열어 겨울 냄새를 맡는다.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며 소파와 한 몸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사둔 고기와 채소를 굽고, 와인을 마시며 캐럴 음악을 들을 것이다. 나는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미고 보내왔다. 완벽하게 크리스마스를 누리고 싶은 나의 계획은 언제나 성공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지냈다는 한 친구는, 크리스마스가 특별히 기다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랍시고 단체로 시설에 와서 값싼 선물을 쥐여 주며 가엾어 하다 사진을 찍는 행사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설 생활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일부 자원봉사자들이나 후원자들의 자선과 선의를 베푸는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날인 셈이다. 어쩌면 조금은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릴까 하는 기대감도, 어떤 선물을 받을까 하는 설렘도 몽땅 짓밟혀,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만 하릴없이 반짝이는 하루로밖에 기억되지 않는다고.

시설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는 매번 우리를 충격에 빠트린다. 강제불임 조치, 성폭행, 신체폭행, 감금, 과도한 의료 처치 등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고 모두의 공분을 사지만 매번 그때뿐이다. 그나마 드러나는 문제들이 극히 일부 시설의 문제라고 해도, 시설 수용 방식 자체가 인권침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곳임은 분명하다. 시설에서는 개인의 ‘선택’이 없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자고, 먹어야 하며, 모두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보호’를 명목으로, 사실상 통제를 위한 규칙이 시설 생활인들의 자유를 억압한다. 1980년대, 소위 ‘부랑인 청소’를 위해 만들어진 시설에는 아직도 약 6만여 명이 수용되어 있으며, 이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 예산도 매년 증가한다.

지난 10월 28일 장애인단체가 여의도공원 10문 앞에서 탈시설지원법제정 및 장애인예산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사진=더인디고
지난 10월 28일 장애인단체가 여의도공원 10문 앞에서 탈시설지원법제정 및 장애인예산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사진=더인디고

12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을 대표 발의했다. 그동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에서 벌여온 탈시설지원법의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는 투쟁이 결실을 본 셈이다. 이 법률안은 장애인을 ‘사회적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사회참여’에 저해 받는 사람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탈시설을 단순히 ‘시설에서 나오는 것’에서 나아가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각종 서비스와 제도를 누릴 권리’로 정의하면서, 그 서비스와 제도는 ‘장애인 개인의 정당한 욕구에 기반’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법률안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그 정신이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10년 이내로 장애인 거주 시설을 모두 폐쇄하도록 그 기간을 한정해 실효성을 높이고 있어 장애인 인권증진의 큰 도약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법의 제정도, 시행도 험로가 예상된다. 시설 운영 법인의 반발이 예상되며, 시설 종사자들의 고용 승계 방안도 문제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접근성이 구축되어 있는지도 살펴야 하고, 공공임대주택 등에만 장애인들이 거주하게 되는, 지역사회에서의 또 다른 분리와 배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중증장애인이 과연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잠재력에 맞춰, 구성원의 존중과 사회의 안전망 속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2031년의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을까? 누군가는 눈을 맞으며 공원을 둘러보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놀이공원을 놀러 가고, 누군가는 나처럼 집에서 영화를 연달아 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더 이상 누군가의 선의의 도구나, 짜인 틀에 갇힌 크리스마스가 아닌, 모두 스스로 원하는 방식대로, 원하는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를 기대해본다.
우리 모두 집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더인디고 THEINDIGO]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선임, 2014년부터 장애청년 해외연수 운영, UNCRPD NGO 연대 간사 등을 하면서 장애분야 국제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유롭게 글도 쓰며 국제 인권활동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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