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풍 3화

“이놈의 빌어먹을 아파트 단지 주민 거개가 알량한 생계비 몇 푼에 목숨을 연명하는 떨거지 인생들이라우.”

계반장은 남자의 너저분한 호기심을 늘 한마디로 매조지곤 했다.

햇볕이 쨍쨍해지면 어느새 중늙은이들을 태운 휠체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기 마련이다. 한창 일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날품팔이조차 불가능한 이들은 저마다 가슴에 맺힌 한(恨)만큼씩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매달 지급되는 알량한 생계비를 쪼개 야금야금 핥으며 사는 축들인 이들은 그나마 편히 등 붙이고 누울 영구임대아파트 살이가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대개 이런저런 질병의 후유증 등으로 얻은 장애이고, 남자처럼 교통사고나 산재로 팔 다리를 잃은 사람들도 제법 섞여 있는 듯했다. 그 사연들이야 구구절절 다양하겠지만, 일찌감치 인생의 벼랑길로 내몰렸던 공통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법 젊은 축에 든 자들은 품팔이 나간 아내 대신에 휠체어에 싣고 나온 어린 아이를 그네에 앉히기도 했다. 간혹 인근 교회에서 돌린 선교지를 심각한 표정으로 읽는 축들도 있기는 했지만, 누군가 선심 쓰듯 삼겹살이라도 들고 나오면 선교지는 불쏘시개로나 쓰일 뿐이었다. 술추렴이 시작되면 제법 흥을 돋워 구성진 노랫가락이 늦은 밤까지 계속되기도 했다지만 그런 삼삼한 광경을 남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목덜미에 닿는 바람이 성크름해지면 공원의 주인은 다시 바뀐다. 삼삼오오 떼를 진 어린놈들이 도둑고양이처럼 기어들어와 어둠 속에 얼굴을 숨긴 채 담배를 나눠 피우기도 하고, 제법 침울한 얼굴로 소주병을 기울였다. 또 어느 때에는 여러 놈들이 몰려와 한 놈에게 몰매를 놓기도 했고, 어린 연인들이 찾아와 그 뜨거운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습하고 차가운 정자 마룻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계반장의 휠체어가 모습을 드러내곤 했는데, 그는 호각을 불어대며 패악을 떨며 몽니를 부리다가도 담배 한 갑, 혹은 소주 한 병에 금세 희희낙락해져서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중절모를 제법 맵시 나게 눌러쓴 사내 하나가 여칫거리며 다가와 내민 담배를 거의 다 피웠을 즈음 노란색 25인승 미니버스 한 대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온다. 버스는 곧장 <복지공원>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휠체어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자 앞에 멈춰 선다. 차창 왼쪽에 붙은 도화지에는 <한국빈민장애인복지회 ○○시 지부>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다. 차문이 열리자 네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뛰어내린다. 그들은 한결같이 얼룩무늬 군복차림이다. 그들 중에 해병대 모자를 쓴 사내가 계반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다. 튼실한 살피듬에 비해 목소리가 가늘고 지나치게 높다.

“어이, 계반장. 간만이네. 몸이 근질근질하지?”

계반장은 대답 대신에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아마도 참가자 명단인 듯 해병대 모자는 종이를 뚫어져라 보더니 이맛살이 찌푸린다.

“이 두 사람은 안 된다고 했잖아. 벌써 네 번이나 찍혔어. 이번 참에 또 걸리면 바로 넘어간다니까.”

해병대 모자가 두툼한 자신의 목에 손날을 긋는 시늉을 해 보인다. 계반장이 해병대 모자가 지목한 두 사람을 대열에서 제외시킨다. 둘 중 쉰 살은 훌쩍 넘겼을 것 같은 추레한 몰골의 중늙은이 하나가 기어이 따라나서겠다며 땅바닥에 널브러져 게정을 부렸지만, 잠시뿐이었다.

“이 작자가 미쳤나? 당신, 벌금 낼 돈 있어? 아까 나눠준 거 다시 토해내란 소리 안 할 테니까 당장 꺼지쇼.”

계반장이 나서서 종주먹을 들이대며 당조짐하자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비칠비칠 물러선다. 나머지 열아홉 명이 차례대로 사내들의 등에 업혀 버스에 올라탄다. 군복차림의 사내들 중에서 틀거지가 가장 왜소한 청년이 다가와 남자에게 등을 내민다. 남자는 청년의 등에 가슴팍을 바싹 밀착시키며 몸을 곱송그린다. 자신을 업은 청년에게 조금이라도 무게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청년이 자신의 목에 매달린 남자를 휠체어에서 들어 올리자 그의 텅 빈 바짓가랑이가 검은 상장(喪章)처럼 펄럭거린다.

남자를 등에 업은 청년이 힘에 겨운지 비틀거린다. 버스 손잡이를 부여잡고 층계참에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쉰 청년은 남자를 맨 앞좌석에 짐을 부리듯 함부로 내려놓는다. 남자는 자신을 업은 청년에게 미안하면서도 문득 역한 노여움이 불쑥 치민다. 마지막으로 계반장이 해병대 모자의 등에 업혀 남자의 옆자리에 앉자마자 미니버스는 곧 출발했다.

계반장이 잊었다는 듯 옆구리에 끼고 있던 쥐색 비닐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 남자에게 건넨다. 언뜻 남자는 계반장의 열끼 섞인 눈동자에서 미세하게 드러나는 두려움을 본 듯하다. 그러나 남자는 금세 고쳐 생각한다. 착각일 것이다. 소풍을 가면서까지 세상에 대해 두려움 따위를 느낄 계반장이 아니다. 헌데 우리는 대체 어디로 소풍을 가는 거지? 여태껏 남자는 행선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옅은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계반장의 서슬 퍼런 눈빛에 주눅이 들어 감히 묻지 못한다. 아파트 단지에 처음 도착했던 그날도 남자는 예의 그 불안감에 시달렸다.

“자주 들릴게요.”

걸레를 들고 허둥대던 아내는, 한 마디를 남기고 휭 하니 가버렸다. 그러자 9평 남짓 비좁은 집안은 물속처럼 고요했다. 갑작스런 적요에 당황했던 남자는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조금 울었던 듯하다. 남자만을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시키고 떠난 아내의 행위를 예견된 불행에서 자신만은 비켜서려는 약삭빠른 자의 매정한 간지(奸智)로 기억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아내가 쌀을 씻어 안쳐둔 전기밥솥이 뜨거운 김을 토해낼 무렵, 초인종이 울렸다. 누굴까? 남자는 어쩌면 자신을 혼자 두고 차마 걸음을 돌리지 못한 아내일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리나케 엉덩이를 질질 끌듯 기어가 현관문을 열었다.

“반갑소. 나, 계창수라고 합니다. 그냥 계반장이라고 편하게 불러요.”

낯선 사내였다.

사내는 현관문이 닫히지 않도록 자신의 휠체어를 빗겨 세운 채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는 면장갑을 낀 손으로 남자의 손을 잡아 흔들며 넌덕스럽게 떠들었다. 텅 빈 아파트 복도가 사내의 목소리에 쩌렁쩌렁 울렸다. 방문자가 아내가 아닌 것이 화가 났던 남자는 사내의 손아귀에 잡힌 손목을 뿌리치며 짐짓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날선 감정을 숨기느라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졌다.

“무슨 일이시죠?”

“자, 일단 쓰레기봉투부터 받으시고 여기 명부에 사인이나 좀 해 주쇼.”

엉겁결에 쓰레기봉투뭉치를 받아든 남자는 뜨악한 눈길로 사내를 쳐다봤다. 나이 마흔은 훌쩍 넘긴 듯한 사내는 곱송그리고 앉아있는 틀거지가 휠체어 생활에 제법 이골이 난 품새였다. 색 바랜 야구모자 밑으로 삐죽이 보이는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했다. 튀어나온 광대뼈와 활처럼 휜 눈썹 밑의 눈자위가 대꾼했으나 빠른 하관에 말끝마다 앙다무는 입매 탓인지 고집스럽고 기억하기 쉬운 얼굴이었다.

“초면에 이런 과분한 친절은 부담스럽군요.”

바닥에 주질러앉아 생면부지의 사내를 올려다보는, 좀 어정쩡한 상황이 면구스러워진 남자는 쓰레기봉투뭉치를 받아든 채 말끝을 더듬거렸다. 사내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엉너리치며 명부와 볼펜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댁도 수급자시더만. 그 쓰레기봉투는 석 달에 한 번씩 동에서 수급자한테 지급하는 생계지원품인데, 마침 오늘이 지급일이고 나는 그저 심부름꾼이라오. 그보다….”

비로소 남자는 자신이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는 처지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사내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는 남자의 뒤쪽으로 어둠에 묻힌 집안을 힐끗거렸다.

“혼자 몸이오?”

사내의 느닷없는 질문에 남자는 잠시 혼돈스럽다. 내가 혼자인가? 아내는? 그리고 딸아이는 대체 어디에 있지? 남자의 아파트 생활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것은 아내였다. 하지만 온종일 집안에 처박혀 지내는 허수아비 같은 남자의 경제능력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아내는 끝내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당신은 이 반지하방에서 계속 살면 안돼요. 제 도움 없이는 집 밖으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잖아요. 언제까지 당신을 이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따지고 보면 아내의 주장은 옳았다. 현관 앞 야트막한 일곱 개의 계단은 남자에게는 바깥 세상과의 길을 가로막는 견고한 바리케이드였다. 계단 위에 놓인 휠체어까지, 아내의 걸음으로 고작 두 걸음에 불과한 거리가 남자에겐 수만리보다 멀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받은 재활훈련을 기억하고 양쪽 다리에 의족(義足)을 끼웠지만 계단 맨 아랫단조차 오르지 못한 채 고꾸라지고 말았다. 계단 밑에 처박힌 남자는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고른 바닥에 양탄자까지 깔아둔 병원의 재활치료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소설쓰기는 호구지책이 못되어서 세상을 배회하다 지금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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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vshinhwa@naver.com'
눈꽃*
5 months ago

소풍을 어디로 떠나는 걸까요 괜히 긴장되네요. 재미있게 읽고 있읍니다.

jhkim9171@daum.net'
김지혜
5 months ago

‘ 남자는 자신을 업은 청년에게 미안하면서도 문득 역한 노여움이 불쑥 치민다.’
‘계단 밑에 처박힌 남자는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고른 바닥에 양탄자까지 깔아둔 병원의 재활치료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위해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원치 않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남자의 입장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로소 남자는 자신이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는 처지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남자는 자신의 장애와 함께 ‘장애인’인 본인을 관리가 필요한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떨떠름한 반응을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삭막한 사막에 혼자 있는 것 같습니다. 볼수록 묘사가 사실같아서 먹먹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