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풍 4화

계반장이라는 사내는 남자의 대답을 짓수굿하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남자가 쓰레기봉투 지급확인 명부에 싸인을 하자 냉큼 명함 한 장 떨구고는 휠체어 브레이크를 풀었다.

– 뭐, 이런저런 말 못할 사연이야 다음에 천천히 듣기로 합시다. 우리 같은 떨거지 인생들이야 차고 넘치는 게 시간 아니겠소? 일단 이사오셨으니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마시고 요 앞 공원에라도 자주 다니면서 지내쇼. 여기 아파트엔 나나 형씨 같은 굴림의자 신세들 천지니까 부끄러울 일도 없을 테고, 같은 신세들끼리 자주 어울려 쓴 소주라도 나누다 보면 이놈의 빌어먹을 세상이나마 그럭저럭 맘 붙이고 살아볼 깜냥도 생길 테니.

<한국빈민장애인복지회 ○○시 지부장 계창수>라고 쓰인 사내의 명함에는 휠체어마크를 바탕으로 사내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사진 속의 계반장은 반듯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오래도록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사고 이후, 새벽마다 남자를 깨우는 것은 아내의 따뜻한 손길이 아니었다. 반지하 방의 조브장한 창문 틈새로 용케 비집고 들어온 손바닥만한 햇빛이거나, 격렬한 통증이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없는 텅 빈 공간 속에 홀로 남겨진 시간 내내 남자는 자신의 삶에서 모지락스럽게 으깨져 떨어져나간 것이 두 다리뿐만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꼈다. 반년 동안의 병원생활은 남자의 전 생애 사십 년을 통틀어 가장 고역스런 시간이었다.
인생의 팔십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은,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다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또 제법 재무구조 튼실한 기업의 사원으로 밥벌이를 하고 한 여자의 자궁을 빌려 자신을 닮은 피붙이를 생산하기까지 지극히 평범했던 한 생애를 말끔하게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혼돈스럽고 참혹했다.

남자가 퇴원해서 돌아간 곳은 예전에 살던 동네가 아니었다.

– 여긴 어디지?

– 이제부터 우리 집이예요.

남자는 더 이상 캐묻지 못했다. 덤프트럭 운전사는 합의 대신에 기꺼이 옥살이를 택했다는 아내의 말이 기억났던 것이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홉 살 딸아이는 겁 질린 눈을 두릿거리더니 안으려는 남자의 가슴을 기어이 떠밀어냈다. 커다란 골프백에 담아온 남자의 의족을 옮기던 아내는 그런 딸아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날 저녁, 작고 습한 반지하방에 세 식구가 모처럼 모인 식탁 앞에서 남자는 태연을 가장한 채 경쾌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 이제, 퇴원도 했으니까 회사에 복직신청을 해야겠어.
아내가 생선살을 발라내 딸아이의 숟가락에 얹어준 후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 그나마 사장님께서 당신 퇴직금이며 위로금까지 살뜰히 챙겨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세 식구 길바닥에 나앉을 뻔 했어요.

안방구석에 웅크리고 잠에 든 남자는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꿈은 길고 지루했다. 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을 남자는 근육 진 두 다리로 뛰고 있다.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용수철처럼 남자의 발목은 유연했고, 성큼 땅에 박히는 발꿈치는 단단한 나무뿌리였다. 달리는 남자를 스치듯 수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꿈속의 남자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아, 남자는 어느새 거대한 매머드로 변해 있었다. 온몸이 암갈색의 긴 털로 뒤덮었고 늘어진 코가 발끝에 자꾸 채였다. 멸종된 동물을 쫓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우, 괴성을 지르며 창과 화살을 날렸다. 그렇게 남자는 한 마리의 매머드가 되어 밤새 쫓겨 다녔다. 어스름한 새벽녘, 꿈에서 겨우 놓여난 남자는 발뒤꿈치가 저릿하고 바늘에 사정없이 찔리는 듯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 자꾸 발뒤꿈치가 아프네.

남자의 말에 아내는 놀란 눈으로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어이없다는 듯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이미 잘라내고 없는 다리에 통증이라니. 하기야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황당하고 불가해한 통증을 아내가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외양은 제법 멀쩡해 보였던 미니버스는 신호대기에 멈춰 설 때마다 부드등거리며 차체를 심하게 떨어댄다. 남자는 버스 창문을 열려고 애쓴다. 먼지 낀 차창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자를 업었던 청년이 사람들에게 팩소주와 새우깡 한 봉지씩을 나눠주다 차창 모서리를 주먹으로 두드리고는 가볍게 열어준다. 삐죽이 열린 차창 사이로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밀려든다.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뒷자석에서 엇춰, 하는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남자는 짐짓 모른 체 한다.

가족들과 어울려 소풍을 간 적이 있었던가? 남자는 팩소주를 빨대로 조금씩 마시며 차장 밖 풍경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리고는 예전의 자신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남자는 바깥으로만 외돌았던 듯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남자는 출근과 늦은 퇴근이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멀쩡한 사지(四肢)와 부지런한 성정 밖에 없었던 남자는, 서울은 아니더라도 근교에 서른 평 남짓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해서 가족들과 깨 볶듯 살아보는 소박한 희망을 기대하며 살았다.

희망이 이루어지기까지 남자의 걱정거리라고는 아토피로 고생하는 딸아이와 삼십 중반을 넘기면서 부쩍 붇기 시작한 자신의 배 둘레 정도였다. 휘트니센터 회원이 되고, 제법 값나가는 골프클럽 세트를 무리하면서까지 장만했던 남자는 과장으로 승진만 되면 일 년에 한 차례씩 사이판이나 푸켓 쯤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길 수도 있으리라고 아내와 딸아이에게 호기롭게 장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남자는 단 한 차례의 사고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 트럭 바퀴에 깔려 으깨어진 것은 남자의 두 무릎만이 아니었다. 남자의 모든 삶 자체였다. 이제 남자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무시로 찾아오는 환상통(幻想痛)과 앉은뱅이 눈높이로 변한, 너무도 낯선 세상뿐이었다.

발뒤꿈치에서 시작된 통증은 이내 종아리를 저몄다. 남자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떠안은 아내는 늦은 밤 들어와,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곁에 누워 소리 죽여 울었다. 울음 속에 꾸역꾸역 토해내는 아내의 숨결 속에 옅은 술 냄새가 났다. 그런 아내에게 남자는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통증에 대하여 시시콜콜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의 술 냄새를 맡으며 남자도 속울음 삼키는 날들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 환상통이란 말 그대로 없는 사지에, 그러니까 이미 절단되고 없어진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입니다. 딱히 맞춤한 치료법은 없는 형편이고 현재로썬 진통제처방 정도가 최선입니다. 정히 참기 힘드시면 신경차단주사요법도 한 방법입니다만.

통증을 견디다 못해 찾아간 병원의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진단을 내렸다. 의사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절단 환자의 78~85%에서 이런 통증을 경험한다고 하니 덮어놓고 의사만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대체 이런 황당한 통증의 원인이 뭐냐는 아내의 짜증 섞인 물음에 의사는 난감한 듯 흘러내린 금테안경만 연신 치켜 올릴 뿐이었다.

매일 밤 남자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를 한 움큼씩 먹고 잠들었다. 그러나 원인조차 알 수 없다는 빌어먹을 통증은 잠속까지 끈질기게 쫓아와 예리한 화살이 되어 남자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온종일 무덤 속처럼 눅진한 어둠에 잠긴 반지하방 구석에 틀어박혀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다리 통증과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됐다.

마지막 진통제를 먹은 날, 요금이 연체되었던 전화가 끊어졌다. 인터넷이 동시에 먹통이 되자 딸아이는 숙제를 할 수 없다며 칭얼거렸다.

– 이혼해요.
아내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남자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러한 상황이 닥치게 될 것임을 남자는 미리 눈치 채고 마음의 준비라도 했어야 했다.

– 그래야 당신도, 우리도 살아요!

[더인디고 The Indigo]

0 0 vote
Article Rating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소설쓰기는 호구지책이 못되어서 세상을 배회하다 지금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