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바리데기꽃 3화

장마

푸석하게 메마른 자드락길을 허위허위 걷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지칠 줄 몰랐다. 맨 뒤에 처진 어머니는 비지땀을 흘리며 잰걸음으로 쫓아오며 연신 할머니에게 투덜대는 소리가 들린다.

“나 몰래 산삼 뿌리를 삶아 드셨나 웬 노친네 걸음이 저리도 빠르나 몰라.”

연이가 햇볕이 뜨거운지 계속 칭얼거린다. 미란은 아이를 안은 팔이 자꾸 아래로 쳐지는 걸 느끼며 아슴하게 보이는 먼 산 중턱을 쳐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여름 하늘이 검푸른 산머리와 맞닿아 있다. 그 밑으로 난 황톳빛 자드락길은 마치 기찻길처럼 아슴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까무룩히 누워있다.

“무슨 굿당이 이렇게 산꼭대기에 있누, 요즘 무당들은 굿 손님 찾아 산을 다 내려왔다고 하더니만 것두 아닌 모양이네.”

어머니가 들고 있던 가제 손수건으로 땀으로 흥건해진 젖가슴께를 훑었다. 그리곤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눈가에 손차양을 만들어 길 끝에 시선을 던진다. 어머니의 시선이 멈춘 곳에 어느새 할머니가 서서 손짓을 하고 있는 게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곧 쫓아갈 테니 한 걸음 암질러 올라가소 고만.”

어머니가 소리치며 손사래를 치자 할머니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저 노친네, 아마 천년만년 살끼다. 팔순 고개 넘은 지가 언제라고 안죽 저래 정정하시니, 저 걸음 봐라. 꼭 죽은 네 막내 고모랑 똑같다.”

막내 고모. 다 늦은 나이에 동네 남세스럽다는 이유로 산달이 되어서야 겨우 배를 동여맨 강보를 푼 할머니는 입에 문 은수저 자루가 끊어지도록 이를 악물면서 소리 소문 없이 막내 고모를 낳았다고 했다. 그녀와 겨우 다섯 살 터울로 태어난 막내 고모는 배냇병신이었다. 곱사등에 어리보기였던 막내 고모는 취학연령이 되었어도 학교를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집안 어른들의 암묵적인 뜻에 따라 마당에 놓아먹이는 개나 암탉처럼 자랐다.

온종일 천방지축 산으로 들로 나돌다가 땅거미가 내리면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녀의 기억으로도 막내 고모의 입성이 말끔한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듯하다. 언제나 부뚜막에서 자고 나온 강아지 털처럼 부수수한 머리에 땟국에 전 옷을 입고 있었다. 미란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교실 앞 꽃밭에 허연 엉덩이를 까고 오줌을 누는 막내 고모를 발견하고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어린 그녀는 줄레줄레 따라오는 막내 고모를 향해 돌을 던졌다.

이 미친년아, 얼릉 집에 가.

돌팔매에 쫓겨 시무룩한 낯으로 서너 걸음 주춤대던 막내 고모는 그녀가 돌아서기가 무섭게 다시 앙감질을 하며 쫓아오곤 했다. 그런 막내 고모를 자신의 뱃속으로 낳았다는 사실에 한동안 시르죽은 듯 앓던 할머니는 함박눈이 사무치게 내리던 어느 날 새벽녘에 훌쩍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했다. 비록 영락한 반가(班家)의 아낙답게 카랑한 음성으로 어머니에게 아금받게 다질렀다.

비록 내 속으로 낳았지만 저 금수 같은 핏덩이를 거둘 수는 없다. 이목구비가 갖춰지기 전에 퍼뜩 내치도록 해라. 재 너머 저수지가 얼어붙었을 터이니 한 귀퉁이에 구멍을 내어 큰 돌을 달아 띄우면 될게다. 그런 후에 깊은 골 이름 없는 암자라도 찾아가 극락왕생하도록 연등이나 하나 켜두면 무슨 한이 남겠나. 옛일을 되짚던 어머니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수꿀해서 할머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며 엉두덜거렸다. 서릿발 같은 엄명이긴 했지만 너무 무서운 일이라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에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자식을 유기(遺棄) 하면서까지 한사코 지키려고 애썼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반가 출신이라는 알량한 선민의식이었던가, 아니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일찌감치 죽어 없어지는 게 서로를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했던 것일까? 그 속셈을 불구 아이의 어미가 된 지금에 와서야 짐작할 수 있을 것아 미란은 저승꽃이 핀 노인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었다. 그런데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후에 벌어졌던 것이다. 막내 고모가 할머니가 미리 정했던 대로 자신의 무덤길을 제 발로 찾아갔던 것이다.

미란이 열 살 되던 해 장마는 지루하게 길었다. 온종일 국수 가락 굵기만 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세상이 온통 물 천지였다. 밤낮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학교는 임시 휴교령을 내렸고, 동네 청년들은 얼룩무늬 제복을 입고 물 웅덩이진 진창길을 철벙거리며 뛰어다녔다. 재 너머 있는 뚝방이 곧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뒤숭숭한 소문이 온 동네를 휘돌았다. 그녀는 눅눅해진 구들을 말리느라고 아궁이를 지핀 방안에 배를 깔고 누워 숙제를 하고 있었다. 머리맡에는 어머니가 쪄서 들여놔 준 옥수수가 담긴 소쿠리가 있었고, 그 옆으로 사기요강이 있었다. 그때 막내 고모가 히물쩍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딜 쏘다니다 왔는지 엉클어진 머리카락은 물론 입고 있는 광목 치맛단이 툼벙 젖어있었다.

미… 미란아, 귀, 귀경 가자.

방바닥에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들어온 막내 고모가 그녀의 머리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막내 고모의 젖은 옷에서는 들큰한 쉰내가 풍겼다.

무슨 구경?

미란이 막내 고모를 밀쳐내고 코를 싸쥔 채 사뭇 사납게 흘겨보며 되물었다.

무… 물 귀경, 저기 저기에 물, 엄청 많다. 귀경 가자.

막내 고모가 허공에 연신 손가락질을 하며 흥분된 듯 더듬거렸다.

피, 난 또 뭐라고 저수지 가자고? 비가 이렇게 오는데 거긴 뭐하러 가? 난 싫어. 가고 싶음 고모, 너 혼자서 갔다 와.

막내 고모의 더러운 손이 옥수수가 담긴 소쿠리 쪽으로 옮겨졌다. 미란이 잽싸게 소쿠리를 나꿔채자 막내 고모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손을 움츠렸다.

얼릉 나가, 나 공부해야 돼. 너나 가서 물구경하다 물귀신에 잡혀나 가라.

그녀가 퉁박을 놓자, 사뭇 낙담한 듯 삐주름히 입술을 빼문 막내 고모는 문지방을 타고 앉아 비비적대고 있었다. 귀찮은 듯 미란이 깨작이며 파먹다 남은 옥수수를 던져주자 막내 고모는 냉큼 받아서는 해낙낙거리며 부리나케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꼴이 어린 마음에도 하도 어이가 없어 미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런 등신.

그렇게 나간 막내 고모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사람 어느 누구도 막내 고모의 실종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그저 이 장대비를 맞으며 귀신처럼 쏘다니다가 지치면 들어오겠지 하는 눈치였다.

다음날 이른 새벽녘이었다. 대문이 꽈당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예비군복을 입은 동네 청년 하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뛰어들어 왔다.

아재, 어딨능교? 크… 큰일 났습니더. 퍼뜩 나와봇씨요.

청년의 숨넘어갈 듯한 호들갑에 안방에서 아버지가 뛰쳐나왔다. 아버지 뒤로 어느새 정갈하게 빗어 넘긴 쪽머리를 하고 할머니가 마뜩찮은 얼굴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새벽 댓바람부터 웬 호들갑인가?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던 어머니가 사기대접을 든 채 무슨 일인가 싶은 낯으로 비죽 고개를 내밀었다. 청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시방 저수지에… 이 집 막내가… 죽어 떠올랐단 말요.

파삭, 어머니 손에 들려있던 사기대접이 떨어져 박살이 났다. 순간, 할머니가 버선발인 채 종종걸음으로 대문을 나서는 뒷모습이 미란의 눈에 박혀왔다. 그 뒤를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쫓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소설쓰기는 호구지책이 못되어서 세상을 배회하다 지금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