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누워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큐멘터리 Un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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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유튜브 화면 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NGoK56TdNQY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만성피로증후군을 아시나요?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은 자가면역체계 질환으로 첨단과학의 시대라 일컫는 이 시대에도 아직 미지의 병이다. 자주 사용되는 말이라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소한 이 병명은 우리로 하여금 ‘늘 피곤한 병인가?’ 하는 단순한 추측을 하게 하고 또 모르는 만큼 오해해서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편견’만으로도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아직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다른 자가면역질환들이 그러하듯 우리 면역체계 작동 시스템의 심각한 오류로 외부의 적들과 싸우지 못하고 오히려 내부를 공격하거나 세포가 분열하면서 생명 에너지를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발생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알 수 없는 오류로 배터리를 아무리 충전해도 100%가 아니라 20%밖에 충전되지 않고 곧 방전돼 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 우리 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극심한 통증과 그에 수반되는 장애로 인해 삶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일상이 망가지는 파괴적인 질병임에도 일반적인 편견으로 인해 조롱당하거나 환자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중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이야기의 시작

남편과 함께 하버드를 졸업하고 전도유망한 미래에 설레던 제니퍼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 병이 찾아왔다. 마치 거짓말처럼 온몸을 움직일 수 없고 누군가 일부러 멈춘 것처럼 그녀의 일상이 정지돼 버렸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엄청난 통증으로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지는데도 병원에서는 어떤 병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병원을 전전한 끝에 그녀는 ‘만성피로증후군’이란 생소한 병명을 듣게 되고 세상에 자기만 앓고 있는 것만 같은 그 낯선 병을 미국에서만 100만 명 이상, 전 세계적으로는 1,7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700만이 넘는 환자가 존재함에도 왜 이 병은 드러나지 않았을까. 거기서부터 그녀의 의문이 시작되었고 그저 무기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다는 오기가,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이 다큐멘터리 ‘Unrest’를 탄생시켰다.

이 다큐멘터리는 감독이자 주인공인 제니퍼 브리(Jennifer Brea)와 그녀가 만난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의 눈물겨운 투쟁기다. 병과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과도 싸우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투병이 아니라 투쟁기라 썼다. 혼자 벌이는 사투인 줄 알았는데 세상 곳곳의 어두운 방에 갇혀 소리 없이 이 병과 싸우는 환자들을 인터넷을 통해 만나면서 제니퍼는 동병상련의 위로와 동지애로 함께 싸울 힘을 얻는다.

병에 대한 세상의 오해들

어찌 보면 이 병은 거짓말 같기도 하고 꾀병처럼 보이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도 남편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갑자기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얼어붙은 채 통증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또 작은 소리나 빛 등 모든 감각에 예민해져서 침실에 암막을 거둘 수가 없다. 생일선물을 푸는 설렘의 순간에도 포장지 뜯는 그 소리조차 견딜 수 없어 귀를 막아야 한다. 보통 사람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소리나 빛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고 이를 이해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에겐 환자들의 이런 반응이 그저 예민한 히스테리로 여겨진다는 것이 환자들의 또 다른 고통이다.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요? 누군 안 피곤한가요?”

이 병명이 세상에 처음 소개됐을 때 한 유명한 코미디언이 무대에 나와 이렇게 비아냥거려서 환자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만성피로증후군’이란 병명이 붙게 된 것도 겨우 1988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때까지 이 병은 수많은 환자가 존재함에도 병이 아니었고 병으로 연구되지도 않았다.

의사들조차도 아직 잘 모른다. 병으로 인정받지 못한 병을 앓는다는 사실은 그 병을 앓는 수많은 환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니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질 리 없고 있지도 않은 병을 앓으니 꾀병을 앓는 꼴이었다.

그래서 이 병이 연구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 병을 앓은 수많은 환자는 히스테리 환자로 정신병 환자 수용소에 갇히거나 평생 그런 수용소에 갇힌 채 짐승처럼 고통에 울부짖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병이 연구되지 못한 이유

불행히도 이 병을 앓는 무려 85%의 환자는 여성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여성이 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했지만, 주류인 남성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이 병은 그저 예민하고 나약한 여성의 신경쇠약이나 히스테리로 간주할 뿐 연구할 필요성조차 없는 질환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 병은 오랫동안 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도 이 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고 망가진 삶으로 인해 대부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절벽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암과 같은 대중적인 질병들에 밀려 턱없이 적은 금액만 형식적으로 지원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최근 2013년에도 이 질환을 앓는 덴마크의 한 여성은 어느 날 아침 가족들 앞에서 강제로 경찰과 구급대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덴마크에서는 여전히 이 병이 정신적인 원인에 의한 질병으로 취급되어 정신병원에 수용 격리해 치료받도록 강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제니퍼와 그 환우들은 그런 세상과 싸움을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이 병을 연구하는 연구진들을 만나 화상 인터뷰를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병을 알리고 적극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강제 입원당한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낼 것과 인권침해 방지를 촉구하고… 그렇게 누워서 숨죽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시 일깨우고 여전히 살아 있음을 세상에 외치는 과정들이 이 다큐멘터리에 담겨 있다.

여전히 살아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아픈 사람들에게 냉혹한 이 사회를 생각했다. 세상에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어!, 안 피곤한 사람이 어디 있어!… 아픈 사람들에 대한 온갖 비아냥이 쏟아지고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이유로 늘 잉여 인간이나 쓸모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딱히 그런 차별과 냉대가 분명하게 입증되지도 않는 사각지대에 놓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아프면 늘 미안해야 하고 조용히 숨죽여 살아야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는 늘 소수의 이야기로, 비주류의 이야기로 묻혀 왔고 제대로 세상 밖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다. 그런 속에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저)’라고 아픈 이들의 목소리를 당당히 대변하는 책과 연극이 세상에 울림을 준 것이 반갑고 이렇게 누워서 싸우는 이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어 기쁘다.

여기 아직 살아있다!

세상의 작은 소리가 랜선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더 크게 증폭되고 그 소리가 작은 움직임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니퍼 그녀의 목소리가 더 반갑다. [더인디고 THE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승인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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