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_다큐멘터리 ‘우린 아스퍼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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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스퍼거인
우린 아스퍼거인/ⓒ유튜브 화면 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bnbjwmLMuJY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너 반에서 몇 등이나 하니?”,“넌 무슨 과목을 제일 잘해?”…

내가 어릴 적 오랜만에 본 어른들이 첫 대면에 자주 건네던 질문들이다. 생각해 보면 그 질문들 수준이란 게 참 센스도 없고 성의도 없는 그저 말 수 하나 더 늘리기나 다름없는 아무 말 대잔치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그러고는 늘 약속이나 한 듯이 마지막엔 “넌 꿈이 뭐니?”,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이런 장래 희망을 묻는 말로 끝이 나곤 했다.

그때 내 대답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막연하고 막막했던 기분은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화가요, 약사요, 작가요… 대충 그런 대답이었을 텐데 굳이 물어 놓고 어른들의 반응은 무심하고 건성이었던 것도 선명하다. 예전과 별다르지 않은 그런 질문에 대한 요즘 아이들의 대답은 건물주나 연예인이란다. 아마 요즘 아이들에게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똑같이 막연하고 막막한 질문인가 보다.

왜 그런 질문이 그렇게도 막연하고 어려운 질문처럼 여겨졌을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시대와 시류에 걸맞은 사람으로 살기를 알게 모르게 강요당하며 사느라 정작 자기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알아차리는 일에는 소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된 후에도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도 자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가장 예민하게 키워야 하는 능력은 자기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 ‘우린 아스퍼거인’에 등장하는 4명은 바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모두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노아, 이튼, 잭, 뉴 마이클 네 사람은 모두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이다. 그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어린이 캠프에서 만나 서로의 유머 감각을 알아차렸고 함께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의기투합했다. ‘우린 아스퍼거인’이란 팀으로 함께하며 코미디 원고를 쓰고 공연 활동을 했으며 이 다큐에서는 팀으로서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4명의 발달장애인, 그들이 코미디 공연을 준비한다. 자, 그럼 우리가 늘 보아오던 인간극장 같은 휴먼다큐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까? 짐작해 보면 대충, 네 사람이 성장해 오기까지 장애를 가지고 가족과 사회 속에서 겪어 왔던 과정을 최대한 힘겹게 그릴 것이다.

그들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힘겨운 과정, 희생 이야기, 슬펐던 이야기, 그리고 네 사람이 함께 공연을 준비하며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들, “그럼에도 우와~ 대단해요!”, “장애를 극복하고 해냈어요!”, “ 누군가의 희망이고 길이 되어 줄 거예요!” 와 같은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로 그려질 것을 지금까지 그런 프로그램들을 기억해 보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상과 기대를 하고 이 다큐를 보면 어쩌면 매우 싱겁고 건조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세상에 얼마나 힘들었어?”라고 탄식할만한 장면 하나 없고 “저러니 뭐가 되겠어?” 걱정할만한 장면도 없이 그저 네 사람의 덤덤한 자기 이야기와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시간순으로 이어져서 기존에 보아오던 휴먼다큐 식의 다큐멘터리를 기대한 사람에겐 뭔가 아주 맹숭맹숭하고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4명 중 한 사람인 뉴 마이클은 아주 예민하여 팀의 리더인 노아와 의견 충돌도 잦다. 부모님이나 가족이 집 안에 있으면 공연 연습도 신경 쓰여서 못할 정도로 초예민남이고 멤버들은 그런 뉴 마이클을 이해하면서도 그렇게까지 예민하고 짜증스러워하는 뉴 마이클을 다 공감하지는 못한다. 짜증이 극에 달한 뉴 마이클이 연습하다 중간에 바깥으로 나가 버리기도 하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의 면면을 너무 잘 이해하고 감정이 격해질 땐 기다릴 줄도 안다. 그래서 갈등하지만 갈등하지 않는다.

자, 이런 모습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특별한 발달장애인들만의 이야기로 느껴지는가? 그냥 보통 사람이라 일컬어지는 비장애인들도 다들 그렇게 산다. 그게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그려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들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부모님 앞에서는 조곤조곤 잘 이야기하지 않는 아들에 대하여, 가족이 공연장에 나타나면 공연을 할 수 없다는 아들에 대하여 특별히 속상해하거나 난감해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 아들은 그런 아이라고 있는 그대로 이해할 뿐이다.

“자폐인들도 웃길 수 있다는 걸 알리려는 게 핵심 아닌가요?”

사심(?)을 가지고 카메라를 든 이가 팀의 리더인 노아에게 이렇게 묻자 노아가 아주 단호하게 그건 핵심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네 사람이 함께하는 이유는 자기들이 웃기고 이 일을 좋아하고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저흰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게 아녜요. 저희의 목적은 저희가 즐겁기 위해 웃기는 거예요. 사람들도 즐겁다면 다행이고요. 그렇지 않다면 애석한 거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이보다 더 명료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남들이 웃어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저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노아의 이 명쾌한 답이 이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이 아닐까.

이제는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말자!

노아의 방식대로 말하면 이제는 ‘우리도 할 수 있다!’ 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언제까지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다수를 따라잡기만 할 것인가.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 위해, 마치 거대한 산을 넘듯이 신기록에 도전하는 선수처럼 그렇게 장애의 장벽을 넘어서는 모습만 보여주려다 정작 스스로 기쁘고 즐겁지 않은 일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은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아는 능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할 수 있다’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적극적인 선언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할 수 있고 해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고, 실패해도 두렵지 않은 일을 하려면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자신을 비롯한 타인을 다수 안의 평균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개별적인 ‘한 사람’으로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이다.

노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자폐 교수인 스티븐 소아의 말을 인용한다.
‘한 명의 자폐인을 만난 것은 한 명의 자폐인을 만난 것이다.’라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말 아닐까.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저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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