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너의 목소리를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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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를 보여줘 방송 장면
ⓒ유튜브 캡처
  • ‘장애’ 프레임에 갇힌 모순을 깨고 너의 목소리를 보여줘

음치는 괴로워!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삼총사가 된 친구들이 있었다. 한 친구는 나를 업고 또 한 친구는 ‘가방 들어주는’ 친구로 우린 완벽한 조합이었다. 한 친구가 나를 업으면 나머지 한 친구는 나와 나를 업은 친구의 가방에 자기 가방까지 3개의 가방을 들고 늘 하굣길을 함께 했다.

사진_차미경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저녁을 먹기 전까지, 아니 어떨 때는 저녁을 먹고도 한참 늦은 밤까지 잔뜩 책을 펼쳐 놓고 그날의 숙제를 함께 하곤 했는데 말이 숙제지 글자 한두 줄 쓰고 수다 열 마디 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숙제만큼이나 우리가 매일매일 치러야 하는 중요한 의식이 있었으니, 가방 들어주는 그 친구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치명적인 의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독히도 음치였던 그 애의 노래는 말이 노래지, 사실 그게 노래인지조차도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아주 기괴한 소리에 가까웠다.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그 시절 어린이 동요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음치였던 그 친구의 최대 목표가 바로 거기에 나가는 것. 그래서 그 예선에 출전하기 위해 그 친구는 날마다 우리를 앞에 앉혀 두고 예의 그 기괴한 소리를 들려주며 세심한 심사평을 반강제로 종용하곤 했다.

매일 거르지 않는 그 의식은 우리에겐 정말이지 괴로움 그 자체… 제목만 달랐지 우리 귀엔 다 똑같이 들리는 노래를 친구는 어쩌면 그리도 매번 다르게 심취해 부를 수 있는지 새삼 놀랍기도 하거니와 똑같은 노래 중 한 곡을 선곡해야 하는 압박감은 늘 우리를 난감하게 했다. 음정, 박자 그 어느 것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노래를 반복해 들어야만 하는 일은 꽤나 큰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지금 내게 인내심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다 그때 그 친구의 노래를 들으며 길러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치를 매력 있게… 너의 목소리가 보여!

한 종편채널의 쇼오락 프로그램인 ‘너의 목소리가 보여’(이하 ‘너목보’)는 노래 실력자와 음치가 함께 출연해 판정단들에게 음치와 실력자를 알아맞히도록 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판정단 선택이 끝날 때까지 출연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지 않고, 노래하는 모습도 립싱크로만 보여 준다. 또 출연자마다 실력자일 경우와 음치일 경우의 이름과 직업도 다 다르게 설정돼 있어서 판정단은 오로지 ‘보이는’ 모습으로만 그가 실력자인지 음치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벌써 시즌7까지 이어지며 방송되고 있는 꽤 장수 프로그램이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봤을 때 내 음치 친구와 함께 괴로웠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한참을 웃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돌고래 옹알이처럼 노래하는 음치들을 보고 있자면 음정, 박자 아랑곳하지 않는 그 자유로움과 노래에 대한 열정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음치였던 내 친구도 그렇게 매력적인 친구였구나 돌이켜 보게도 된다.

‘너목보’ 최고의 장점은 노래 잘하는 사람만 조명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래를 못하는 지독한 ‘음치’도 노래 잘하는 실력자들과 나란히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고, 노래를 못하고도 충분히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는다. 누가 실력자이고 누가 음치인지 판정단과 시청자들을 속이기 위해 동원하는 제작진들의 온갖 교묘한 속임수는 매번 실패하지 않고 잘 통한다. 결국 ‘보이는 것’에 속아 넘어갔다는 것을 아는 순간, 매번 깨닫게 되는 것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느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무심히 놓쳐버리는가 하는 것이다. ‘선입견 깨뜨리기’, 자신도 모르게 도사리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지적당하는 일이지만 시청자는 그것을 기분 좋게 긍정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대부분의 생각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소위 ‘정상성’에서 벗어난 ‘비정상’의 몸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이상하고, 힘들고,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 여전히 이런 선입견과 편견에 갇혀 있는 것이 바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보이는’ 모습만 보면 그렇게 보일지 모르고, 그렇게 보이는 대로 인식하고 믿는 사람들이 보여 주고 만들어내는 모습은 그래서 더 왜곡될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음치는 창피한 것이고 예전의 내가 그랬듯 음치의 노래는 듣기 괴로운 것이라고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음치도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방송처럼 장애인도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방송이 있다면 어떨까?

인식을 고정하는 딱지 떼어버리기

‘국내 최초 배리어프리 토크쇼’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출발했던 EBS의 ‘별일 없이 산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출연자들이 함께 출연해 다양한 주제의 일상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토크 프로그램이었다. 별일 없이 사는 서로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지향해 보자는 의도겠는데 기대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말 그대로 별일 없이 끝나 버렸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미디어비평>(양안선PD, 2020.2월10일자)은 “사람은 생각의 기본 틀, 곧 ‘프레임’에 따라 인식한다. 기존 프레임을 부정할수록 프레임은 더욱 강력해진다. 프레임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즉 새로운 프레임이 등장해야 한다”는 조지 레이코프의 말을 인용하며 ’장애‘라는 프레임을 잊어버리자면서도 오히려 ’장애‘ 프레임에 갇혀 버린 모순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에 특별함을 부여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려면 ‘배리어프리 토크쇼’라는 간판도 내 걸지 말고 ‘배리어프리’가 아닌 토크쇼에 장애를 가진 출연자가 나오는 방식이 적합하다고도 덧붙였다.

이러한 지적처럼 ‘베리어프리’라든가 ‘장애와 비장애가 더불어 함께’와 같이 인식을 고정시키는 착한 슬로건(딱지)을 과감히 떼어 버렸더라면 오히려 ‘장애’가 특별하지 않은 자유롭고 유연한 프로그램이 됐을지 모른다. ‘너목보’가 굳이 ‘음치와 함께 하는’이란 말을 내세우거나 음치를 특별하게 부각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청자들로 하여금 음치를 재해석하도록 기여한 것처럼 말이다.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로 보여 주기

김원영은 그의 저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사진’과 ‘초상화’를 예로 들어 장애가 매력으로 인식될 수 있는 가능성과 조건을 설명했다. ‘사진’은 하나의 순간을 드러내고 그 순간 개인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지만 ‘초상화’는 긴 시간에 걸쳐 한 사람의 모습을 담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콩깍지란 오랜 시간 섬세하게 분별한 그 사람의 미적 요소들이 완전하게 통합된, 그 사람의 초상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말함’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장애인을 한 컷의 사진처럼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보면 휠체어에 앉은 구부정한 모습의 불쌍한 장애인에 불과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한 상호작용을 통해 바라보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 구부정함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정치인의 선거 홍보용으로 벌거벗긴 채 목욕을 당하는 장애인, 침받이를 하고 떠먹여 주는 밥을 받아 먹고 있는 장애인, 짐처럼 업혀서 계단을 오르는 장애인… 이런 한 컷의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그 느낌을 상상해 보면 그 단편적인 모습들이 우리에게 어떤 인식을 남기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너목보’가 음치를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를 못해도’ 오히려 ‘노래를 못해서’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음치를 ‘사진’처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초상화’로 보이도록 하기 때문은 아닐까? 음치와 실력자를 구분하지 않고 각자가 가진 매력과 개인이 가진 독특한 스토리를 먼저 충분히 보여 주고 시청자들이 한껏 그들에게 흥미와 매력을 느끼도록 한 후에야 노래 실력을 공개하는… 그리하여 이미 그를 그 자체로 인식한 시청자들에겐 그가 실력자든 음치든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그가 특별해 보이지 않고 친근하고 매력 있는 존재로 느껴지게 하려면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TV에서 영화에서… 어디에서든 많이 보고 만나는 일상이 쌓여야 한다. 그래야만 ‘장애’만 부각된 스냅사진이 아니라 세밀한 아름다움의 통합체로서의 초상화로 장애인을 만날 수 있다. ‘너목보’가 보여 주듯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속지 않고 제대로 된 진면목을 인식하려면 겉으로 드러난 목소리 너머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니, 보아야 한다. 음치 말고 ‘장애’에 대해서도 그렇게 선입견을 깨뜨리는 문화적 시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장애, 너의 목소리를 보여줘!!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승인
알림
6635acd20b31f@exam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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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essr98@nate.com'
서경준
4 years ago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세요

차미경
4 years ago
Reply to  서경준

네, 고맙습니다~^^

kimwoohee69@naver.com'
김우희
4 years ago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유금순
4 years ago

공감되는 글입니다

jina408@nate.com'
문애준
4 years ago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없애는 그런 기회가 될듯하네요~샘, 응원합니다.

lovegir@nate.com'
안희쩡
4 years ago

가방 들어주는~~ 공감되는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jaea2000@hanmail.net'
임현주
4 years ago

재밌어요.

pyh214@naver.com'
박김영희
4 years ago
Reply to  임현주

문화로 만나는 장애인 참 좋습니다

psaboo71@hanmail.net'
순둥이
4 years ago

음치 친구의 목소리를 매번 듣고 인내심이 키워 줬다는 표현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어릴 때의 추억이 미소짓게 합니다. 넉넉한 친구들이 있어서 좋은 어린 시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