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 토크]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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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 줘> 메인 예고편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 차진우 VS 사카키 코오지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정우성의 감성 로맨스로 화제를 모은 ENA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 줘’는 1995년 일본 TBC의 동명 드라마가 그 원작이다. 배우 겸 감독, 그리고 제작자이기도 한 정우성이 이 드라마에 매료되어 그 판권을 샀다고 한다. 13년 전 그 판권을 샀지만 바로 드라마화 되지 못하고 긴 우여곡절 끝에 우리 곁에 온 드라마. 1995년과 2024년, 28년이란 긴 시간만큼 그 안에 녹아든 시대상이나 장애에 대한 인식에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작과 리메이크작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후 원작은 원작으로, 리메이크작은 후작으로 표기)

원작의 주인공 사카키 코오지(도요카와 에츠지)의 연인은 미즈노 히로코(토키와 타카코)이고 후작의 주인공 차진우(정우성)의 연인은 정모은(신현빈)이다. 1995년의 코오지와 2024년의 차진우는 스타일을 비롯해 여러 가지 설정이 닮았으나 왜일까? 똑같이 긴 머리에 헐렁한 셔츠와 바지를 입은 편안한 스타일인데도 차진우가 풍기는 분위기는 훨씬 차원이 다르다. 이건 어쩌면 정우성이란 배우가 가진 힘인지도. 히로코와 정모은 역시 배우 지망생이란 점에선 원작과 후작이 비슷하지만 두 사람의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히로코는 일본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여주인공 캐릭터로 한없이 해맑고 쾌활하고 천진난만한 허당에 귀여운데 생각과 행동이 진중하지 못하고 나중엔 많이 답답해지는 소위 고구마 캐릭터다. 반면에 정모은은 차분하고 진중하고 배려 깊고 단단하다.

이야기의 구성 역시 후작이 훨씬 더 탄탄하고 입체적이다. 원작이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의 과정을 단조롭고 다소 뻔하게 그렸다면 후작은 드라마틱한 요소와 재미가 더해졌다. 원작의 히로코에겐 극단 선배 켄짱이 있지만 후작의 정모은에겐 켄짱의 변형인 음악 하는 남사친 윤조한과 절친인 지유를 비롯해 부모님과 동생까지 등장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게다가 차진우의 농인 친구 부부 기현과 소희,차진우의 그림 수업에 참여하는 농인 학생들, 그리고 사소한 오해로 만났지만 나중에 차진우의 제자가 되는 청인 학생 태호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원작과 다른 입체적 이야기를 완성한다.

후작은 장애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장면들을 원작에서 덜어냈다. 원작에서 코오지의 엄마는 아들의 장애 때문에 아들을 버리는 엄마다. 나중에 아들 앞에 다시 나타나서도 “귀가 저 모양이니 그림을 잘 그릴지 걱정”이라며 히로코에게 걱정을 털어놓는 엄마인데 후작에서의 엄마는 다르게 그려진다. 그리고 코오지가 히로코와 헤어지게 되는 오해와 갈등의 요인인 코오지의 전 여친 히카루. 그녀가 코오지와 헤어진 이유는 코오지의 장애를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그녀의 부모님 때문. 이렇게 원작에서의 갈등은 코오지의 장애가 주로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그러나 후작은 차진우와 전 여친 송서경이 헤어지는 이유를 훨씬 더 극적으로 그렸는데(물론 ‘장애’가 이유인 것을 결국 돌려 말하는 것이지만) 들리지 않기 때문에 여친을 위험에서 구해내지 못한 차진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스토킹 피해자인 송서경의 트라우마가 너무 가볍게 그려진 점은 매우 아쉽다. 결국 송서경으로 인해 빚어진 오해와 장애로 겪는 소통의 문제 때문에 차진우와 정모은이 헤어지게 되는 것은 원작과 다르지 않다.(물론 나중엔 다시 재회하지만)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서사로 할 때 ‘장애’는 대부분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그려진다. 원작처럼 장애 때문에 두 남녀의 결혼을 반대한다든지(부모 때문에 헤어지는 코오지와 히카루) 가족이 너무 많은 개입을 하는(코오지의 여동생 시오리가 코오지와 히로코를 방해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시오리가 오빠인 코오지를 사랑해 히로코를 질투하는 것은 거의 막장 수준) 모습을 후작에서는 많이 덜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남녀 주인공이 헤어지는 이유를 너무 ‘장애’에 엮는 억지스러움이 있다.

“당신의 손을, 당신의 담배 냄새를, 당신의 목소리를 생각해낼 수 없어요. 당신의 목소리를 생각해낸다면 난 좀 덜 쓸쓸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원작에서 히로코는 코오지에게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굳이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너무 억지스러웠다. 심지어 기차역 우연한 재회 장면에서는 다급한 코오지가 목청껏 히로코를 부르는 장면도 등장한다. 후작에선 이런 요소도 걷어냈어야 했는데 후작의 모은 역시도 차진우의 목소리를 갈구한다. 청각장애인에게 목소리를 강요하는 장면이라니. 마치 휠체어 탄 연인에게 일어서서 사랑을 말하지 않으면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사랑조차도 그 관계에 있어 ‘정상성’을 상정해 놓고 복잡다단한 여러 갈등의 이유를 모두 정상성에 미치지 못해 생기는 것으로 해석해 그리는 것은 억지스러울 뿐만 아니라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원작에서 코오지와 히로코가 헤어진 이유는 코오지가 들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둘 사이에 일어난 오해에 대해 히로코가 끝까지 코오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한 모습은 후작의 모은에게서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작엔 말하지 않고도 깊게 전해지는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아서 원작을 넘어서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보이고 만지고 들리는 것을 너머 전 존재로 느끼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이 제목은 바로 그런 의미로서의 역설이 아닐까.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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