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휴대폰 계약… ‘비양심적 거래’엔 취소권 인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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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화면 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Oc_szmq1FfE
  • 성년후견인 취소권, 인권침해 요소에도 특정후견엔 적용 불가
  • 당사자 ‘취소권’ 인정하는 발달장애인법 8조 개정 필요
  • 판단력 저하 입증 등 개정 법안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많아

[더인디고 조성민] 발달장애인 등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2013년부터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제도 자체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기본원칙에 위배된다는 점 이외에도 계약상 취소권 등 제도적 허점이 드러났다.

특히 특정후견을 받는 장애인이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을 받는 장애인보다 계약상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정후견제도는 행위능력을 제한하지 않고 후견인의 권한 범위와 기간 등을 한정함으로써, 발달장애인 등 피후견인의 인권 침해의 가능성이 적다는 평가다. 하지만 행위능력 제한 없이 사회생활의 보장은 역으로 악질 상행위에 의한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오전 한국장애인부모회(부모회)와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발달장애인의 계약상 피해와 법제도적 개선방안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경제적 피해사례를 구제하기 위해 후견인의 동의 없이 이뤄진 법률행위를 후견인이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취소권’과 대안 등에 대한 논의가 핵심 쟁점이었다.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윤태영 교수는 “후견인의 취소권은 장애 정도가 심한 중증을 대상으로 하는 성년후견과 한정후견에서만 보장될 뿐 거래활동이 상대적으로 높은 피특정후견인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서 “간단히 취소를 하면 되는 상황에서도 피특정후견인은 경제적 피해를 당했을 때 이조차 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성인의 계약 행위 등에 대해 동의 없이 후견인이 취소한다는 것 자체가 장애인권리협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 취소권 자체가 딜레마인만큼 다른 방법으로 피특정후견인을 법적 피해로부터 보호할 자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지난해 10월 부모회 등과 관련된 피특정후견인 등 229명을 대상으로 ▲휴대폰계약 ▲금융거래 ▲보험거래 등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도 제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등은 자신에게 휴대폰이 중요한 것임에도 어려움이나 피해가 많아 만족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10명 중 3명은 휴대폰 개통을 잘못된 판단으로 체결했다. 또 10명 중 4명은 판매직원의 권유로 자신에게 적절치 않은 요금제나 결합상품 등에 가입, 높은 요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특정후견인의 휴대폰 계약, 금융거래, 보험거래 및 계약 일반에 대한 중요도-만족도 분석 결과/출처: 자료집
피특정후견인의 휴대폰 계약, 금융거래, 보험거래 및 계약 일반에 대한 중요도-만족도 분석 결과/출처: 자료집

윤 교수는 “이들이 취소를 하려고 해도 대리점이나 기업에서는 ‘개통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식”이라며, “더 주목할 것은 피특정후견인 중에서도 장애 정도가 약한 장애인의 피해 비율이 높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 교수는 “피특정후견인에게 무조건 취소권을 인정하여 제한능력자로 낙인찍고 거래안전까지 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비양심적 거래 상대방만 규율한다면 장애인권리협약 정신에도 부합할 수 있다”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 제8조 자기결정권의 보장 조항 안에 제8조 2의 ‘발달장애인의 법률행위 보장’ 내용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신설 조항 1항은 ‘상대방이 발달장애인의 판단력 저하를 이용하여 계약이 체결된 경우 발달장애인에게 취소권을 보장’함으로써, 악질 상행위 등의 계약에 대해 보호하되 후견인의 취소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악질 상행위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입증은 계약 상대방에게 지도록 했다.

반면 2항에서는 ‘일용품의 구입 등 일상생활에 필요하고 그 대가가 과도하지 아니한 법률행위’와 영국 사례처럼 후견인이 아니더라도 보호자의 ‘조언(suggest)’을 받아 이루어진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거래안전을 도모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우려 등을 표시했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임정하 교수는 “법원의 후견심판 없이도 발달장애인에게 취소권을 인정하는 것은 민법의 행위능력 체계를 벗어날 수 있는 데다 상대방이 ‘판단능력 저하의 이용’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오히려 이러한 입증을 용이하게 하면 사실상 발달장애인을 제한능력자로 인정하게 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 “판단능력 저하는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노령층 등에도 취소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판단력 저하’에 대해서는 법무법인 융평 백주선 변호사도 요건이 모호하기 때문에 이를 대통령령 등에서 보다 세부적으로 제시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 교수의 피성년후견인 접근 관점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명노연 변호사는 실무 경험을 들어 “계약상 피해의 원인은 장애정도라기보다는 사회생활이 활발한 피특정후견인이 다수를 차지하는데다 이는 그만큼 피해에 노출될 기회도 많기 때문”이라며 “특히 공공후견지원사업은 장애정도와 무관하게 최중증 장애인도 특정후견을 받게 되는 만큼 이러한 획일적인 정책이 피해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윤 교수의 법 개정에 따르면 경계성 등 미등록 발달장애인은 제외되는데 그렇다고 이들까지 포함하면 다른 장애인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상대방이 판단 능력 저하에 대한 입증 책임은 민법상 취소제도의 예외이자 특례조항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제시했다.

한편 토론회를 주최한 부모회 이길준 사무처장은 통화에서 “일부 민법상 취소권 등으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피특정후견인은 물론이고 후견제도를 받지 않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계약상 피해를 입었을 때, 소송으로도 좀처럼 구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민법보다는 발달장애인법 개정이 현실적이라고 판단, 이번 토론회에서 처음 제안한 만큼 앞으로 활발한 논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더인디고 THE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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