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메타버스에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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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터치하고 있다./사진=픽사베이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있다./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한다. 내가 어릴 적엔 동네에 몇 대밖에 없었던 컴퓨터는 어느새 1가구 1PC 시대를 만들었고 지금은 손안에 컴퓨터라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것을 현대화라고 부르고 새로운 문명이라고 칭송한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수십번 지우고 새로 쓰고 하면서 지저분해지던 수백 장의 문서업무는 키보드 몇 번 두드리거나 마우스 클릭 몇 번 하면 되는 전자 업무가 되었고 이제는 다른 입력 장치 없이도 화면만 터치하면 프로그램을 제어할 수 있는 터치인터페이스가 매우 익숙해졌다. 이것을 사람들은 편리함이라고 부르며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또 다른 신기술을 기대한다. 적어도 대다수 사람들에겐 그랬을지 모르겠다.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도스(DOS)에서 윈도(Windows)로 바뀌었을 때 많은 사람은 더는 명령어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열광했겠지만 마우스 커서가 보이지 않던 난 그렇지 못했다.

휴대전화에 버튼이 사라지고 풀 터치 방식의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도 겨우겨우 피처폰의 문자입력 방식을 외워서 문화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나에겐 또 다른 허탈함이 찾아왔을 뿐이었다. 손안의 신세계를 열광하던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손만 대면 문이 열리고 밥도 지어지고 식당에서 주문도 할 수 있는 다수가 편한 세상이 되면서 나 같은 소수는 전에 느끼지 못하던 기술에서의 소외감을 몇 배로 느끼곤 한다.

다행히 착한 기술이라는 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지금 이 순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난 최신 윈도 10 위에서 글을 쓰고 있고 아이폰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도 한다. 말을 하거나 말로 동작시킬 수 있는 가전제품들과 여러 가지 보조기기들도 새로운 문화 안에서 나 같은 이들이 마냥 배제되지 않도록 나름의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느리거나 완벽하지 않다.

때때로 아이폰처럼 출시 단계에서부터 소수를 고려하여 만드는 감사한 제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가뭄에 열리는 콩의 개수와도 비교 안 될 만큼 너무 적은 기적과 같은 확률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기구가 출현하면 그 편리함에 포함되지 못한 소수는 다수의 문화를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작한다. 터치 버튼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붙이기도 하고 화면을 읽어주는 스크린리더를 계발하고 탑재하기도 한다.

본디는 존재하지 않았던 부가적 매개가 만들어지는 동안 세상에는 또 다른 새로움이 출현하고 그간의 노력은 쓸모없게 된다.

도스에서 사용되던 프로그램은 윈도에서는 호환이 되지 않았고 새롭게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도 또 다시 새로워진 운영 체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갔다.

소수는 당연히 몇 발자국 느리게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아이폰은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출시부터 어떤 불편함이 있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기기는 다름을 가진 이들도 새로움을 동등하게 공유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가 되었다.

스마트폰에 적응하고 키오스크의 해법을 탐색하고 있는 요즘 세상 사람들은 ‘메타버스(가상공간, 사이버 공간)’라는 전에 없던 신세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상공간에서 3D로 펼쳐지는 또 다른 공간들은 집 안에서 세계를 누비기도 하고 미술관의 전시물을 보기도 한다. 물건을 만지거나 구매할 수도 있다.

먼 이국땅에 있는 이들에게 곁에 있는 듯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동경하는 예술가들의 공연을 바로 눈앞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최첨단의 새로움 안에서 나의 머리는 또다시 바쁘게 돌아간다.

메타버스에서의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존재하므로 나 같은 시각장애인도 어떤 부담감 없이 작품을 만져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을 방해하지 않고 작품의 설명을 크게 들을 수도 있다. 공연장에서도 자리를 찾거나 이동하고 싶은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 안에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 보장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세상을 뒤덮은 맨질맨질한 터치패널과 키오스크처럼 개발자의 머릿속에 소수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커다란 소외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만들 때부터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던 아이폰처럼 만드는 이의 생각 안에 불편한 이들의 마음이 담긴다면 우리는 새로운 문명 안에서 진정한 공동체성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또다른 큰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메타버스 안에서 우리의 불편함은 깨끗이 사라질 수도 있고 더 큰 좌절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것은 새로움이 시작되는 바로 지금의 작은 생각 차이에 달려 있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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