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화장실 만들어 주세요”… 인권의 민낯 드러낸 어른에게 어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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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흥초등학교 6학년 5반 학생들이 인천시장에게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하기 전 잠시 들어 보이고 있다. ⓒ더인디고
▲인천서흥초등학교 6학년 5반 학생들이 인천시장에게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하기 전 잠시 들어 보이고 있다. ⓒ더인디고

[글·사진 조국 인턴기자 / 감수·편집 조성민 발행인]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인천서흥초등학교 6학년 5반 학생들이 어른들이 만든 ‘차별’을 지적하며 회초리를 들었다.

이날 초등학생 3명은 담임교사와 함께 인천시청 신관 복도와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에 “인천시장님,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적힌 포스터를 붙였다. 또 친구들과 인천시장 앞으로 쓴 편지를 모아 시청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앞서 초등학생들이 장애인의 화장실 문제로 나선 계기는 이 반 담임인 송한별 교사가 최근 ‘장애인 화장실 없는 인천시청 신관’ 기사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인천시청은 현 시청사 맞은편 건물(신영구월지웰시티 오피스동)의 5층~16층을 260억 원에 사들여 지난 3월 29일 문을 열었다. 신관 오피스동에는 31개 부서 600여 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장애인 화장실이 한 곳도 없다. 시청 장애인 직원이나 민원인이 화장실을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 1~3층으로 내려와 통로를 통해 상가동 같은 층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시가 매입 전까지는 오피스동과 상가동 총 4동은 민간소유였다. 설계 및 인허가 당시 하나의 건물로 인식, 장애인 화장실 설치는 최소한의 법적 기준만 충족한 채 상가 건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가 매입 과정에서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은 장애인 인권 감수성에 대한 시 관계자들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이에 인천지역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가장 어처구니없는 차별 사례”라며 항의했고 이 문제가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인천시청 신관 1층, 장애인 화장실로 가는 안내 표지판 앞에서 학생들이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더인디고
▲인천시청 신관 1층, 장애인 화장실로 가는 안내 표지판 앞에서 학생들이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더인디고

이날 포스터를 붙이는 현장에서 학생들과 담임 교사를 만났다.

기사 내용을 접한 학생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송한별 교사에게 물었더니 “공공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됐고, 그럼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학생들과 함께 ‘인천시장님께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으로 포스터 제작과 편지를 쓰자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인천시청 신관에서 학생과 선생님(사진 앞쪽)이 함께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더인디고
▲학생과 선생님(사진 앞쪽)이 함께 인천시청 신관 엘리베이터 옆에서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더인디고

그러면서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당부도 잊지 않았다. 송 교사는 “장애인이 접근권이나 차별 등에 진지하게 고민해준 것 자체도 기특한데 실천까지 나서주니 아이들이 참 고맙다”며 “앞으로 살아가면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이웃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는 일에 대해 낯설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선생님이 전해주신 것 말고 또 접해본 경험이 있는지를 묻자 김수민 학생이 나섰다. 김수민 학생은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는 것 말고도 휠체어 사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버스 등 여러 뉴스를 봤다”며 “선생님이 이야기해주시고 친구들과 같이 논의하면서 장애인 이동권 등도 관심 있게 살펴봤다”고 말했다.

실제 포스터를 만들고 붙이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장애인뿐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저도 다쳤을 경우 버스를 이용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시장님이 빨리 화장실 설치와 누구나 버스도 편안하게 타고 길거리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스터 붙인 학생들은 친구들이 쓴 편지를 들어 보이며, 인천시청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홍서윤 학생이 인천시장 앞으로 쓴 편지 ⓒ더인디고
▲홍서윤 학생이 인천시장 앞으로 쓴 편지 ⓒ더인디고

홍서윤 학생은 “인천 시청에 장애인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면서 장애인 화장실을 안 만들었다는 게 너무 화가 납니다. 그런 인천시청 태도에 여러 기사도 많이 났는데, 그 기사를 못 봤을 일이 없는데 아직까지 안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힘이 없는 저 같은 초등학생이라도 이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꼭 장애인 화장실 설치 부탁드립니다”고 썼다.

이어 “장애인 분들 중에 몸이 불편한 분들이 있어서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버스를 타거나 내릴 때 계단으로만 되어 있어서 휠체어를 이용하신 분들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장애인 화장실, 저상버스 등 만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한편 학생들은 더 많은 학생이 오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선생님과 자신들 3명만 참석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어린이날, 어린이의 눈에 비친 어른의 장애인 인권 감수성, 그리고 코로나19 감염병 속 행동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포스터를 붙이기에 앞서 학생들은 신관 로비에 모여, 인천지역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와 장애인 차별에 대한 사례 등에 대해 이야기도 함께 나눴다. 사진은 포스터를 붙이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다. ⓒ더인디고
▲포스터를 붙이기에 앞서 학생들은 신관 로비에 모여, 인천지역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와 장애인 차별에 대한 사례 등에 대해 이야기도 함께 나눴다. 사진은 포스터를 붙이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다. ⓒ더인디고

[더인디고 THE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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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na1222@naver.com'
이은영
2 years ago

기본으로 했어야할일이라 생각했기에 장애인화장실이 없다는것에 놀랍네요. 아울러, 선생님 아니였으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을 아이들에게 좋은가르침을 준 선생님이 존경스럽네요. 아이들은 좋은 선생님을 만난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