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날, 참정권 보장 외치게 만드는 국가… “소송과 법 개정으로 맞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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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은 10일 오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지난 총선 당시 장애인 유권자 한 표의 값이 4,700만원에 달하지만 선관위가 정당한 편의 등을 제공하지 않아 이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5만원이 그려진 종이를 자동발행기로 공중에 뿌리고 있다 ⓒ더인디고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은 10일 오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지난 총선 당시 장애인 유권자 한 표의 값이 4,700만원에 달하지만 선관위가 정당한 편의 등을 제공하지 않아 이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5만원이 그려진 종이를 자동발행기로 공중에 뿌리고 있다 ⓒ더인디고
  • 한 표에 4700만원… 결국 휴짓조각
  • 참정권 요구 때마다 근거 들먹이는 선관위, 왜 존재하나!
  • 선거 정보·투표소 접근권, 정당한 편의제공 등 차별 수두룩

[더인디고 조성민]

“발달장애인은 기표할 때 투표보조인 참여가 거부되고, 투표소는 계단이 있는 2층에 마련됐다. 묵자와 다른 내용의 점자 공보물 발행과 청각장애인은 이해할 수 없는 선거 방송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가 내세우는 ‘좋은 정치,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인가! – 김대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 -”

▲김대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가 유권자 한표 4700만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김대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가 유권자 한표 4700만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국민주권주의 개막 70여 년, 장애인 유권자는 없었다

대한민국 최초, 민주적 선거가 있었던 1948년의 일이 아니다. 70여 년이 흐른 지난 21대 총선에 이어 올해 4·7 재보궐선거에서도 드러난 ‘장애인 참정권의 민낯’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제2항이다. 국민주권주의 원칙을 탄생시킨 1948년 5월 10일은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라는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도입한 최초의 국회의원 총선거 치러진 날이다. 이후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의회 구성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됐고,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다.

중앙선관위는 이날을 기념하며, 선거와 투표 참여의 중요성과 유권자의 권한 등을 조명하자는 뜻에서 지난 2012년,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로 제정했다

하지만 10회째를 맞는 ‘유권자의 날’인 오늘, 장애인과 단체들은 다시 거리로 광장으로 나섰다. 수년째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지만 달라진 게 크게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과 한국피플퍼스트 등 6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참정권 대응팀)’은 10일 오전 11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도 동등한 시민이자 유권자다. 참정권을 보장하라”며 중앙선관위 규탄에 이어 “오는 6월경 발달장애인 참정권 침해에 대한 차별구제 청구소송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참정권 외면한 선관위, “책임 크다

장애인 유권자의 선거권 보장은 1998년 공적선거 후보자 방송 연설에서 수어방송을 의무화하면서부터다. 2000년에는 시각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의 제출을 의무화하고 방송 광고에 수어․자막을 도입했다.
이어 20대 국회 때는 장애인의 투표접근 편의를 위한 제반 시설의 설치 및 적절한 투표소 위치 확보 등 필요한 사항을 ‘공직선거관리규칙’으로 정하도록 했다.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제한 삭제, 투표소를 설치할 때는 장애인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건물의 1층 또는 승강기나 경사로 등이 있는 곳에 설치하도록 했다. 이번 21대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점자형 선거공보물 면수 제한이 합헌’이라고 판결하자 책자형 선고공보 면수 이내에서 2배수 이내로 상향하는 개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은 장애인 유권자 또는 단체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 반영된 것이지, 중앙선관위가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법적 근거만 들이밀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사진 왼쪽)와 김준우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사진 오른쪽)이 발언을 하고 있다. ⓒ더인디고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사진 왼쪽)와 김준우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사진 오른쪽)이 발언을 하고 있다. ⓒ더인디고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는 “선관위가 유권자 한 사람이라도 투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함에도 공직선거법 타령만 하고 있다”며 “국민 세금으로 자신의 역할은 안 하고 선거 때가 되면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게끔 하지를 않나, 허구한 날 ‘나도 유권자이고 국민이다’를 요구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준우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부회장도 “유권자의 날, ‘나도 유권자’라고 주장하는 이 현실을 방기한 대한민국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며 “규칙이 빠져있으면 규칙을 만들어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선관위 역할임에도 이를 방기하는 선관위에 정당한 권리를 맡길 수 없을 것 같다”고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실제 발달장애인이 기표할 때 투표 보조를 할 수 있었던 지침을 선관위가 작년 4·15 국회의원 선거 때 갑자기 삭제하면서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투표를 못 하는 일이 발생했다.

공직선거법 있으나 마나… 21대 총선과 4·7 재보궐선거에 참정권 침해 수두룩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은 시각 또는 신체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게 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활동가가 ‘발달장애인도 대한민국의 유권자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활동가가 ‘발달장애인도 대한민국의 유권자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발달장애인 또한 장애 특성에 적합한 선거 공보물과 관련 편의지원 등이 없이는 참정권 보장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 참정권 대응팀 등 장애인단체들의 노력 끝에 중앙선관위도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2016년 총선부터는 선거지침에 발달장애인 조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작년 총선 때부터는 중앙선관위가 사전에 아무런 공지 없이 해당 지침을 삭제하면서 투표를 못 하거나 사표가 된 사례가 발생했다.

이 문제는 인권위도 지난 4월 9일, 선관위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에 대해 ‘차별’이라 결정한 사안이다. 하지만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상 지원할 수 없다며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는 “선거 때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너무 괴롭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이해하기 쉬운 선거 공보물 제작 ▲매번 달라지는 선거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역별 설명회 개최 ▲그림투표 용지 제공 ▲투표 장소에서의 조력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각 및 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공직선거법은 시각장애인 점자 공보물 면수를 2배까지 확대하고 텍스트를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 제공하도록 개정됐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점자는 묵자의 3배 분량 정도가 되기에 2배 이내에 동등한 정보를 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또 USB도 의무제공이 아니기에 이번 서울시 보궐선거 때는 후보 4명만이 제공을 했다. 법이 있어도 내용의 부실함으로 차별받는 사례다.

이번 선거에서 청각장애인은 선거 방송에서의 수어통역사 배치 문제로 제대로 된 선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앞서 수어통역사 한 명이 복수의 후보자를 통역하면서 청각장애인들은 어느 후보의 이야기인지 알 수도 없었거니와 공정성까지 훼손당했다며 지난 4월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낸 바 있다.

또 2018년 4월에 개정된 공직선거관리규칙 제67조의2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등을 위해 투표소를 1층 또는 승강기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예외 조항으로 인해 이번 재보궐선거 때도 접근 가능한 투표소를 회피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사례가 또 발생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서울 강서구 지역에서는 계단이 있는 2층에 투표소가 그리고 1층에는 임시기표대를 설치했다. 한 어른신(사진 왼쪽)이 투표를 마치고 동행인의 부축을 받아 2층에서 내려오고 있다 ⓒ장추련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서울 강서구 지역에서는 계단이 있는 2층에 투표소가 그리고 1층에는 임시기표대를 설치했다. 한 어른신(사진 왼쪽)이 투표를 마치고 동행인의 부축을 받아 2층에서 내려오고 있다 ⓒ장추련

서울시 보궐선거 때 장추련에 접수된 사례를 살펴보면, 강서구 화곡동 제3투표소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에 마련됐다. 1층에 임시기표대를 설치했지만, 2층에 있는 직원과 선관위가 내려와야 겨우 투표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김수원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도 “선관위가 서대문 소재 1층에 있는 한 카페를 투표소로 지정했지만, 카페 입구 계단이 있었음에도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아 휠체어 사용자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참정권 대응팀은 “장애인 참정권 침해에 대한 차별구제청구소송과 더불어 그림투표용지 도임 등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 발의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별구제 소송과 공직선거법 개정 동시 추진

▲이수연 변호사가 차별구제 소송의 주요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인디고
▲이수연 변호사가 차별구제 소송의 주요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인디고

소송 대리인단을 맡고 있는 이수연 법조공익모임 나우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참정권을 침해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라며 “▲선거 정보 접근권 ▲투표소의 물리적 접근권 ▲투표권 행사를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 등을 중심으로 6월 중에는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가 밝힌 차별사례는 대부분 21대 총선과 재보궐선거에서 그대로 드러난 내용이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거공보물의 점자 면수 2배수 이내와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선거 공보물, 그리고 선거방송에서의 수어통역 및 자막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되지 았다는 것은 선거 정보 접근권에 해당된다.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의 투표소 설치 등은 물리적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은 사례다. 또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 조력인과 그림투표 용지 제공 등 투표권을 보조하는 방안이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은 투표권 행사에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사례다.

▲대만 투표용지(사진 왼쪽)과 우리나라(오른쪽) 60년대 투표용지에는 후보자 사진이 이름과 함께 있다./ 자료=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마련 토론회(2020.6.25)자료집
▲대만 투표용지(사진 왼쪽)과 우리나라(오른쪽) 60년대 투표용지에는 후보자 사진이 이름과 함께 있다./ 자료=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마련 토론회(2020.6.25)자료집

스코틀랜드의 경우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 옆에 정당 로고를 넣는다고 한다. 대만도 투표용지에 후보자 사진을 넣고 있다. 우리나라도 60년대 투표용지에는 후보자 사진을 넣은 때가 있었다. 굳이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한편 지난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행정안전부는 국민의 한 표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해서 투표를 독려하는 홍보를 한 바 있다.

▲유권자 한 사람당 4700만원의 투표 가치가 휴짓조각처럼 바닥에 뒹굴고 있다. ⓒ더인디고
▲유권자 한 사람당 4700만원의 투표 가치가 휴짓조각처럼 바닥에 뒹굴고 있다. ⓒ더인디고

향후 4년간의 국회 심의 예산을 유권자의 수로 나눠, 투표에 대한 가치를 계산한 결과, 그 가치를 무려 ‘한 표에 4,700만 원’이라고 산정했다. 즉 2020년 우리나라 예산은 512조3000억원.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니 총 2049조2000억원을 책임지는 셈이다. 이를 전체 유권자 수로 나누면 유권자 한 명의 투표 가치는 약 4700만원! 하지만 그렇게 계산한 한 표의 값어치가 장애인에게는 온전히 주어지지 않은 채 휴짓조각이 된 셈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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