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혼걷이굿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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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엄마야? 너, 울 엄마 아니잖아, 쓰벌.”

소년의 말투가 술에 취한 듯 어눌하다. 말을 할 때마다 소년의 입에서는 역한 화공약품 냄새가 났다. 몸에 착 달라붙는 맨 셔츠 차림으로 오들오들 떨고 선 채 입귀를 일그러뜨리는 소년의 동공이 게슴츠레하게 풀려있다. 왼손에 들린 갬직한 비닐봉지가 연신 흔뎅거렸다. 여자는 소년이 본드 냄새에 취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제야 그녀는 잔뜩 굳어진 몸의 긴장을 풀고는 소년을 자세하게 살펴볼 엄두가 났다. 의외로 소년은 눈썹이 얇고 쌍꺼풀이 굵은 큰 눈, 작은 콧방울의 계집아이처럼 조쌀한 인상이다. 자신의 발보다 훨씬 커 보이는 통굽구두에 치렁치렁한 힙합바지를 입고 있는 소년의 머리 색깔은 짙은 금빛이다. 아이의 헤벌어진 입가로 무른 침이 흘렀다. 자신을 살피는 시선을 느꼈는지 소년의 표정이 일순 겁에 질린 듯 일그러진다.

“난 꼭 백댄서가 될 거라구. 쓰벌, 오늘 선생 새끼가 나한테 뭐란 줄 알아? 꼴통은 나가 뒈지래. 이건 비밀인데 엄마랑 선생이랑 날 죽이려고 작전을 짰나봐. 아, 얼른 토껴야 될 텐데.”

그녀에게 하소연하듯 뇌까리던 소년의 눈에 얼핏 눈물이 어린다. 그녀는 잠자코 팔짱을 낀 채 소년의 말을 귀담아 들어준다. 소년이 풀썩 주저앉아 꺼욱, 꺼욱 숨죽인 울음을 토해낸다. 문득 그 소년의 얼굴 위로 종석의 바싹 마른 얼굴이 겹쳐졌다.

금광 채굴업자였던 아버지의 물크러진 시신을 무너진 갱도 맨 밑바닥에서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혼절한 여자는 정신을 수습하자마자 미친 듯이 패악을 부렸다. 저 계집아이를 얼렁 쫓아냈시요. 지 애비애미 잡아묵고 인자 우리 알토란같은 씨앗을 해코지 할라고 한당께.

여자의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는지 눈칫밥에 구박덩이로 전락한 여자는 그런대로 건강하게 자랐지만, 종석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여자의 지나친 과보호와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 탓에 거의 외톨박이로 자라다시피 한 종석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입에 자물통을 채운 사람처럼 말이 없어지고 드러난 광대뼈로 각진 얼굴에는 음영이 짙었다. 여자와 불과 넉 달 터울인데도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그녀와는 달리 종석은 두 눈이 우멍하게 보일 만큼 자꾸 야위어갔다.

얘가 속옷도 안 내놓고 점점 왜 이카는지 모르겄네. 종석의 방을 청소하러 들어갔던 여자의 손에 때에 절은 속옷이 한아름 들려나오기도 했다. 여자는 자꾸만 변해 가는 종석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용하다는 점집이며 굿당을 들락거리는 눈치였다. 도화살(桃花煞)이 들었다며 부적을 종석의 속옷에 꿰매놓기도 했고, 신령(神靈)이 옮았다는 복숭아 나뭇가지를 구해 와서는 종석의 방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종석은 언제부터인가 밤기운을 옷에 묻히고 돌아왔다. 입에서는 옅은 술 냄새가 나기도 했고, 벗어놓은 점퍼의 깊은 속주머니에서 날선 주머니칼이 나오기도 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학교에서는 무단결석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자는 집안 살림을 여자에게 내맡긴 채 밤만 되면 거리를 배회하는 종석을 찾으러 다니곤 했다. 하지만 자정 무렵이면 정신이 나간 듯 백짓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혼자 터덜터덜 돌아오곤 했다. 여자의 눈에도 종석은 늘 위태로워 보였다. 외줄 위에 서서 힘겹게 걷는 사람처럼 불안해하고 자꾸 어딘가로 급히 떠날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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