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정치, 그 매혹과 혐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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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투표해 주세요(Vote for me)©픽사베이
▲저에게 투표해 주세요(Vote for me)©픽사베이

[더인디고=이용석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사랑은 언제나 혁명을 꿈꾼다. 누군가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열정적인 그리움은 익숙한 관념에 대한 도전이고 질서정연했던 기존 가치의 틀을 파괴하기 위한 애끓는 안간힘이다. 사랑은 마음 속 예민한 떨림이어서 상대에게 향하는 애틋함이 농밀할수록 점점 짙어지는 권력에의 욕망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년 5년마다 이 소름 끼치도록 첨예한 사랑에 빠지곤 한다. 선거철만 되면 최고 권력자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의 사랑은 팬덤을 형성해 지독한 짝사랑으로 이어지고, 사랑의 속성이 그러하듯 맹종의 미신(迷信)으로 진화한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미신은 권력자와의 일방의 관계를 짓고 이상하리만치 끈끈한 결속과 공유로 이어지는 특별한 감정이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뒤르켕(Durkheim)은 이 별스러운 감정을 집합표상(集合表象)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속한 세상을 바라볼 때 원래 각자가 매우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른 심성으로 각자의 상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각 개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끔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미신(혹은 종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신은 불안과 공포의 결과이기도 해서 사회적인 가치에 따라 종교이면서도 정치적이며 세속 사회에 들러붙어 분리되지 않는 끈적끈적한 믿음의 덩어리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한 이 심상치 않은 미신의 공유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편과 적을 구분하고 치열한 싸움의 승리를 지향한다. 이 싸움의 시작과 그 끝은 이들의 사랑과 믿음에는 중요하지 않다. 승리한 후 전해지는 그 짜릿한 쾌감, 적을 향해 쏟아내는 증오와 혐오의 독설과 승리라는 매혹을 향해 치닫는다. 이 가열찬 질주 앞에서 진실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저 지독한 사랑과 적의만이 오롯할 뿐이다.

19년 전, 우리는 한 사람을 향한 별스러운 만큼 집요한 짝사랑을 통해 이 매혹적인 감정을 만끽했다. 온갖 역경을 딛고 기득권을 깨트리고 이겨낸 정치인 노무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각인된 집합표상은 마침내 선거라는 대의정치 속에서 오직 한 표만을 행사할 수밖에는 힘없는 유권자로서의 무력감이 팬덤을 거치며 확장된 ‘다수의 한 표’라는 힘으로 변하는 소중한 기억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량한 한 표만을 지지자에게 보내는 소극적인 정치행위에서 믿음을 통해 뜻을 모은 다수의 무조건적인 지지의 힘이라는 집단표상을 공유한 적극적 행위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자각은 다시 광장의 촛불로 이어져 살아있는 권력마저 탄핵했던 경험을 함께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과거 욕설 파일이 온라인을 통해 전염병처럼 번지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인의 전화 녹취가 공중파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져도 이 튼실한 팬덤은 오히려 이를 통해 믿음을 공고히하고 ‘밈’을 돌려 보면서 더욱 결속하고 승리를 다짐한다.

모를 일이다. 혐오의 정치가 어느덧 맹종의 미신이 되고 급기야 놀이가 되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구호에 따라 일제히 편 가르기로 반응한다. 앞으로 5년의 정치적 환경 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나아질 것인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 대신에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듯 승리라는 결과, 그 매혹의 경험만을 고대한다.

우리의 사랑 방식이 변한 걸까?

사랑 방식은 여전하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았다고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6.10 민주 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이끌었던 우리의 열망은 30년 동안 여섯 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사랑이, 치열했던 변혁에의 욕망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막연한 자괴감이 되었고 급기야 사랑이라는 혁명의 결과는 어쩌면 선거기간 동안 꾸는 달디 단 백일몽이었음을 깨달았다. 추문과 혐오로 시작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어쩌면 떠름한 기억만 남긴 채 끝날 지도 모른다. 누가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든 이 매혹과 혐오라는 미혹(迷惑)의 난장판에 동참했던 우리 모두의 마음 속 여과지에는 맹종의 미신(迷信)이라는 찌꺼기만 남길 것이다.

지난해 말, 전 세계적인 팬덤을 이끄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BTS가 팬더믹 2년 만에 연 실황 콘서트에서 팬들을 향해 “사랑해, 끝까지 함께하자”고 외쳤다. 이에 팬들은 “끝까지 함께하자”고 화답했다. 하지만, BTS도 팬들도 자신들의 약속이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사랑은 허방을 딛듯 우연히 사로잡히는 치열한 갈망이며, 마침내 현재의 전복을 꿈꾸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잔인한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맹종의 미신 때문이건 공동선 때문이건 또다시 우리는 정치라는 꿈의 무대를 향한 열망의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길이 오직 매혹과 혐오 사이를 헤매는 미로라도 말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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