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아름다운 우주인의 지구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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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별 스틸컷. 조영찬씨와 그의 아내 김순호씨가 점화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달팽이의 별' 스틸컷. 조영찬씨와 그의 아내 김순호씨가 점화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다큐영화 ‘달팽이의 별’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시각장애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청각장애란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듣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보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해내는 것을
먼저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세상이 되지 않을까?…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가끔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내가 늘 강조하는 이야기다. 여기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2021)’의 주인공 은혜와 다큐 영화 ‘달팽이의 별, (2012)’의 주인공 조영찬 씨가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시청각장애를 가졌다. 아니, 다시 얘기해야겠다. 이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소통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소통해?

보고 듣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이들만의 다른 방법이 분명히 있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의 어린 은혜는 먹어보고 만져보고 살아 있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세상과 맞닿으려 한다. 그리고 다큐 영화 ‘달팽이의 별’의 조영찬 씨는 시청각장애를 가진 실제 주인공으로서 모든 감각의 사용 이외에도 ‘점화’라는 방법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점화란 ‘손가락 점자’를 뜻하며, 양손 검지, 중지, 약지를 6점 점자 키보드라고 생각하고 타이핑하듯 손가락을 두드려서 의미 전달을 하는 의사소통 방식인데 그는 일상생활에서 아내와 함께 이 점화를 통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점화 이외에도 촉수어(촉각 수어 또는 촉독 수어)라고 해서 상대의 수어를 촉각으로 느껴 대화하는 방법도 있고 상대방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적어 촉각으로 의사소통하는 방법인 손바닥 필담도 있다. 사실, 이런 방법들이 아니어도 마음을 전하려는 진심만 있으면 더 창의적인 방법들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손바닥 필담이든 점화든 일단 글자를 배워야 가능한 것일 텐데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서 은혜는 아직 글자를 배우지 못했다. 오로지 감각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앞으로도 은혜가 학교나 다른 교육기관을 통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을지도 영화에서는 불분명하다. 재식이 은혜를 학교에 보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는 시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엄마 잃은 시청각장애아이와 돈만 밝히던 건달 재식과의 특별한 만남을 따뜻하게 그려냈지만 영화 이후의 이어질 현실은 훨씬 암담할지도 모르겠다는 서글픈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겐 너무 소증한 너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내겐 너무 소증한 너’ 스틸컷. 재식(왼쪽)이 은혜(오른쪽)의 손바닥에 필담을 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영화

우리나라에 은혜와 같은 시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대략 1만 명이 넘게 살고 있지만 그들을 위한 그 어떤 제도적 뒷받침도 지원도 없는 세상에서 아빠라는 따뜻한 이름만 가지고는 혼자서 장애아를 양육해 내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다큐 영화 ‘달팽이의 별’에서 조영찬 씨는 자신을 ‘우주인’이라고 칭한다. ‘달팽이 별’이라 자기가 이름 붙인 이 지구에서 그가 가진 모든 ‘더듬이’, 혹은 안테나를 열어 놓고 모든 감각을 통해 낯선 별을 탐험하는 외로운 우주인, 그 낯선 우주인이 경험하는 모든 신비로운 세상이 곧 인생인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의인가!

시종 낯선 우주를 탐험하듯 유영하는 그의 모습이 모든 장면에서 아름다웠지만 나무를 끌어안고 온몸으로 나무를 느끼던 그의 모습은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신비로운 생명체 같았다. 보이는 사람들에겐 쓱 훑어보고 말면 그만일 한낱 나무도 그와 만남으로써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에 닿아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렇게 그의 손끝으로, 코끝으로, 먼 우주를 응시하는 시선 끝으로 보이지 않던 나무의 세계가 그의 세계로 와 닿는 모습은 마치 서로 다른 생명체의 경건한 조우 같았다.

우리와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느끼는 그의 모습을 헤매는 자의 어수선한 몸짓이 아니라 탐험하는 자의 호기심 어린 몸짓으로 이면을 바라본 카메라의 시선도 몹시 아름다웠다.

은혜와 조영찬, 이 아름다운 우주인들의 모험은 ‘아빠’가 되어준 재식과 아내라는 이름의 친절한 지구인들을 만나 멋지고 신나는 지구탐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에서 관심에서 사회에서 빗겨난 채 홀로 어둠 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시청각장애인’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우주인들은 어쩌나?! 세상에 더 많을 불친절한 지구인들과의 교신을 위해 이 특별한 우주인들만 안테나를 세워서는 제대로 된 교신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불친절한 지구인들과도 소통이 가능해지려면 최소한 서로 인식 가능한 일반적인 소통방식이라도 습득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 시청각장애인들은 교육의 기회조차 다른 장애인들보다 3배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지 않던가. 게다가 그들을 지원하는 제대로 된 법이나 정책도 아직 없다지 않은가. 그야말로 이들에게 바깥세상은 캄캄한 절벽일 터. 이것이 이들을 이 낯선 지구에서 탐험은커녕 발걸음조차 떼어놓을 수 없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시청각장애인들의 캄캄한 현실을 알리고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단독 법안 제정과 제도 마련을 위해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난 5월 개봉되었지만 기대만큼 사람들의 큰 관심과 반향을 일으키진 못한 듯해서 아쉽다. 영화적 완성도는 논외로 두고, 이 영화를 통해 시청각장애인에 관한 작은 관심이라도 불러일으켜 주기를, 또 이 영화와 더불어 지난 영화 ‘달팽이의 별’도 새롭게 다시 조명되어 우리와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아름다운 우주인의 세계로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무엇보다 이 영화 ‘달팽이의 별’은 너무 아름다워서 놓치는 사람이 손해!

마지막으로 이 영화 속 조영찬 씨의 아름다운 나레이션을 나누며 글을 맺는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더인디고 THE 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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