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용하던 점자 유도블록, 아파트 재건축으로 사라져… 인권위에 진정

0
176
▲새 아파트가 들어서며 기존 설치된 유도블록이 사라지자 20년간 이를 이용하던 시각장애인들이 강동구청과 건설회사, 재건축주택조합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 우측 앞쪽부터 윤정기 장애벽허물기 이사, 시각장애인 A씨, 오병철 소장 ⓒ더인디고
▲새 아파트가 들어서며 기존 설치된 유도블록이 사라지자 20년간 이를 이용하던 시각장애인들이 강동구청과 건설회사, 재건축주택조합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 우측 앞쪽부터 윤정기 장애벽허물기 이사, 시각장애인 A씨, 오병철 소장 ⓒ더인디고
  • 유도블록, 지하철역서 시각장애인복지관까지 유일한 지름길
  • 민간 건설회사, 재건축하며 제거 후 복구 안 해
  • 주택조합에 완공 6개월 전 부탁했지만 “나 몰라”
  • 진정인 “민영 아파트에도 편의시설 설치 계기 되길”

[더인디고 조성민]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기존 단지에 설치된 점자유도블록이 사라지자 이를 이용하던 시각장애인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이전에는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5번 출구에서 기존 주공아파트를 가로질러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복지관)까지 유도블록이 설치돼 있어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해당 복지관은 점자도서, 체육시설 등 인근 지역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복지관이며 지하철에서 내려 주공아파트 내에 설치된 유도블록을 따라 가면 쉽게 접근이 가능했다.

특히, 20년간 매일같이 복지관을 방문하는 시각장애인 A(65세)씨는 직선으로 나 있는 유도블록을 이용하면 혼자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큰 길거리로 우회해 20~3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A씨는 중도에 실명한 1급 시각장애인이다.

아파트가 오래되자 모 건설회사가 그 자리에 민영 아파트를 지으면서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른 건물 출입구 등을 제외하고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없앴기 때문이다.

▲유도블록 제거로 피해를 입었다며 시각장애인들이 23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더인디고
▲유도블록 제거로 피해를 입었다며 시각장애인들이 23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더인디고

23일 피해 시각장애인들과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인권위 앞에서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A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도블록은 눈이자, 손이고, 발이다. 하지만 재건축이 된 이후에 작년 2월 말 다시 입주해 보니 유도블록이 사라졌고, 4천 세대가 넘는 넓은 광장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어떤 이정표도 없어 사막에 홀로 선 느낌이다”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 A씨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더인디고
▲시각장애인 A씨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더인디고

그러면서 “처음 6개월 정도는 방향을 잡을 수도, 위치를 확인할 수도 없어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것이 선진화된 복지정책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가 더 답답해하는 것은 이미 아파트 완공 6개월 전에 주택재건축조합을 찾아 유도블록 설치를 요청했고, 조합 측으로부터 알았다는 답변까지 받았다는 것. 하지만 입주해 보니 그동안 이용했던 유도블록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이후 강동구청에 민원도 넣었지만, ‘사유지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고 한다.

진정에 참여한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완공 전에 특별히 요청까지도 한 만큼 재건축조합이나 건설회사, 그리고 구청 어느 한 곳이라도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특히, 20년 동안 이용을 해왔고, 또 여전히 복지관을 찾는 많은 시각장애인이 있는데, 인권위가 법으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더인디고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더인디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당한 편의제공을 민간영역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또 장애인등편의증진법에도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인권위가 이번 진정을 인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김소영 유엔인권정책센터 간사는 더인디고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며 인권위가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소영 간사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의 한 시에서 운영하는 트램 역시 노선이 연장되는 등 구조 변경이 되면서 음성안내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를 자주 이용하던 시각장애인 B씨는 불편을 호소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 역시 트램회사의 편을 든 것.

이에 B씨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개인진정을 제기했고, 그 결과 위원회는 정보 접근 불가도 접근권 침해라며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독립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면 권리 침해라고 인정했다. 이에 시각장애인에게 법적 비용을 보상하고, 서비스와 법, 제도를 개선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이제는 민간 아파트가 됐으니 위법이 아닌 것은 잘 알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파트 등 대규모 민간 거주공간에서도 편의시설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인권위가 이동권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해 달라”고 호소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승인
알림
6634e034cb8cd@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